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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사후에 멸절이 되는가?(정통교회측)
정통교회 vs 안식일교회 미주 진리토론 3-1
2000년 10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성경에서 “너희가 변론하지 말라“고 한 말은 진리를 밝히지 말라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마귀가 (유익이 없이) 인신공격이나 (하는 그런 변론을 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확대해서 비판하고, 말꼬리나 잡고, 논쟁을 바람직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도 듣는 청중들이 판단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가 아는 안식교인은 논쟁을 좋아하고 정통교인들의 문을 두드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도 “공청회를 하자“고 하면 “안 한다“고 합니다. 그 점이 좀 실망스럽습니다. 이번에도 한 주제에 질문을 열 개씩 만들어서 주고받고 한 주제에 대해서 2분 이상의 답변을 (하면 좋았을 터인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서로 역질문을 해가면서 모든 질문을 몇 분 이내로 대답하기로 했더라면 훨씬 더 유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어린아이처럼 “내가 이겼느냐“ “네가 이겼느냐“ 그런 수준은 아닙니다. 적어도 논쟁을 할 때 평형이 맞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안식일교회 목사님들은 정통교회에 대해서 많이 압니다.

왜?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게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안식일교회 가면 왜, ‘주일성수가 왜 나쁜갖, ‘왜 (주일을 지키는 것이) 태양신을 섬기는 것인갖, 그것부터 가르칩니다. 여기 정통교인들이 계십니다만 정통교회에서는 ‘왜 안식일교회가 잘못되었는가?‘ 라는 점은 이런 기회가 아니고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안식교측에서) 틀림없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그것만 봤을 때는 (안식교와 정통교회가) 유사해 보인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 말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정통교인들을 더 효과적으로 미혹하기 위한 방법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안식교가 이단이냐, 아니냐“라고 말했을 때는 안식교가 이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거야. (다른 이단자들도) 모두 자기가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그러면서 예수님도 이단소리 들었고, 사도 바울도 이단소리 들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역사 속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이단 논쟁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상대방을 죽일 때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 것이 쉽거든요. 그것은 이단된 자의 죄보다 이단되게 한 자의 죄가 천 배나 만 배나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통교인들이 안식교를 잘 모르고 오해해서 에이즈 환자처럼 보는 것이냐? 오해나 몰라서 그렇다면, 마땅히 정통교인들의 시각이 교정되어야 하고, 또 회개해야 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사실상 그 반대입니다. 정통교인 중에, (특히) 목사님들 중에 안식교회가 이단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교인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요일교인들을 (음녀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식교인들은 정통교인들을) 꼭 “일요일교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꼭 안식일교인들을 “토요일교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안식교인들은) 일요일교인들을 전부다 음녀의 자식들이라는 생각(합니다). 출발부터 그렇게 (주장하였습니다). 또 마지막에 교황의 법령 아래서 (일요일 준수가) 제정되는 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될 복음이라고 앞서 주제 발표하신 목사님이 말씀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생각이 안식일교인들 생각에 깊이 뿌리 박고 있어서 언젠가 일요일을 다시 제정하고 이날을 지키도록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1844년 10월 22일로부터 시작된) 조사심판 교리가 이제 끝나가면서 천국문이 (닫혀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금방 닫힐 것처럼, 이제 막, 금방 닫혀 가는 문처럼 (종말이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제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식교인들은) 이 말세와 재림이라는 말을 강조하여 (명칭에도 재림이란 말이 들어갔습니다). 또 그러면서 셋째 천사 기별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안식일교회의 교리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또 언제라도 이런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또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이 안식일교회 논쟁의 부족한 점이 있어서 재 논쟁을 하자고 하면 (저는) 언제든지 좋다는 점을 확인해 둡니다. 오늘 논쟁의 부족한 점을 글로 써서 재논쟁을 하기 원하시면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안식교 본부를 통해서 해도 좋고, 신계훈 목사가 해도 좋고, 김대성 목사가 해도 좋고, 여기서 해도 좋고 어떤 방법으로도 언제든지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옥 문제를 얘기하겠습니다. 정통교인들은 지옥을 영원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영혼은 한 번 태어나면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는 것이 영혼불멸입니다. 이레니우스도 말하기를 “영혼은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안식교에서는 “영혼은 멸절되어서 없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영혼과 육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어버리면 다 없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없어져서 땅속에 들어가면 없어져 버린 것인데, 다시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신다는 일종의 재창조가 되는 것인데,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과 결합되어 생명을 얻는 사람만 영원히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영혼은 일정기간 심판을 하고 그 영혼을 없애 버린다는 것이요 그러니까 지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점이 우연히도 밀러의 시한부 종말론이 생겨난 양대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과 일치합니다. 그러면서 주장하기를 “영혼불멸은 헬라 사상에서 왔다“(고 합니다). 기독교 안에 (인간관에는) 영혼 이분설과, (영혼육) 삼분설과, 그리고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수 없다고 하는 통전설 이 세 가지를 나누는 데 통전설의 경우도 영혼이 죽으면 바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다가 육체와 함께 주님 오실 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잠자고 있다는 상태도 일종의 영혼 불멸 사상입니다. 그런데 안식교는 그게 아니고 영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라는 것은 생명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 속에 영혼이 따로 있고, 육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불멸설은) 헬라 사상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안식일교회 책에는 한결같이 이 사상은 헬라 사상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통전설을 주장하는 정통교회의 학자들 중에, 그쪽에서 제일 많이 인용한 사람이 오스카 쿨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아야 합니다. (영혼불멸 사상이) 헬라 사상에서 왔다면, 헬라 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먼저 (헬라 사상이)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철저하게 증명을 해야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제가 보기에) 기독교하고 불교하고 같을 것 같지가 않은데 기독교하고 불교하고도 유사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때는 예수님이 석가모니의 제자라는 책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 책들을 제가 연구해보니까, 한 사람이 가설로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중심으로 해서 말을 만들어서 예수님이 불제자(라는 책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의 유사한 요소를 지적을 했습니다.

기독교의 ‘효‘사상 중에 어떤 것은 공자의 유교사상과 똑같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함무라비 법전이 구약보다 앞서서 생겼는데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과 구약 성경의 일부 내용이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면 구약이 함무라비 법전에서 왔느냐? 천만에요.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을 섬기도록 종교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진 종교적인 존재들이 (지역에 따라 그 종교심을) 와전시켜 다른 모든 종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진 종교의 본성이 여러 가지로 와전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영향을 ‘미치고‘, ‘안 미치고‘와 상관없이 종교들 속에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만들어진 공통적 요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마르크스의 책을 한 번도 안 읽어본 사람이 마르크스와 똑같은 유물론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단을 연구해 보면 이단자들이 대부분 다 영지주의적 요소를 가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직접 받은 일이 없습니다. 영지주의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습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적 요소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단은 자연발생적으로 영지주의의 요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 사상과 기독교의 영혼불멸 사상이 유사하니까 헬라 영향을 받았다?“ (그 말입니까?) 우리 교인 중에 저하고 상당히 얼굴 모습이 비슷한 집사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 동생인 줄 압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김씨고, 저는 최씨인데 그 사람하고 저하고는 씨가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같습디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나 큰 실수를 한 것이 뭐냐 하면 헬라의 영혼 불멸 사상은 기독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헬라의 영혼불멸은 영혼의 선재설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히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창조에 의해서, 시작이 있지만 끝이 불멸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헬라 사상과 유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헬라에서 왔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두번째,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상에 미혹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들으면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에 빠졌는데 왜 빠지는가 하면 지옥이 없다는 말 (때문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수 안 믿고 죄지었다고 그냥 감옥에 넣고 수 천 년씩 볶아대느냐“ 생각해 보니까 (지옥 사상이) 사랑의 하나님과 모순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원 못 받은 사람 중에 그 미혹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권사님 중에도 지옥이 무서워 여호와의 증인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늘 안식일 교인들이 말하는 “성경대로 믿자“, “성경대로 돌아가자“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맞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말(馬)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말 모양의 신을 믿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은 항상 인간 중심의 신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흑인들이 만든 성탄절 카드는 예수님을 흑인으로 그립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상식으로 만들어 내면 인간의 상식적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를 들어볼게요. (성경에 보니까) 전쟁을 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짐승들은 살려두고 사람들은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보다 짐승 새끼가 소중해서)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살려두라고 하십니까?

또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람을 (그 죄 값으로) 지옥에 일년을 집어넣는다면 그 죄에 대하여 처벌이 너무 약하지 않겠습니까? 유태인을 600만 명이나 죽인 히틀러 같은 사람의 영혼을 없애 버린다면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누구에게 벌을 가한다 할 때 그것 자체가 영원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는 안식일교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뱀이 ‘이걸 따 먹으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뱀이 죽지 아니하리라한 그 말처럼 오늘날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것은 곧 뱀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경구절을 인용하려면 필요충분하게 전후 조건이 맞을 때 인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 결코 죽지 않으라고 한 말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대칭된 개념으로서 비교하여 마치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것은 뱀 곧 사탄의 소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마치 뱀의 말과 하나님의 말을 대등한 관계로 본다는 점에서) 그전의 하나님의 말씀도 잘못되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자 보세요. (이런 안식교의 사상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강도보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식교에서는 이는 특별 구원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특별 구원?“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악한 강도를 특별히 구원시켰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이는 급조해서 만들어낸 사상 같습니다. ‘특별 구원‘을 주시려면 좀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주셔야지 강도 짓만 하다가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그 사람을 왜 특별 구원 시켜주십니까? 그리고 스데반도(행 7:59) “내 영혼을 받으소서“ 그랬습니다. “영혼을 받으소서.“ (안식교 사상에 의하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영혼을 받으라는 말이 가능하냐? (그 말입니다). (저희가 안식교측의 대표자 김대성 목사와 지상논쟁을 할 때 그것을 물었더니) 김대성 목사가 (이는) “정신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이 됩니다) “정신을 받으소서?“ 이런 말입니다. 만일 “영혼“을 “정신“으로 해석한다면 성경은 완전히 이상해집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원한 불‘(마 18:8), ‘예비된 영영한 불‘(마 25:41), ‘영원한 불의 형벌‘(유 7)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신계훈 씨의 책에 보면 뭐라고 했는가 하면 여기 영원하다는 것은 한 세상, 한 세대를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202쪽~203쪽에 그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영원한 불“과 “영영한 형벌“이 한 세대를 말한다면 (이런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5장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편 사람에게는 영생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왼쪽에 있는 ‘영원한 불‘은 한시적 불이고, 오른쪽의 영생은 영원한 영생이냐는 말입니다. 둘다 헬라어 단어는 ‘아이오니오스‘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계훈 목사가 어째 모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이 ‘아이오니오스‘를 “한 세대“나 “한 세상“으로 말하면 마가복음 3장 29절에 성령을 훼방한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할 때에도 ‘아이오니오스‘를 사용했고, 마태복음 12장 32절에도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은 설명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도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이 때도 ‘아이오니오스‘를 썼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과 18절에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는데 모두 다 ‘아이오니오스‘를 썼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의 영원이 ‘아이오니오스‘라면 영원한 벌의 그 ‘영원‘도 똑같은 영원한 ‘아이오니오스‘이어야 맞는 것이 아닙니까?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도 ‘아이오니오스‘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0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여 함이로다“도 같습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의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5장 10절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1장 11절에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유다서 7절에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모두 다 똑같은 ‘영원‘입니다. 왜 이 영원은 진짜 영원이고, 왜 저쪽은 가짜 영원입니까? 그쪽이 영원한 영원이면, 이쪽도 영원한 영원이어야 하고, 이쪽도 영원한 영원이 아니면 저쪽도 영원한 영원이 아니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지난 번 논쟁(1997년 월간 <교회와신앙>에서 진용식·최삼경 목사와 안식교측 김대성 목사간의 지상논쟁을 말함)을 할 때 나사로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부자와 나사로 기사가 비유냐, 아니냐에 대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김대성 목사는) 나사로 사건이 비유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비유라는 말이 한 번도 없는 데 말입니다. 비유를 말씀하실 때는 항상 ‘비유를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비유라면 ‘아브라함‘이니, 거지 ‘나사로‘라는 실명을 거론할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리고 비유를 쓰더라도 가짜를 가지고 비유를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델을 가지고 그것을 비유로 할 때 그 모델과 그 본질이 유사할 때 모델로 쓰는 겁니다. (만일 나사로 사건이) 비유라고 한다면 영원하지 않은 지옥을 어떻게 영원한 것처럼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런 말입니다). (안식교인들의 말에 의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이 사탄의 소리인데 말입니다. 비유가 아닙니다. 혹 비유라고 해도 영원한 지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안식교인들은) 무슨 말이 되는가 하면, 언제나 화잇의 계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화잇의 계시를 받아드리는 것을 전제하다 보니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성경 계시 자체를 못 믿을 것으로 말을 해버렸어요. 김대성 목사가 (본인과 논쟁을 할 때에) 뭐라고 했는가 하면 이것은 ‘이집트에 있는 설화‘라고 했습니다. 설화! 그러면 성경에는 이집트의 설화가 들어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경에 계시 아닌 계시가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안식교에서는 그 이집트의 설화를 성경에서 빼버리시고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정직하겠죠?) 그러니까 (나사로 사건을 비유로 보려는) 잘못을 합리화하다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즉 이 성경의 온전한 계시를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제가 볼 때 화잇의 계시를 포기하지 않는 한 화잇의 계시와 성경의 계시와 모순되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입니다. 왜? 화잇의 계시가 성경 위의 계시라고 말로는 안 하지만, 화잇의 계시를 포기하지 않고 화잇의 계시에 준해서 보고, 화잇은 선지자보다 더 큰 자라고 (보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의 2300주야를 포기하고, 다음 시간에 얘기하겠습니다만, 안식교회가 존재할 수 있느냐 그 말이에요. 그런데 조금 전에도 여러 번 질문했습니다. (안식일교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데)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게 아니다“라고 한 화잇의 그 예언은 어떻게 된 거냐 이 말입니다. 화잇의 계시를 그렇게 높이는 책들이 80%가 표절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또다시 뭐라고 변명을 하겠습니까? 화잇을 부정하고 안식교를 새로 만들려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한 화잇의 계시는 성경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성경에서) ‘너희가 육체는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의 불멸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멸절 되어서 없어진다고 하며 헬라철학을 말하는 것은 헬라철학을 기준으로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문제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사실에 엄청난 다원적이고 다변적인 세상 학설들로 존재합니다. 조금 전에 안식일 문제 취급할 때도 세상 역사를 가지고 수도 없이 얘기를 하셨는데, 얼마든지 다른 반증이 가능한 것입니다. 안식일교회의 교회사가가 쓴 책과 정통교회의 역사가가 쓴 책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대로 해야지. 외부에 있는 다른 책을 가지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레니우스의 말처럼 우리 영혼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영원한 줄로 믿습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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