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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야곱의 교훈
2017년 10월 05일 (목) 01:23:31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창세기 32장 24-31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 말로는 구약에 2600번 정도 그리고 신약에 80번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이 말이 제일 처음 나오는 곳은 창 32:28입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하나님께서 앞으로는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에게 지어주신 새로운 이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단지 야곱 개인의 이름으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우선 야곱의 자손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12아들을 낳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12지파가 생겨났습니다. 이 12지파 전체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더욱 확대되어서 민족 전체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나라 이름으로도 쓰였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그 나라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역시 그 나라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라가 분열되었을 때 남쪽 나라를 유다라 부르고, 북쪽 나라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이 망한 뒤에는 남 유다를 다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더욱 그 의미가 커져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대표적으로 갈 6:16을 보면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때로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구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새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 개인의 이름 이스라엘이 그의 자손의 이름으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을 부르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도대체 이 이름이 어떤 이름이기에 이렇게 놀라운 이름이 된 것일까요?


이스라엘

먼저 ‘이스라엘’(ישראל)이라는 말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사라’(אל )라는 말과 ‘엘’(שרה)이라는 말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사라라는 말은 ‘싸운다’, ‘다툰다’라는 뜻의 말이고, 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말 뜻 그대로 보면 ‘하나님과 다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다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오늘 본문 창 32: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겨루다’라는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지금 20여년 만에 하란의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형 에서와의 화해 문제입니다.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피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어서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람들을 보내 상황을 파악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에서가 야곱이 돌아오는 것을 알고 400명을 이끌고 지금 야곱에게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에서에게 선물을 보내 화해를 시도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얍복강 가에서 홀로 남아 밤새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얼마나 처절하게 기도했던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이 처절한 철야기도 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새 이름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옛 이름 야곱은 무슨 뜻일까요? 창 25:26에 이렇게 설명되어있습니다.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그러니까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지금까지 이 이름의 뜻대로 앞 사람의 발꿈치를 잡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선 어려서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으면서 살았습니다. 형을 이기려고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형과 겨루며 살았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인이 되면서는 외삼촌 라반의 발꿈치를 잡으면서 살았습니다. 외삼촌에게 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외삼촌과 겨루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사람만 상대하며 살아왔습니다. 사람의 발꿈치를 잡으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사람과 겨루어 이기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살았습니다. 사람과 겨루어 이기면 인생에 성공할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할 때 인생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일에 최선을 다해 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야곱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삶의 변화입니다. 야곱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엡 4:22-24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옛 사람이 바로 야곱이고, 새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우리가 야곱의 삶을 벗어버리고 이스라엘의 삶을 새롭게 입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야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만 상대하고,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성공을 꿈꾸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상처받고 그 안에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에 힘쓰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그 안에서 참된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아직 우리 안에 남아있는 야곱의 삶을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사람만 상대하는 삶, 사람과의 관계에만 몰두하는 삶을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이스라엘의 삶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스스로 이스라엘이라고 착각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러주시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열망

우리가 야곱에게 배우는 또 하나의 교훈은 거룩한 열망입니다.

창 25장을 보면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파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에서가 사냥하러 나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냥하는 동안 먹은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마침 야곱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자기가 만들고 있는 음식을 줄 테니 에서가 가진 장자의 명분을 자기에게 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자기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냐며 장자의 명분을 팔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맹세하라고 요구하자 에서가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넘기고, 에서는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장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말합니다. 특히 가정을 통솔할 권리와 유산상속시 두 배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에서가 팔아넘긴 이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받는 특별한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장자의 명분에는 세속적인 권리와 다른 영적인 권리가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창 25:34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아넘긴 행동을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인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습니다. 이 영적인 권리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 영적인 권리를 차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야곱은 이 영적인 권리를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이것을 갖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점을 눈여겨보셨던 것입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런 말을 합니다. “여행은 다리 떨리기 전에 하라!” 다리가 떨려서 걷지 못하면 여행을 하지 못하니까 아직 다리가 튼튼할 때 여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합니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라!” 마음속에 여행에 대한 열망이 일어날 때 여행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행에 대한 열망이 식어지면 아무리 여건을 다 갖추고 있어도 여행은 떠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 ⓒpixabay.com / Knarrhultpia / may-703626_640

영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일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에 대한 열망,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음에 대한 열망... 이런 열망이 있을 때 우리는 야곱의 삶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 2:13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룩한 열망을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열망을 이루게 하시며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입니다. 어떤 분이 건축헌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가 볼 때 그분의 형편으로는 너무도 과하게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건축헌금으로 드리셨습니까?”

이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성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성전헌당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더랍니다. 그래서 정말 뜨겁게 기도를 드리는데 믿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얼마를 헌금해야겠다는 열망이 일어나더랍니다. 그런데 헌금 후에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그 돈을 채워주시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 안에 거룩한 열망을 일으켜주십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열망을 거룩한 열망으로 바꿔주십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삶을 살려면 이런 거룩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열망, 하나님을 위해 살려는 열망,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끈기와 집념

우리가 야곱에게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끈기와 집념입니다.

창 29장을 보면 야곱이 아내를 얻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이 때 라반의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7년간 일을 한 뒤에 라헬을 아내로 맞기로 라반과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아내를 얻기 위해 7년간 머슴처럼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7년이 되자 외삼촌이 야곱을 속입니다.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아내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라헬도 아내로 얻고 싶으면 다시 7년을 더 일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속은 것이 분하고 억울하지만 라헬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무려 14년을 머슴처럼 일을 했던 것입니다.

정말 야곱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머슴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 끈기와 집념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브니엘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겨루는 사건입니다. 야곱이 씨름하며 하나님을 하도 놓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런데도 야곱은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손을 드셨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았고 소원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 야곱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그 이름까지 바꾸어주셨을까요? 이 야곱의 끈기와 집념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마이리얼플랜의 김지태 CSO의 글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이분이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우선 이분이 어떻게 슐츠 회장을 만날 수 있었는지를 소개했습니다. 자기가 스타트업 회사를 차렸지만 여러 차례 실패의 쓴 맛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슐츠 회장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수소문 끝에 슐츠 회장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됐답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이메일을 보냈답니다. 자기를 소개하고 만나고 싶은 사연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회신이 없어도 또 보내고 또 보냈답니다. 무려 30번째 이메일을 보낸 후에야 만나자는 회신이 왔답니다. 그래서 만남이 성사됐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슐츠 회장과 만나서 깨닫게 된 점을 소개했습니다. 슐츠 회장이 자기에게 해 준 말을 그대로 적어놓았습니다. “스타벅스를 시작하던 젊은 시절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똑같은 대출 심사원에게 1년간 200번 넘게 찾아가 설득 끝에 대출을 받았죠.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대출금을 갚았습니다.” 그리고 끝에 자신이 얻은 한 가지 깨달음을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답은 끈기였습니다.”

이분은 이 만남이 자기 인생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끈기와 집념입니다. 회신이 없어도 30번이나 반복해서 이메일을 보내는 끈기와 집념, 대출을 받기 위해 같은 심사원을 200번 찾아가 설득하는 끈기와 집념...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처럼 끈기와 집념이 필요합니다. 기도도 끈기와 집념이 필요합니다. 허벅지 관절이 어그러질 정도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갈 때도 끈기와 집념이 필요합니다.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머슴처럼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지하지 않는 끈기와 집념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야곱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야곱에게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우리는 야곱처럼 이스라엘로의 변화를 이루어 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던 야곱의 삶에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이스라엘의 삶으로의 변화를 이루어 내야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도 야곱처럼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열망이 우리 안에서 더욱 불타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야곱처럼 끈기와 집념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한 번 정한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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