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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체험이 있는 신앙
2017년 09월 06일 (수) 10:31:31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시편 30편 1-12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교육학의 한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끕니다.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배울 때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읽기만 한 것은 10%만 기억으로 남고, 듣기만 한 것은 20%만 기억으로 남고, 보기만 한 것은 30%만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고 본 것은 50%까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읽거나, 듣거나, 본 것을 내가 말해 볼 때 70%까지 기억으로 남는답니다. 여기서 할 걸음 더 나아가 말할 뿐 아니라 직접 내가 해 본 것은 90%까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육에서 체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체험학습이라는 것이 유행처럼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읽고, 듣고, 보는 수업에서 현장에서 말해보고 직접 행동해 보는 학습으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과 체험으로 터득해 보는 것은 다릅니다. 알아도 아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체험이 중요합니다. 내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체험이 따라야 그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 28장을 보면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지금까지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지금 이 벧엘에서 처음으로 직접 하나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차원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신앙은 듣고 배워서 하나님을 알게 된 신앙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서 하나님을 아는 신앙은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신앙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에서도 체험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체험을 갖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신앙의 체험이 우리의 신앙을 차원 다르게 성숙시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 30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입니다. 이 시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다윗이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것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근거로 지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 30편은 체험적 신앙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들려주는 시로 된 간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다윗이 어떤 신앙체험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체험적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간증하고 있는 신앙 체험은 어떤 것일까요?


구원의 체험

본문 1절을 보면 다윗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도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끌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 ‘끌어내사’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로는 ‘딸라’(דל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두레박을 내려 우물 저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성경에서 여러 차례 구원해 낸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렘 38장을 보면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이 왕에게 예레미야를 모함하여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구덩이 속에서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구스사람 에벳멜렉이 왕에게 음모를 알리고 왕이 보낸 30명의 사람들과 함께 예레미야를 구출하게 됩니다.

렘 38:13을 보면 이 때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여기서 ‘끌어낸지라’라는 말이 바로 이 딸라라는 말입니다.

   
▲ ⓒpixabay.com / bingngu93 / touch-2579147_640

그러니까 본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끌어내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에벳멜렉이 구덩이에서 예레미야를 구출해 낸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을까요? 2절을 보면 다윗은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그 병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병에 걸렸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죽을 병에 걸렸었습니다. 왕이지만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고칠 수 없어서 죽기만을 기다리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자기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고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יהוה רפא)께서 자기를 친히 고쳐주셔서 병을 치유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도들의 질병을 고치십니다. 오늘도 참 많은 분들이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셨다고 간증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다윗이 체험했던 이 놀라운 치유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스올은 과거 개역성경에서는 ‘음부’라고 번역했던 것입니다. 이 스올은 원래 ‘죽은 자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다윗이 질병으로 죽음의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암환자들을 보면 암이 몸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암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을 힘들게 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사업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면 사업이 어려워 경제적으로 힘든 것보다 그 어려움이 불안과 절망으로 그 영혼을 힘들게 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너무도 힘이 들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그 고통이 큽니다.

다윗도 이 질병 때문에 몸도 힘들었지만 그 영혼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영혼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스올 다시 말해 죽음의 고통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 스올에서 건져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다윗을 스올의 고통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참 많은 분들이 질병, 사업의 문제, 가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 삶의 문제들 때문에 스올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도 커서 자살까지 생각해 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다윗을 이 스올의 고통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서 이 스올의 고통을 겪고 계신 여러분을 건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혜를 간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응답의 체험

본문 2절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8절을 보면 또 이렇게 간증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

다윗이 죽을 병이 들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역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병이 나았고, 하나님의 징계가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의 기도의 자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왜 부르짖었을까요? 너무도 다급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때 묵상으로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조용한 소리로 차분하게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사람 살려요!” 소리치듯, 마치 불이 나서 집이 타들어 갈 때 “불이야!”하고 소리치듯 하나님께 다급하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하라는 명령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 기도의 명령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명령 가운데 무려 80% 정도가 기도하되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는 기도 명령 가운데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렘 33:3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아예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의 SOS와 같습니다. 우리가 SOS를 전할 때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SOS는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신호입니다. 마치 구급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달릴 때 다른 차들이 비켜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부르짖는 기도에 우선적으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 풍성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까지 한국교회는 기도할 때 주로 부르짖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이것을 ‘통성기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 교회도 이렇게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신학사전에 고유명사 형태로 한국말 ‘통성기도’라는 명칭이 실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한국교회에 기도 응답이 풍성했습니다. 교회도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크게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기도 응답에 대한 간증도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넘어서면서 한국교회의 기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국민소득이 1만 불이 넘어서면서 교회도 재정이 넉넉해 졌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생존의 문제로 절박한 사람들이 적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통성기도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에 부흥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간증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왕입니다. 체통 면에서 왕이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또한 왕은 부족한 것이 없어서 간절히 애원하는 일을 해 보지 않아서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그러나 다윗은 왕이면서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목자시고 자기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상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면서도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응답의 체험이 그로 하여금 찬양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처럼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체면 때문에 부르짖는 기도를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니십니까? 혹시 하도 오랫동안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아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십니까?

다윗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약속대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의 체험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변화의 체험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지금까지 다윗은 죽을병에 걸려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죽을 것이라고 대적들이 조롱하는 소리를 들으며 슬픔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베옷을 입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울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울 수밖에 없던 사람이 춤을 출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슬퍼해야 할 사람이 축제의 옷을 입고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변화시켜주신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셔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한 신문에 소개된 손태영이라는 분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이분은 3살 때 걸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약하고 짧은 왼쪽 다리 때문에 걸음은 흔들리고 뒤뚱거렸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하굣길에서 동네 꼬마들이 절름발이라고 놀리면서 돌을 던지고 달아났습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견딜 수가 없어 부모님께 떼를 써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들 때까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이 분의 어머니는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 이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이분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3살이 되던 어느 날 이분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도 무엇인가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분은 이런 변화가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대입검정고시까지 합격했고, 충북대 법대를 졸업까지 했습니다. 졸업 후에 아무 곳에서도 이분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인터넷 벤치기업인 [문헌정보]라는 회사를 세워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 성공소식을 들은 한 대학이 이분을 겸임교수로 초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대기업, 정부 여러 기관이 이분을 초청해서 강의하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이분은 지금 자기는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장애인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매일 매일이 기쁜 나날이라고 말합니다. 이 분의 어머니는 또 얼마나 기쁠까요? 하나님께서 이분을 슬픔이 변하여 춤추게 해 주신 것입니다.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신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 인생을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근심 걱정이 변하여 소망이 되게 해 주십니다. 다윗을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더욱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변화의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체험이 있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체험이 있는 신앙을 가지시기바랍니다. 체험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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