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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교만을 경계하라
2017년 07월 12일 (수) 13:44:58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민수기 16장 1-3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성경을 읽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삼상 9:21을 보면 그가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이 말씀에서 보듯이 사울은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삼상 11:6을 보면 사울이 왕으로 세움 받은 직후 모습은 이랬습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암몬과의 전쟁에 나설 때 하나님의 영의 감동되어 왕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왕으로 자리 잡고 난 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때 제사장도 아닌 왕이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삼상 13:13을 보면 이 일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아말렉과 전쟁에 나가서 또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라는 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삼상 15:11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여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사울은 겸손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따랐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교만해 진 것입니다.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종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마저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고, 세움 받고, 쓰임 받는 것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계속 은혜를 받아야 하고, 계속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도중에 하나님께 외면당하거나 아예 버림을 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그러면 교만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있습니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그러니까 교만이란 우선 자기를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않고 건방지게 행동하지 않으면 교만하지 않는 것일까요?

어거스틴은 교만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알송달송한 답을 한 일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겸손한 자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러니까 자기는 결코 드러내놓고 자기를 자랑하지도 않고 사람들 앞에 건방지게 행동하지도 않으니, 나는 겸손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큰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 ⓒpixabay.com / Comfreak / ship-1366926_640

이렇게 볼 때 사전에서 정의한 말로는 교만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교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이 교만하다하여 질책하며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만은 스스로 높이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고라, 다단, 그리고 온이라는 사람이 당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자기들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와 맞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왜 스스로 높이느냐라고 따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에게 스스로 높인다고 비판하고 있는 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아는 대로 모세와 아론은 스스로 높이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높이셔서 그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설득하셔서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고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아론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택하셔서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왜 고라 일당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스스로 높인다고 비판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실제로 스스로 높이는 자들은 자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높이고 보니 모세와 아론도 별것이 없는데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상은 자기들이 스스로를 높여놓고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높이는 자들이라고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만입니다.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라 일당은 자기 스스로 높여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고 지도자인 모세와 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세우신 제사장과 맞서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최고 지도자 모세와 제사장 아론을 깔보고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만은 고라 일당만의 문제일까요? 이 교만이 우리와는 무관한 문제일까요?

우리 시대의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인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 생각이 자신 외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들은 무시하는 성향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바로 이 생각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교만입니다. 자신을 진리의 기준으로 세우면서 하나님의 자리를 뺏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틈만 나면 자기를 높이려고 합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의 문제는 본문에 나오는 고라 일당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문제이고 또 여러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 교만을 경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것을 경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만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때

오늘 본문을 보면 고라 일당이 교만하게 행동하게 된 배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다른 자격

1절을 보면 고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 여기서 고핫은 레위지파의 일원으로 성전의 기물을 관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핫의 자손으로 성전에서 일하던 일종의 고위 관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과는 친사촌 형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라는 남다른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단과 온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 그러니까 다단과 온이라는 사람은 다 르우벤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르우벤 자손은 야곱의 장자입니다. 사실 르우벤 자손들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장자인 자기들의 지파 르우벤 자손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혈통적인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라 일당은 남다른 자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고위직 직함을 가졌습니다. 최고지도자의 친인척입니다. 그리고 장자 지파의 자손이라는 우월 의식을 가졌습니다. 이런 남다른 자격이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져있던 교만을 충동질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높이는 행동을 저지르게 됐던 것입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 존경하던 한 권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아들 셋이 있는데 교육을 잘 시키셨습니다. 아들 셋이 다 똑똑할 뿐 아니라 신앙도 반듯합니다. 세 형제는 초중고 다니며 늘 전교 1등을 했습니다. 대학도 셋 다 서울대학교에 다녔습니다. 그것도 두 아들은 서울 법대, 또 한 아들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대학교 교수, 한 아들은 변호사로 잘 삽니다. 물론 신앙생활도 잘하고 교회에서도 봉사를 잘합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은 아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자식 이야기를 피하십니까? 권사님 대답이 혹시라도 자식 이야기를 할 때 자랑이 될까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누를 끼칠까봐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남보다 많이 배웠거나, 남보다 많이 가졌거나,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거나, 남들이 부러워할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교만한 자리에 앉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약점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이 말은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며 한 말입니다. 회중으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거룩한 백성이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계신데 왜 모세와 아론 두 사람만 특별히 거룩한 자리를 독점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렇게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레 10장을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하다가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서 분향하다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엄하게 징벌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이 일로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경우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두 아들을 한 순간에 잃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제사장으로서 자식을 제대로 훈육시키지 못한 죄책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지금 고라 일당이 아론을 공격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사장이라고 거룩한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데 과연 자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여 두 아들을 징벌로 죽게 했다면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라 일당은 아론의 이 약점을 빌미 삼아 자기들을 스스로 높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과 아론이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들이 아론보다 거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 24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이 엔게디에 숨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들과 함께 추격해 갔습니다. 그러던 중 사울이 급하게 화장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길가 양의 우리에 굴이 있어서 뒤를 보러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 굴 깊은 곳에 다윗이 피신해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가만히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습니다. 그러면서 삼상 24:6을 보면 다윗이 마음이 찔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일로 사울을 폐하고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고자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울을 비난하고 자기가 사울을 처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에 자기는 결코 나서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비난하거나 깎아 내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다윗을 귀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남의 약점이 드러났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그를 깎아내리고 대신 나를 높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때가 교만해지기 쉬운 때입니다.


사람들의 인기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고라 일당이 250명의 지휘관과 함께 모세를 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250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저들은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250명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도록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250명은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고라 일당은 백성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들 250명의 추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로부터 모세와 아론보다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로부터 모세와 아론을 대신해서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고라 일당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백성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자기를 따르겠다는 유력한 지도자들이 250명이나 됩니다. 저들은 당연히 착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모세와 아론을 능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대중들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들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들의 지지를 더 끌어내시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실망시키는 말씀, 저들을 떠나게 만드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끝내 저들의 입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을 들으셔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남들이 나를 띄울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 말에 현혹되어 정말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들의 인기에 편승해서 나를 높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때가 교만에 빠져들 위험한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우리 안에 타락한 본성을 품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만입니다.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본성이 꿈틀거리고 살아납니다. 특히 남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게 될 때, 주변 사람들의 약점이 드러날 때, 그리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게 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때가 아주 위험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마 23:1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높이려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이려 할 때 결국은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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