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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거짓 증거하지 말라
2017년 03월 15일 (수) 15:49:13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출애굽기 20장 16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오늘 본문은 십계명의 제 아홉째 계명입니다. 계명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몇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선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계명이고, 다음으로 5-10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5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기초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를 공경할 수 있어야 비로소 다른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웃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7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웃의 행복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8계명에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웃의 소유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에서는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금해야 할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금해야 할 것 또 하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 증거란 무엇인가

그러면 거짓 증거란 무엇일까요?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거짓 증거란 고대 사회의 사법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직 사법이 전문기관으로 독립되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권력자들이 재판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나 검사와 같은 전문적인 수사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철저한 수사를 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변호사도 없었기 때문에 피고를 위한 변론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증거를 두고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사법적 체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증인들의 증언입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권력자가 여러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판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증언의 진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최선의 장치였습니다.

신17: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증인은 반드시 두 세 사람을 세워야 한다고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신 19:16-1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만일 거짓 증언을 했을 때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거짓 증거로 인해서 정의가 무너진 일들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재판이 단지 증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거짓 증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상 21장에 나옵니다. 북왕국 아합 왕 시절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비옥하고 경치도 좋은 땅 이스르엘에 북왕국의 별장궁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별장궁전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합이 별장궁전의 정원이 좁게 느껴졌습니다. 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까지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더 좋은 포도원을 줄 테니 포도원을 교환하거나 아니면 값을 후하게 쳐줄 테니 팔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나봇은 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포도원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고, 당시 유산은 집안 대대로 계승해야 하는 전통적인 규범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합은 속이 상해서 식음을 전폐하고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 ⓒpixabay.com / geralt / smartphone-1790833_640

이 모습을 딱하게 여긴 왕비 이세벨이 흉계를 꾸몄습니다. 밀서를 써서 이스르엘 성읍 지도자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두 명의 거짓 증인을 매수해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고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읍 지도자들이 당시 권력을 쥐고 흔들던 왕비의 명을 거절할 수 없어서 거짓 증인을 매수해서 고발했고, 그 고발을 근거로 재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봇을 법대로 돌로 쳐 죽였고, 법대로 그의 재산은 왕실이 몰수하게 됐던 것입니다.

이 때 이 무서운 악을 저지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두 명의 거짓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돈으로 매수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짓증거는 직접적으로는 재판의 상황에서 위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증으로 이웃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거짓증거를 악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정의를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보다 넓은 의미로 확대되었습니다. 꼭 재판 상황이 아니더라도 정직하지 않은 말로 이웃에게 피해를 입게 하는 일로 확대된 것입니다. 성경 전체로 볼 때 확대된 거짓 증거는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이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잠 6:16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예닐곱 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19절에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을 꼽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 거짓증거는 이렇게 거짓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입게 만드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없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변조하거나 왜곡합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비방하는 것입니다.

시 15편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넓은 의미로 거짓증거는 이렇게 입으로 이웃을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의 허물을 이곳저곳으로 옮기고,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웃이 여기저기에서 욕을 먹게 만들고, 회개한 뒤에라도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입니다.

레 5: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웃이 거짓된 증언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그 자체를 죄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넓은 의미로 거짓증거는 이렇게 말해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도 말하지 않아서 이웃에게 피해를 입게 한다면 이것은 ‘침묵의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진리가 짓밟히고 거짓이 난무할 때 저들이 침묵했다면 저들은 죽음을 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고 알고 있는 진리를 적극적으로 말했습니다. 심지어 말하지 않으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도 진리를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죽음을 순교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침묵의 거짓말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고 있습니다. 침묵의 거짓말 때문에 정의가 짓밟히고 있습니다. 침묵의 거짓말 때문에 이웃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를 하지 않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거짓 증거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가 누군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요 8:4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대화 도중에 저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저들이 진리를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앞부분인 요 8:3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를 믿어보려고 예수님 앞으로 나온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온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우선 저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유대인들입니다. 게다가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예수를 믿어보겠다고 예수님 앞으로 나온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일 뿐 아니라 예수 믿고 보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저들이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거짓을 말하며 살아간다면 주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짓은 우리를 마귀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지, 나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거짓을 말한다면 우리는 마귀의 자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을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의 사람이라면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거짓을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 말의 책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눅 19:2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로 우리 자신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약 3:5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말 한 마디가 불이 산불이 되어 산 전체를 태우는 것처럼 큰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번에 다녀온 태국선교여행지는 태국의 최북단 치앙마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골든트라이앵글이라 하여 태국이 미얀마와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의 인접지역입니다. 소수 민족인 산족들의 거주지이기도 합니다.

이 골든트라이앵글은 세계적인 아편 생산지요 마약 제조지입니다. 이곳은 고산 밀림지역이기 때문에 각 나라가 통제하기가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아편을 재배해 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아편에 대해 새롭게 많은 부분을 알게 됐습니다. 아편은 무려 6000년 전부터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이 아편은 치료용 약재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본초강목>을 보면 이 아편은 “혈중기체(血中氣滯)와 기중혈체(氣中血滯)를 풀어 통증을 가라앉힌다.”고 쓰여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이 아편이 없으면 의학은 절름발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아편은 마약으로 탈바꿈하여 수많은 사람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어 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도 이와 같습니다. 축복의 말로 쓰이면 이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나 거짓의 말로 쓰이면 이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할 때 말의 결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을 할 때 말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칫 이 말이 거짓의 말이 되지 않을까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이웃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라는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게 되는 대상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게 될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의 이웃에게 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말하지 못하는 농아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을 키우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어서 수화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커서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 드릴까를 생각하다가 수화를 가르쳐드리기로 했습니다. 두 팔을 벌려서 하늘의 새를 설명했습니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를 설명했고, 어느 추운 겨울 어머니가 손수 떠주신 따뜻한 털모자를 설명했습니다. 아들의 정성 때문에 어머니는 수화를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르쳐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몸짓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너무 막막했습니다.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갖은 몸짓을 다해 보았지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나머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보고 말하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말할 때 그 사람을 생각하며 말해야 합니다. 그 안에 사랑을 담으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 이웃을 생각하며 말해야 합니다. 그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담으면 더 좋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웃을 생각하며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웃이 이 말의 결과 어떤 피해를 입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웃에 대해 말할 때 그 이웃을 생각하며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은 말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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