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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살인하지 말라
2017년 01월 11일 (수) 00:26:24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출애굽기 20장 13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오늘 본문은 십계명의 제 여섯째 계명입니다. 내용은 이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이 계명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아주 짧고 간결합니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고 오해할 소지가 참 많습니다. 정말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사실 성경을 보면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신 부분들이 나옵니다. 율법을 어긴 사람들 가운데 죽이라고 명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나라를 응징할 때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계명은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이 계명과 연관된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전쟁입니다. 적이 쳐들어와서 우리를 죽이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우리는 그대로 당하고만 말아야 할까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이 주장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니까 집총을 거부하고 국방의 의무를 포기해야 할까요? 역시 이 계명을 이렇게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pixabay_com / Alexas_Fotos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사회윤리적인 문제들도 이 계명과 연관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형제도 문제, 낙태 문제, 그리고 안락사 문제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도 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연관된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해결하기 힘든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 계명만을 떼어서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우선 십계명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런 전체의 맥락에서 이 말씀을 해석해 주신 것을 본 받아서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계명의 의미

그러면 이 계명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계명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십계명 전체의 맥락에서의 의미

이 계명은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계명은 독자적인 계명이 아니고,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된 계명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전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런 목적 하에서 이 계명의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십계명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애굽으로부터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십계명은 두 가지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1-4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고, 둘째는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것이고, 그리고 넷째는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5-10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가 오늘 본문 말씀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이 여섯째 계명을 이웃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 계명이 살인으로 이웃의 생명을 해하거나 살인을 통해서 이웃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마 5:21-22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행위보다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살인하여 이웃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보다 이웃을 미워하는 살인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창 4장을 보면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저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 4:5을 보면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셨으면 그 이유를 살펴야 하지 않았을까요? 내 제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아주신 동생 아벨에 대한 질투와 미움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바로 살인 동기를 가지게 됐고, 끝내 동생 아벨을 살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 이전에 이와 같은 살인 동기를 문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이런 살인 동기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우리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이웃에 대한 시기, 질투, 미움, 원망과 같은 이런 살인 동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눈으로 이 계명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이웃에 대한 죽이고 싶은 마음, 이웃을 죽도로 미워하는 마음, 이웃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없애야 하겠습니다. 살인 동기가 우리 마음속에 싹트지 않도록 시기, 질투, 미움, 원망, 그리고 불평과 같은 마음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구약 전체의 맥락에서의 의미

이 십계명은 구약의 계명들 가운데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셀 수 없이 많은 명령들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구약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선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생명과 직접 연결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생명을 해하지 말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인간 생명은 무엇이며 왜 인간 생명을 해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그 뜻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인간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창 1:2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주변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말이었다는 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과 다른 문헌에 ‘신의 형상’이라는 말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신의 형상이라는 말은 오직 왕에게만 사용된 것에 비해서 성경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실제로 고대 시대에 왕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신의 대리자 또는 신의 아들, 나아가 신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중국에서도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왕의 생명은 일반 백성들의 생명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왕들이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고 심지어 왕이 죽을 때 멀쩡히 살아있는 백성들을 왕과 순장시키기까지 한 것은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 8: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여기서 관을 씌우셨다고 했는데, 이 관은 왕관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왕처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인간을 왕과 같이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 모든 인간이 왕같이 존귀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권력이 있든 없든,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그것 하고는 관계없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모두 다 똑같이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존귀한 존재를 존귀하지 못한 존재로 취급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웃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뜻으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계명의 실천

그러면 우리는 이제 이 계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생명을 해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이 여섯 번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해하는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쟝 깔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오늘 본문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순히 피를 흘리지 않은 것만으로는 살인죄를 피하지 못한다. 이웃의 안전에 해로운 일을 실행했거나 시도했거나 원했거나 계획했다면 그것은 살인죄로 인정된다. 또 능력과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이웃의 안전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시 율법에 대한 흉측한 위반이다.”(Ⅱ.8.40)

그렇습니다. 살인에는 직접적 살인 외에도 간접 살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흡연을 하는 경우,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 불량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 부실자재나 함량미달인 자재로 건축시공을 하는 경우 등입니다. 세월호 사고처럼 국가나 기업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대규모 인명이 살상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형태의 간접살인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악플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에게 악플을 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해 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심할 경우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경우 근자에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후원 계좌에 ‘18원’을 후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18원씩을 후원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욕하는 것이죠. 그리고 일컬어 ‘문자폭탄’을 투여하기도 한답니다. 한 정치인은 수만 건의 비난 문자가 폭주해서 결국 전화번호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이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동조해서도 안 되고, 가담해서도 안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 여섯 번째 계명을 어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살인동기를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살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살인행위도 금하시지만 살인동기 역시 금하십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 누군가가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도 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복수를 생각하며 잠을 설치고 있는데 꿈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그것을 당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해드릴까요?”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제 오른 쪽 눈을 뽑아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우리 마음속에 칼을 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라도 그 사람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미움 그 자체가 이미 살인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미움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미움은 우리 마음속에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무기와 같습니다. 그대로 두면 우리는 언제라도 누군가의 생명을 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기를 손에 들고 있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미움도 제거해 버려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은 소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금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이 계명의 적극적인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영적운동을 일으켰던 두 거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존 웨슬레 목사와 조지 휫필드 목사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볼 때 이 두 사람은 쌍벽을 이루며 강력한 라이벌로 여겨졌습니다.

웨슬레를 따르는 사람들이 휫필드를 폄하하면서 웨슬레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천국에서 휫필드 목사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웨슬레가 휫필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떠보려고 한 질문이었습니다.

웨슬레가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이렇게 동조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는 휫필드 목사님의 신앙관이 잘못됐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죠?” 그러자 웨슬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제 말은 하나님께서 휫필드 목사님이 너무 귀한 종이라서 하나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 앉히실 것이기 때문에 제가 감히 그분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생명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내 기준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내 눈에 형편없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심지어 내게 혐오스럽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존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고 나가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역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결코 이웃의 생명을 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웃을 향한 미움을 털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존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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