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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분석② ]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의 표절을 밝힌다
주석도, 설교도, 수필도 표절을 걸러줄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06월 21일 (화) 14:25:46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교회와신앙> 상임이사

서울교회 원로 목사님으로, 목회자로, 학자로 많은 책을 쓰셨고, 과거에도 물론 지금도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이종윤 목사님께서 한 분(몽고메리 보이스)의 설교를 그대로 표절하여 설교하고, 그것으로 목회자들에게 강의하고, 역자가 아닌 저자의 이름으로 책까지 출판하신 행위는 한국교회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한국교회의 또 다른 부정적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아픈 마음으로 그 표절의 진상을 두 번째로 밝힌다.
 

서론: 이종윤 목사님은 누구에게 무슨 죄를 지었나?

1. 표절을 하면 네 가지 대상에 죄를 짓게 된다.

표절은 큰 죄다. 누가 했어도 표절은 죄지만, 그것도 이종윤 목사님처럼 크신 분의 표절은 작은 목회자가 한 두 번 한 설교를 표절하여 말로 설교한 것과는 다르다. 수백 번의 설교와 또 강의와, 수십 권의 책을 표절하여 출판하고도 표절이 아닌 것처럼 한다면 표절 자체보다 그 변명과 구실이 더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다.

큰 사람은 작은 죄도 큰 죄가 된다. 작은 사람의 큰 죄는 때로 작은 죄가 될 수 있지만, 큰 사람의 작은 죄는 그냥 묻을 수 없다. 그러나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은 큰 사람의 작은 죄가 아니라 큰 사람의 큰 죄다. 따라서 그 죄의 책임은 더 크다. 대통령은 기침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화려한 학력과 화려한 저서 활동을 하셨던 분으로서, 그것도 대학 총장까지 하셨던 분으로 용납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표절은 과연 무슨 죄가 되는지 생각해 보자. 표절은 네 가지 죄가 된다.

첫째,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은 원저자 보이스 목사에 대한 죄다.

이종윤 목사님은 필자가 가진 자료에 의하면 40여 년 동안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의 책을 표절하여 출판까지 하셨다. 이 목사님의 표절은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만 표절했는지 다른 분의 것도 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 목사님은 1977년에 보이스 목사의 책을 표절하여 첫 번째로 <빌립보서 강해>를 출판하였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표절 설교를 하셨다.

이는 제일 먼저 이 목사님의 표절은 원저자 몽고메리 보이스에 대한 죄다. 이종윤 목사님은 보이스 목사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둔갑시키고, 각색하고 때로는 빼고 더하는 섬세함까지 보이셨다. 표절을 하다보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것이 표절이란 죄가 물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약점이요, 함정이다. 이 목사님은 보이스의 영성도 자기 것으로 하고 보이스의 연구도 자기 것처럼 사용하였다.

누구나 표절을 할 때, 표절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얻고자 하는 것을 노력도 없이 쉽게 얻으려하기 때문에 빠지는 함정이다. 그 후에는 가능한 그것을 숨기고, 숨겨지기를 바라는 꼼수를 부리게 된다. 이종윤 목사님 같은 분이 표절이 얼마나 비난 받아야 할 죄인지 모를 리가 없다고 본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심히 괴로우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설교 후에 교인들이 ‘은혜 받았습니다.’고 할 때마다 양심 앞에서는 부끄러우셨을 것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표절을 인정하시고,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모든 책을 폐기하시고 변상도 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자유하실 것이다. 밀도 있게 후론하겠지만 ‘주석이니 표절이 아니다’ ‘설교이니 표절이 아니다’ ‘저자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표절이 아니다’라는 말은 변명의 극치다. 회개하는 멋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종윤 목사님은 너무 오래 동안 보이스 목사의 경험, 사상, 연구, 인격을 훔친 죄를 범하셨다. 이제 보이스 목사님이 천국에 가셨으니 이 땅에서 보이스 목사님에게 사과도 회개도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먼저 공개적으로 회개하시고, 또 그 후손에게라도 사과하고 회개하셔야 할 것이다. ‘그 후손들과 이 목사님의 자녀들이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라고 하였으니, 더 용서를 구하기도 쉽고, 용서 받기도 쉬울 것으로 믿는다.

둘째,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은 보이스 목사님의 출판권을 가진 출판사(미국과 한국)에 대한 죄다.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에 대하여 출판권을 가진 미국 출판사와 한국 출판사 모두에게 죄를 범하셨다. 미국 출판사 ‘BakerBooks’는 과연 이 목사님의 표절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한국의 출판권을 가진 ‘도서출판 줄과추’가 이것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자세를 가질지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종윤 목사님은 책 출판을 중단했다고 들었다. 이종윤 목사님이 책을 출판할 때는 보이스 목사의 책들이 한국에 출판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 후에 출판사 ‘도서출판 줄과추’가 정식으로 출판권을 획득하여 출판하게 되자 문제가 될 것으로 알고 출판을 중단했는지, 아니면 서울교회 내부에서 문제가 되자 중단했는지 모를 일이나. 그러나 이는 표절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일이 떳떳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간접적 시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표절이 아니라고 한다면 출판을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저자에게 허락까지 받았으니 표절이 아니라는 논리가 객관적으로 맞다면 정정당당하게 출판을 계속 하실 수 있어야 정직할 것이다. 그런데 출판을 중단했다는 말은 죄가 됨을 스스로 인정하셨다는 말로 보인다. 그렇다면 회개를 못할 것도 없을 것인데 왜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든 책에는 판권 내지 저작권을 밝히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종윤 목사님이 발행인으로 되어 있는 ‘필그림 출판사’에는 저작권을 밝히는 표시가 없다는 점이다. 우연일까? 혹시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견한 일말의 양심의 소리 때문에 저작권이니 출판권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이 저자가 아님은 분명히 아실 것이니 그래서 저작권까지는 주장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지금이라도 표절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판매한 책의 수입을 정직하게 밝히시고 변상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은 좁게는 설교 청취자와 도서 독자들과, 넓게는 한국교회에 대한 죄다.

모든 죄는 내용이 있고, 대상이 있다.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죄는 보이스 목사와 그 출판사에 대하여만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설교 청취자와 도서 독자에게도 죄를 지은 것이다. 우선 ‘서울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큰 죄를 지었다.

사실 이 목사님의 표절은 ‘충현교회’ 담임목사 시절에도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충현교회출판부에서 <빌립보서 강해>를 지은이와 발행인 이종윤 이름으로 1990년 5월 30일자로 초판 발행을 하였다. 이 때는 이 목사님이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교수로 있었던 1977년인데, 이미 <빌립보서 강해>를 초판을 했는데 왜 충현교회에서는 그것을 숨기고(?) 출판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충현교회에서는 1977년 발행한 <빌립보서>를 숨겼는데, 서울교회에서 발행한 <빌립보 강해>에서는 소급하여 1977년 4월 2일을 초판발행일로 하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 목사님은 이미 충현교회에서도 보이스 목사의 설교 표절을 하였다는 증거라는 점에서 충현교회 교인들에게도 회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이 목사님은 서울교회 앞에서는 철저하게 사과하고 회개하셔야 옳은 일이다. 그것은 서울교회 교인들이 가장 큰 영적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혹 서울교회 교인들의 99%는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표절을 했어도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하고, 단지 1%만이 이 목사님의 표절에 실망하고 비난하고 공격한다고 하여도, 그들에게 사과하고 회개하셔야 한다. 그들은 이종윤 목사의 인격과 노력과 연구로 나온 진리로 알고 존경하며 설교를 들었고 보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보이스 목사의 것을 사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교회가 부흥되고, 이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는 교인들을 보시며 양심이 고통스러우셨을 것이라고 본다.

이 목사님께서 그렇게 많은 책들을 출판하시면서 역자라고 하지 않고, 저자라고 하셨다. 설교를 할 때도 보이스 목사의 설교를 자기 설교로 한 것도 죄였지만, 책을 출판하실 때의 죄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 왜냐하면 말보다 글은 더 책임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 몇 판씩 팔린 것을 보면 수입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익도 고통스러운 수익이 아닐 수 없다. 회개하고 삭개오처럼 4배로 갚아야 하지 않을까.

넷째로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은 하나님 앞에서 죄다.

모든 죄는 세상에서 대상이 있지만 나아가 하나님께 죄가 되는 이중적 책임이 있다. 다윗이 우리아와 밧세바에게 죄를 짓고도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시 51:4)라고 한 고백의 의미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목사님은 사람에게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죄를 지으셨다.

이 목사님도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는 말씀을 알고 계시고 가르치셨을 것이다. 또 ‘거짓말하지 말라’(레 19:11)는 말씀도 아실 것이고 또 그렇게 가르치셨을 것이다. 거짓말은 마귀의 속성이다(요 8:44).

그런데도 ‘표절을 하지 않았다’거나 ‘표절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비난 받을 죄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표절의 거짓 위에 성령을 소멸하는 더 조직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표절한 죄보다 변명하는 죄가 더 크다.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은 어쩌다 한두 편 남의 설교를 가지고 했거나, 예화나 타픽 센텐스(topic sentence) 한 두 개를 인용한 일반 목회자의 표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필자가 책을 비교해 보면서 ‘과연 몽고메리 보이스가 없다면 이종윤 목사님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 표절 속에는 세 가지 죄가 숨어 있다.

표절을 하면 누구나 그 속에 세 가지 죄가 자연스럽게 숨겨진다.

첫째는 앞 글에서 밝힌 것처럼 원저자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하여 속이게 되고, 속이다가 그것이 여의롭지 못하거나, 또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사건이 있으면 그것을 넣어서 각색까지 하게 된다. 첫 번째 죄가 두 번째 죄를 물고 가는 것이다. 그것은 원저자의 외적 체험만이 아니다. 정신적 체험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보이스 목사의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이종윤 목사님은 어떻게 말하셨을까’를 생각하여 역으로 추적해 보면 쉽게 드러난다. 앞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갈 것이다.

둘째, 원저자의 피나는 연구의 산물을 자기 연구의 산물로 도적질하게 된다. 모든 책에 보이스 목사가 붙인 주를 이종윤 목사는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이 이를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이다. 보이스 목사는 주에 붙여진 책들을 다 읽고 설교하고 글을 썼을 것이고, 이 목사님은 그렇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보이스가 붙인 주를 그대로 사용하여 독자들로 이종윤 목사님의 학문성을 보고 탄복하게 만든 것이다. 원저자의 연구의 산물인 주를 자신의 연구의 산물처럼 그대로 주를 붙이면서 원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그 곳에 뒤따르는 죄들이다.

셋째, 원저자만의 인격과 경건에서 나온 진리들을 자기의 경건의 산물로 도적질하게 된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사람마다 깨달음이 다르고,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의하여 깨달음은 다르다. 진리는 연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경건에서 나오는 것이 더 진짜다. 보이스 목사의 인격과 경건은 이종윤 목사의 인격과 경건과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들을(수십권) 자신의 경건에서 나온 것처럼 하였으니 어쩌면 이종윤 목사의 영성이라는 것은 보이스 목사의 영성을 훔치는데 단련되고 훈련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하는데 도가 텄을 것이다. 이 목사님이 표절하지 않은 다른 설교들을 분석해 보면 혹시 또 다른 사람의 것을 표절하지 않았나 의심이 가고, 또 다른 설교도 직접 표절은 아니라도 이 목사님 머리속에 잔재한 보이스 목사의 사상과 생각을 중심으로 설교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조사해 볼만한 일이다.

표절은 도적질이요. 거짓말이요, 미련이요, 게으름이다. 털도 뽑지 않고 남의 것으로 자신의 것으로 삶아서 먹은 도둑과 같다. 다른 길이 없다. 이 목사님이 회개하는 길 외에. 천의 죄를 백으로 축소하려고 하지 말고, 십의 죄를 천처럼 확대하여 회개하시기 바란다.


본론: 이종윤 목사의 표절을 옹호하는 4가지 변명에 대한 비판

이종윤 목사가 ‘표절을 안 했다’ ‘했지만 죄가 아니다’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 표절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해면 누구도 옹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종윤 목사를 옹호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필자가 지적하는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답을 하셔야 할 것이다. 앞의 글에서 밝힌 것처럼, 에베소서 6:10-12의 본문에서 보이스 목사는 14살의 첫 번째 설교를 했다고 한 그 경험과, 같은 본문으로 이 목사님이 19살에 첫 설교 경험을 했다는 기가 막힌 일치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이종윤 목사님은 과연 자신의 표절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실까 궁금하다. K 교수는 이 목사님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하기 전에도 이 목사님과 미리 상의했고, 후에는 감사하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였다. 이제 이 목사님께서 직접 말씀하셔야 할 때가 되었다. 옹호자들의 옹호논리는 대강 다음 4가지로 추정되기 때문에 하나씩 그 잘못을 비판하겠다.

1.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들은 설교집이 아니라 주석서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다라는 주장

이 세상에 표절이 면책될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조각이든, 설교든, 주석이든, 수필이든 다 표절은 표절이고 표절은 죄다. 더욱이 현대에 이르러 표절은 큰 죄로 여기며, 학자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 안에도 표절이 용납될 그런 공간은 없다. 우선 그것이 주석이든, 설교집이든 표절을 했으면 다 표절이다. 어쩌다 ‘보이스 목사가 쓴 책들은 설교집이 아니라 주석서이니 표절이 아니다’라는 유치한 논리를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 옹호자들이 이런 유치한 논리를 펴니 필자도 유치한 비판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옹호자들의 주장은 이런 주장이다. ‘모든 목회자들은 주석을 보아야 하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석에서 본 것을 다 일일이 주를 붙여 설교하지 않고 않아도 되듯,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은 주석서이기 때문에 주를 붙이지 않았지만 표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하나씩 비판해 보자.

첫째, 주석은 표절의 사각지대에 있지 않다. 주석서에서 가져온 지식이라도 그것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보편적 지식이라면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원어의 의미를 인용한 경우다. 원어의 의미가 사전 정도를 찾아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 지식이라면 굳이 주를 붙이지 않아도 용납된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라도 원저자만의 깊은 연구를 통하여 나온 특별하고 독특한 주장이라면 그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도둑질과 같으며 그것이 바로 표절이다.

그런데 원저자의 책이 주석이라면 괜찮다는 말은 이런 논리가 된다. ‘남의 주석서를 가지고 그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내 것처럼 설교하고, 그 후에 그것을 다시 내 이름으로 출판을 해도 표절이 아니다’란 말이 되고 만다. 누구의 주석서라도 표절 시비 없이 내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길을 설교가 만들어주는 격이다. 아니다. 주석서든 설교집이든 표절은 표절이다. 주석이나 설교가 표절을 걸러주는 거름종이가 아니다.

둘째, 몽고메리 보이스의 책들을 주석서라고 굳이 주장하는 것은 이종윤 목사의 표절을 옹호하기 위하여 만든 옹색하고 유치한 논리이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는 서문에서 분명히 밝혔다. “내가 20년 동안 목사로서 섬겨온 필라델피아 제십장로교회(Tenth Presbyterian Church in Philadelphia)에서는 이미 이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1986년 9월부터 1988년 6월까지 거의 2년 동안 주일 아침 예배 때 로마서를 설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권, 서문, 솔라피데) 자신의 강단에서 한 설교한 것들이다.

이 목사님이 보이스의 책 그대로 설교하였고, 그것을 설교집으로 펴냈다는 점이 보이스의 책이 설교집이라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세상에 주석서를 그대로 설교해도 설교가 되는 주석서는 좁은 의미에서 없을 것이다. 그대로 설교하여도 될 주석서가 있다면 그것은 이름이 주석서라고 붙여졌어도 주석서가 아니라 설교집이다. 자장면이란 이름이 붙여진 우동은 자장면이 아니라 우동이다.

셋째, ‘보이스의 책은 주석서이니 그대로 도용하여도 표절이 아니라고 하고, 후에는 이종윤 목사가 쓴 표절서적들은 신학서적이 아닌 설교집이니까 표절이 아니다’라는 말은 서로 모순되는 논리다.

한 번 거꾸로 해보자. 만일 이종윤 목사가 책을 먼저 썼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을 보이스 목사가 이 목사님처럼 표절하여 설교를 하고 책으로 출판했다고 가정해 보자. 옹호자들의 말로 하면 설교집을 표절하여 설교하고, 그것을 주석서로 출판하면 표절이 아니란 말이 되고, 주석서를 표절하여 설교집으로 내면 죄가 안 된다는 말이 되고 만다. 소도 웃고,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어떻게 원본은 주석이고, 그것에 의하여 표절로 만든 책은 설교집이란 말인가? 처음에 주석서라면(아니지만) 표절한 책도 주석이고, 처음에 설교집이면 표절한 책도 설교집이다. 아니 주석서라도 표절하면 표절이고, 설교라도 표절하면 표절이다. 보이스 목사의 책을 주석서라고 하려면 이종윤 목사의 책도 주석서라고 해야 하고, 이종윤 목사의 책을 설교집으로 하려면 보이스의 책도 설교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런 논리로 순진한 평신도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의식이 있는 신학생이나 신학자나 평신도까지라도 절대로 속일 수는 없다. 이런 논리, 이런 학문, 이런 신학, 이런 도덕이 가능한 곳은 기독교 어디도 없다. 아니 어디에도 없어야 한다.

만일 필자가 이종윤 목사님의 그 책들을 그대로 표절하여 설교하였고 또 그것을 그대로 출판하여 팔아 수입을 올렸다면 어떠했겠는가? 그렇게 했다고 하여도 이 목사님은 아무 말도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자신은 남의 책을 표절하고 다른 사람의 표절에 대하여는 비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종윤 목사가 발행인인 ‘필그림 출판사’의 책에는 저작권을 밝히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넷째, 이종윤 목사는 일반 목사들이 출처를 밝히지 않고 주석서를 인용하며 설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옹호자들은 목회자들이 설교하기 위하여 여러 권의 주석서를 보고 조금씩 그 사상을 가져다가 설교를 하는 것을 가지고 ‘그러면 모든 설교자들은 죄인으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까지 하였다. 죄는 누가 지어도 죄다. 그러나 이종윤 목사의 보이스 목사의 표절은 그런 수준 아니다. 보이스의 책을 그대로 자기 말로 하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세상 말로 털도 뽑지 않고 그대로 삶아서 먹은 격이다.

그리고 인간은 의무를 위하여 자기를 작게 만들고, 권리를 위하여 자기를 크게 만드는 위선과 거짓의 천재들이다. 이종윤 목사님은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의무를 위하여 자기를 큰 사람으로 하시고, 권리를 위하여 자기를 작은 사람으로 하셔야 한다. 누구보다 엄하고 높은 윤리를 자신에게 적용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다섯째, 그러면 주석서 중에도 설교가 종종 나오는데 그것은 주석인가 설교인가? 예를 들어 박윤선 박사의 주석서나 다른 주석서에도 설교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면 그것은 주석인가 설교인가’라는 유치한 질문이 나오게 되고, 주석 안에 나오는 설교는 인용하면 표절이 되고, 설교라고 하지 않은 곳은 표절을 해도 표절이 아니란 ‘네모난 삼각형’ 같은 말이 되고 만다. 아니다. 주석도 설교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의 것을 자기 사상처럼 도용하거나, 더욱이 그대로 설교하는 것은 다 표절이다. 그리고 주석도 설교하면 설교요, 또한 주석적 설교를 하면 주석이다.

이종윤 목사님께서 보이스의 설교를 표절하여 설교할 때 무슨 노력을 하였겠는가? 오직 영어 실력 하나로 번역하는 수고 외에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번역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보이스 목사는 밀도 높고 영감 넘치는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하여 상상하지 못할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볼 때 이 목사님은 남의 수고와 땀을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도둑질하신 것이 된다. 이렇게 설교해도 된다면 필자도 어떤 의미에서 목회 자체가 쉬울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2. 설교는 수필과 같아서 표절을 해도 표절이 아닌 것처럼 이종윤 목사님의 책들은 학문서적이 아니라 설교집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다는 주장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괴상하고 유치한 논리를 개발해냈는지 모르겠다. 비판해 보자.

첫째, 수필은 표절을 해도 된다는 말은 전혀 객관적으로 맞지 않다. 예를 들어 이종윤 목사님이 쓴 수필이 있다고 하자. 필자가 그 수필은 내가 그대로 내 창작물로 하여 썼다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수필에도 표절죄를 걸러줄 필터는 없다. 이 말을 수필가들이 들으면 일어날 것 같다. 수필이야 말로 자기 창작적 활동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둘째, ‘보이스의 책이 주석이니 맘대로 그대로 설교하여도 표절이 아니다’라는 위의 주장과 모순된다. 원저자가 주석서로 쓰면 그대로 표절하여도 표절이 아니고, 표절자는 그것을 설교로 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오물은 어디에 묻어도 오물이지 묻은 곳에 따라서 깨끗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물이 들어갈 곳은 쓰레기통 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설교를 더러운 표절을 합리화해주는 도피성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설교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세상에 이렇게 설교에 대하여 모독적인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란 점에서 더 엄격하고 더 높은 윤리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그런데도 이종윤 목사의 표절된 설교집에는 주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설교에는 주를 붙이지 않는다’는 말도 이종윤 목사의 표절을 도와주려고 만든 괴상한 논리이지만, 그렇다면 이 목사님이 표절한 서적들은 학문서적이 아니라 설교집인데 왜 주를 붙였느냐는 것이다. 앞에서는 설교자는 설교를 하며 주석서를 보고 주를 붙이지 않는다고 하여 보이스 목사의 책을 주석서라고 하더니, 이제 이 목사의 표절한 서적들은 학문 서적이 아니라 설교집이니 괜찮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목사님은 왜 그 설교집에 주를 붙였느냐’고 하면 무엇이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이 목사님의 책들에 붙어 있는 주들은 이 목사님이 피땀 흘려 연구하여 붙인 주가 아니다. 주라는 것은 학자가 자기가 읽고 연구하여 찾아낸 것을 인용할 때 붙이는 정직한 행위이다. 그리고 원저자가 만든 주요 문장(topic sentence)은 반드시 쌍따옴표를 붙여서 인용한다. 그런데 이 목사님의 설교집에는 많은 주를 붙였지만, 그 주는 보이스 목사가 연구하여 낸 것을 그대로 붙여 자신이 연구한 산물로 둔갑 시킨 것이다. 만일 이종윤 목사님 책에 보이스 목사의 글을 인용하는 쌍따옴표를 붙여야 한다면 설교집 처음과 끝에 붙여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앞에 저자라고 하지 않고 역자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설교하실 때도 보이스의 설교를 대신 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설교는 표절을 걸러주는 타락한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남의 것을 인용하였으면 학문적 서적에서 밝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고 하여도 누구의 말이라는 것 정도는 밝혀가며 설교해야 정직한 설교자이며, 양식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책 이름도 말하고, 가능한 환경이라면 원저자의 얼굴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설교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정직한 자세일 것이다. 남의 설교를 가지고 자신의 노력과 경건과 연구에 의하여 만들어낸 산물처럼 하고, 어떤 의미의 그 영광(?)도 받으려는 사람은 설교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 목사는 자신을 누구보다 학문성이 겸비된 학자로 여길 것이다. 이 목사님의 스펙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학자다운 윤리관을 가지셔야 할 것이다.

3. 이종윤 목사님께서 1988년 자동차 속에서 원저자 보이스 목사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표절이 아니다라는 주장

1988년은 충현교회 담임목사이셨을 때의 일이다. 과연 1988년 자동차 속에서 보이스 목사에게 받았다는 허락이 표절을 해도 된다는 허락이었단 말인가? 생각해 보겠다.

첫째, 객관성이 없다. 그런 일이 개인적으로 있었다고 하여도 K 교수를 통하여 나온 말은 대강 이렇다. ‘한국 목사님들이 강해설교를 하면 좋겠는데 강해 설교를 할 자료가 부족하다. 당신(보이스) 책을 보았는데 당신 책이 개혁주의 입장에 서 있고, 강해 설교를 할 때 좋은 자료가 있다고 판단된다. 설교하고 강해하는데 사용해도 좋겠냐고 했더니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위의 말을 분석하고 분석해도 그것이 표절을 허락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고, ‘한국 목사님들이 강해설교를 하면 좋겠는데 강해 설교를 할 자료가 부족하다. 당신 책을 보았는데 당신 책이 개혁주의 입장에 서 있고, 강해 설교를 할 때 좋은 자료가 있다’는 말에서 강해설교를 가르치기 위하여 보이스 목사의 책을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말도 억지스런 논리지만, 무엇보다 객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표절은 법적 의미와 도의적 의미가 있다. 두 가지 의미로 볼 때도 맞지 않는 말이다.

둘째, 이 역시 보이스 목사의 책이 주석서이니 표절이 아니란 말과, 이종윤 목사의 책이 설교집이니 표절이 아니란 말과는 전혀 모순된 말이다. 위의 두 가지 조건이 표절이 아닐 수 있는 조건이라면 저자에게 굳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셋째, 그보다 저자의 허락을 받기 전부터 이 목사님은 보이스의 책을 표절하였다는 것이다. 몽고메리 보이스는 빌립보서를 이종윤 목사가 신간으로 주었다고 하였는데, 보이스 목사는 빌립보서 초판 발행을 이종윤 목사를 만났다는 1988년보다 17년 전인 1971년에 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이종윤 목사님은 1977년에 이미 빌립보서를 출판했다는 점이다. 이점은 서울교회 필그림 출판부에서 발행한 <빌립보서 강해>(2002년 3월 20일에 4판 인쇄)에서도 초판 발행을 1977년 4월 2일이라고 하였다. 이 목사님이 저자 보이스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1988년보다 11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초판 발행한 책을 주었다는 말도 객관적으로 거짓이지만, 또 그 자동차 속에서 빌립보서를 준비하여 주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로 보여 진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종윤 목사는 그 때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내가 이미 11년에 번역하여 내 이름으로 책까지 출판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 내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소급하여 허락해 달라’고 했어야 정직했을 것이다.

넷째, 구체성이 없다. 도대체 보이스 목사에게 무엇을 허락 받았다는 말인가? 번역을 허락 받았다는 말인가? 저작권 자체를 위임 받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언젠가 이렇게 표절 시비가 나올 것을 염려하여 한 두 마디 미리 해 두고 그것을 표절 허락을 받은 것처럼 하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름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표절을 허락 받았다는 말인가?

저자라도 표절을 허락해줄 자격은 없다. 만일 보이스 목사가 그 자동차 속에서 정말로 표절을 해도 된다고 했다면(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보이스 목사님도 이 목사님과 같은 공범자가 된다.

다섯째, 그렇다면 왜 보이스 목사의 이름을 설교할 때나 책을 낼 때 밝히지 못하였는가? 번역이라면 허락을 받아야 하고 대신 자신을 저자라고 하지 말아야 하고, 인용이라면 그것을 밝히면 저자에게 허락도 받을 필요도 없다. 어떤 명분으로도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대로 설교하고, 그것을 자신이 저자인 것처럼 책을 내는 범죄행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4. 이종윤 목사의 설교를 5편을 받아 비교해 보니 0%도 표절이 나오지 않았다는 주장

이 부분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표절을 했지만 표절이 아니란 것이 아니라 아예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근거가 되어 간단히 답할 필요를 느낀다.

어쩌다 이런 말을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이 목사님은 무슨 설교 5편을 주었고, 무슨 설교 5편을 보았다는 말인지 모를 일이다. 주신 분도 이상하고 받은 분도 이상하다. 두 가지다.

첫째, 그냥 서울교회 홈피에 들어가 보면 이종윤 목사의 설교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굳이 표절성이 0%인 설교를 받아서 볼 필요가 없다. 지상의 죄수들에게 물어서 그의 유무죄를 가린다면 이 세상에 죄인이 존재할지 의문이다.

둘째, 책을 보면 더 선명하다. 한 권만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내용을 다 분석하면 이 목사님이 쓴 책만큼의 분량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구체적으로 더 밝혀갈 것이다. 본 글도 너무 길어져서 효과가 감할 것처럼 보여 일단 여기에서 끝을 맺는다. 다음 글부터 이 목사님의 표절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며 밝혀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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