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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교사 이만희의 새빨간 '니골라당' 교리 사기
[ 이단연구 / 김홍기 ] 신천지와 이만희의 교리 비판 ⑨
2015년 09월 27일 (일) 11:49:06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김홍기 목사 /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 김홍기 목사

‘이만희 교리’의 핵심 중 하나는 ‘니골라당’에 관한 것이다. ‘니골라당’은 요한계시록에 두 번 등장한다. 첫째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에서 언급된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 2:6). 여기서 ‘니골라당’은 정통 교리를 파수하는 일에 충실했던 에베소 교회가 혐오했던 이단의 무리였음이 드러난다. 초대교회의 고약한 이단 ‘니골라당’은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역시 증오하신 대상이었다.

‘니골라당’은 또한 버가모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에서 언급된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 ‘니골라당’은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서 두루 언급되었지만, 버가모 교회에서 더 심각하게 다루어졌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을 경계하고 미워했지만, 버가모 교회 안에는 ‘니골라당’의 추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신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

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니골라당’의 존재와 활동이 드러난 곳은 두 교회뿐이다. ‘니골라당’이 다른 다섯 교회들 안에서 암약했는지에 관해 성경은 침묵한다. 따라서 ‘니골라당’의 문제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사이에 있었던 보편적인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거짓 교사 이만희는 ‘니골라당’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만했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 당면했던 내부적 교리 문제들과 외부적 박해 현상 등을 하나하나 제대로 다루는 대신, 이러한 문제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니골라당’으로 치부해 버린다. 따라서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만희는 자신이 꾸며낸 이단 견해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니골라당’은 누구인가? 과연 성경은 ‘니골라당’에 관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성경은 ‘니골라당’이 누구인지에 관하여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니골라당’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성경에 있는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추정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탁월한 신약학자 윌리암 헨드릭슨(Hendriksen)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이 니골라당(2:6)과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2:14)과 “이세벨 여인의 추종자들(2:20)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이단의 무리일 수 있다”(Conquerer, 78). 그 당시의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상황 또한 이단 교리들의 유사성을 고려해볼 때 이 추정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에 관한 주님의 말씀에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구분해서 언급하신 것을 보면, 이 두 가지 이단은 교리적으로는 유사하나 서로 다른 무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니골라당’이 누구인가를 밝히기 위해 사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니골라당’(헬라어: 니콜라이테스)이라는 단어를 분석하는 것이다. 위대한 설교자 도날드 반하우스(Barnhouse)는 이런 방법을 통하여 ‘니골라당’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사실상 이름 외에 아무 것도 없지만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나는 믿는다. ...... 그 낱말의 언어학적인 의미로 충분하다. 그 낱말을 둘로 쪼개어 보라. 첫 음절은 ‘승리자’ 혹은 ‘승리’를 뜻하는 헬라어의 나이키(nike)와 같은 어근에서 온다. 바로 그 다음 절에서 같은 어근이 ‘이긴다(overcometh)’로 번역된 낱말에서 발견된다. 그 낱말의 나머지 절반은 헬라어와 영어 모두에서 ‘평신도(laity)’를 뜻한다. 2절에는 거짓말쟁이로 밝혀진 사람들이 나온다. 따라서 여기 요한의 때부터, 사람들이 제시했고 하나님이 거부하셨던, 사도적 계승에 대한 주장이 있었다”(Revelation, 42). 즉 ‘니골라당’은 성직자가 평신도를 지배하는 개념으로써의 ‘성직자 주의’를 주창하는 무리라는 것이다.

반면에 고명한 신학자 헨리 알포드(Alford)는 교부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니골라당’의 정체를 파악한다. “교부들 가운데 지배적인 견해는 그들은7명의 부제(副祭)들 중 한 명이었던 안디옥의 개종자 니콜라우스에 의해 시작된 무리였다는 것이다”(The Greek New Testament, 563). 알포드는 이처럼 역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니골라당’의 기원을 찾아낸다. 그는 또한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 26)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니골라당의 성격을 밝혀낸다. “우리 주님의 입에서 나온 이 강한 표현은 의심할 바 없이 혐오스럽고 불결한 행위들을 가리킨다”(Ibid, 565).

성경은 ‘니골라당’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려주지 않는다. 정통교회는 그래서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니골라당’이 등장하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살펴보고, 동 시대의 이단 교리들을 비교해 보며, 언어학적인 분석을 하고, 주님의 말씀을 참고하면서 ‘니골라당’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려 노력한다. 이만희는 그러나 이런 모든 정당한 시도를 헛되고 거짓된 것으로 비하시키고, 자신 만이 받았다는 소위 ‘실상 계시’로 ‘니골라당’에 관해 제멋대로 부당한 정의를 내려 버린다.

이만희는 ‘니골라당’을 여섯 가지 다른 것으로 설명한다. 첫째, ‘니골라당’은 유재열의 장막성전을 정통교회로 개혁하려는 사람들이라고 왜곡한다. “일곱 금 촛대 교회에 입교하여 사단의 교리로 교훈하며 당을 지은 거짓 목자이다. 이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무리가 바로 본문의 니골라당이다”(실상, 69-70). 물론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다. 성경은 이만희가 제멋대로 주장하는 소위 ‘일곱 금 촛대 교회’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성격이 전혀 다른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뭉뚱그려 한 이단의 무리(유재열의 장막성전)로 만들려고 시도하다니 ...... 참으로 어리석고 황당무계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런 괴이한 짓을 하며 아시아와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역사적 실존 마저 부정해 버린다. “본문에 기록한 아시아는 계시록이 응하는 어느 지역을 비유한 곳으로 실제 소아시아가 아니다”(실상, 53).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해 있던 아시아가 “실제 소아시아가 아니다”라니... 도대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 글의 저자가 말하려는 본래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서부 지역 아시아’는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있던 ‘과천’을 비유해서 한 말로써, 아시아는 비유이고 과천은 실상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맹랑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토해내는 비성경적이고 비지성적이며 비상식적인 말과 생각을 주시해 보라! 계시록 1,2,3장에 나오는 아시아가 “실제 소아시아가 아니다”라니! 온전한 지성으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또한 성경의 역사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 말은 이만희의 소위 ‘실상 계시’가 실제로는 ‘실성(失性) 계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이만희의 소위 ‘실상 계시’를 담았다는 <요한계시록의 실상>이라는 책에서는 초대교회의 이단 ‘니골라 당’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손톱만큼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성경 구절을 취해서 남용하고 악용하여 자신의 이단 교리를 창안해 내는 일에 급급할 뿐이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으로서 이처럼 요한계시록에 대해 무지한 책이 과연 또 있을까?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이처럼 왜곡하고 부정하는 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요한계시록에 관해 이처럼 백해무익한 해설서가 또 있을까?

1세기 말 터키의 서부 지역에 출몰했던 초대교회의 이단 ‘니골라당’은 그 시대의 상황이 빚어낸 산물로서 그 시대와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만희는 이 ‘사망한 이단’을 부활시켜, 20세기 말 대한민국 과천에 창궐했던 유재열의 장막성전을 ‘정통교회로 개혁하려 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로 둔갑시켜 버렸다. 정통과 이단을 바꿔치기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이만희가 ‘니골라당’에 대한 새빨간 교리 사기를 통해서 이루려 하는 분명한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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