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진보적 교단들이 마냥 세속으로만 치닫고 있다. 미국성공회(ECUSA)가 7월초에 열린 총회에서‘동성혼’을 승인했다. 이에 영국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전체 성공회의 분열과 고통을 우려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교단의 하나인 미국성공회(ECUSA)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이번 총회에서 ‘동성혼’을 승인과 아울러 소속 사제들이 자유롭게 예식을 집전할 수 있게 허용했다. 먼저 성직자평신도대의원회는 이 안을 통과시켰고 주교회가 129대 26(기권 5)의 압도적 표차로 이를 승인했다. 올해 11월 1일부터 동성 커플들이 지역 성공회 성당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게 됐다.

▲ 미국성공회(ECUSA) 총회광경 ⓒEpiscopal News Service

이에 따라 성공회는 연합그리스도교단(UCC, 회중교회)와 미국장로교(PCUSA)에 이어 세 번째로 동성혼을 공식 승인한 교단이 되었다. 그밖에도 미복음주의루터교단(ELCA)도 교회의 재량에 따라 동성혼예식을 갖도록 허용해 놓고 있다. 미연합감리교(UMC)는 근래 다수의 목회자들이 동성혼을 집례해 왔으나 교단적으로는 여전히 동성혼을 불허하고 있다.

미 성공회는 이번 총회에서 결혼 관련 규례를 변경하되, ‘남녀’(man and woman) 또는 ‘남편과 아내’라는 용어도 중성화하여 ‘커플’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교단은 사제들이 개인의사에 따라 동성혼 집례를 거부해도 징계받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발의안을 표결해 173대 27로 승인했다. 또한 주교들은 자기 대교구 내에서의 동성혼 예식을 거부할 권리도 주어졌다.

세계 8천만 성공회인들을 거느린 앵글리칸 커뮤니온(AC)의 수장인 영국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명을 통해 미 성공회의 결혼정의 변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전체 성공회의 분열과 고통, 에큐메니즘과 종교간 대화에도 차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 성공회는 이미 지난 2012년 총회 때 동성결합을 처음 승인하는 동시에 성전환성직자의 서품도 허용했지만 당시엔 아직 교단 공동기도서(BCP)의 내용대로 결혼이란 오직 한 남녀의 평생 언약으로 한정한다는 입장을 유지했었다. 미국성공회는 지난 10년간 줄기찬 쇠퇴현상 끝에 교인 18%를 상실했다.

이번 총회에서는 성경적인 결혼관을 견지하는 일부 주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주교들은 교단 교리를 크게 벗어나거나 바꾸지 않고도 잠정적이고 실험적인 예식들이 전통결혼관을 ‘확장’해 준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성공회 최초의 공개 동성애 주교(은퇴)인 비키 진 로빈슨 씨는 동성애 관계가 “도덕적으로 용인되어 신실한 언약 관계 속에서 축복받아야 한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이것을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로빈슨의 2003년 주교 임직은 성공회 전체의 양분화를 부추기게 된 주요인이었다. 그는 “(성공회내) 게이와 레즈비언들도 나름 성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며 교회의 계율을 바꿔야 이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이만큼 멀리 왔다는 것을 선언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임직 당시 그와 파트너는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으며 케냐 대주교는 “마귀가 교단에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거의 기성 교단을 탈퇴한 교회와 인사들로 이뤄진 보수적인 독립 성공회 교단인 북미주앵글리칸교회(ACNA)는 “본 교단은 오직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결혼만을 인정하고 예식을 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세계성공회의 총 38개 관구(province)중 24개에 해당하는 남반구 성공회인들을 아우르는 앵글리칸글로벌사우스(AGS)는 또 다시 전체 성공회의 에큐메니컬․초종파적 관계와 세계 사역의 사명을 염두에 두지 않은 미 성공회의 일방적 결정을 비판하면서 “이번 결의안은 분명히 성경과 창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모순된다.”면서 “하나님은 분명 인간을 신체적 정서적으로 서로 보충하도록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강조했다.

AGS는 또 “교회는 사회 속의 거룩한 누룩으로서 사회의 영적, 도덕적 가치관을 하느님의 설계에 맞게 틀잡도록 주님이 의도하신 것”이라며 “그러나 슬프게도 이번 행동으로 성공회는 사회 가치관을 바꾸어 잘못 틀 잡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바꿔 말하면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의 고유한 특성을 잃게 됐다.”고 개탄했다.

▲ 전임 최초 여성 의장주교(왼쪽)과 신임 최초 흑인 의장주교(오른쪽) ⓒEpiscopal News Service

한편 미 성공회는 금번에 교단사상 첫 흑인 의장주교를 선출하여 또 다른 전환점을 이루었다. 마이클 커리 제27대 의장주교 당선자(62. 노스캐럴라이나주)는 이미 노스캐럴라이나에서 동성혼을 허용해온 대표적인 진보주의자로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을 합법화함으로써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전임자 캐터린 제퍼프 쇼리 주교는 2006년 선출된 교단 최초의 여성 의장주교로 공개동성애자 로빈슨의 주교서품도 그해 치러졌다. 쇼리는 9년 임기를 마치는 오는 11월 1일 의장직을 커리에게 공식 인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