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라고 폭로해도 천국기행간증의 인기가 시들지 않는다. 종교의 경계선을 넘어 영적 세계나 내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감각적 욕구를 채워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동성애 이슈처럼, 미국 복음주의권(圈)을 무늬 별로 나누는 소재들 가운데는 ‘내세체험’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종교통신(RNS) 최신 평론으로 실린 애런 그리핏(듀크신대원 박사과정)씨의 통찰에 따르면, 근래 줄기차게 인기몰이를 해온 ‘천국지옥기행간증’들도 복음주의권을 뚜렷한 두 가지 흐름으로 갈라놓고 있다는 것.

라이프웨이 크리스천 리소스(LCR)는 3월 하순을 기해 ‘천국체험담’을 이젠 더 취급하지 않는다고 공표했다. 여타 교계나 일반 사회에서는 최근까지도 돈 파이퍼의 <천국체험 90분>(90 Minutes in Heaven, 한글판 : 천국에서 90분) 등 치명적인 수술 또는 자동차사고 등으로부터 기사회생한 사람들의 ‘천국지옥기행간증’이 높은 인기를 끌어왔다.

라이프웨이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남침례교 총회(SBC)에서 “내세체험을 묘사한 책과 영화들이 교계에 난무하고 있다.”는 비판적 발의가 통과된 때문이다. 그런 체험담들이 주관적 경험 중심이고 따라서 성경에 배치되는 주장들이 많은 탓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 다른 복음주의자들도 비슷한 단죄를 해 왔다. SBC 산하 기관인 라이프웨이는 지금까지 여타 서점 및 백화점들과 마찬가지로 동종의 출판물을 다루어왔다.

대조적으로 복음주의권의 다른 한 모퉁이 출판물 시장엔 여전히 이런 대안(代案) 내세체험들이 높은 인기를 끌며 판치고 있다. <90분 체험>은 올해 후반기에 영화화되어 출시될 예정이다. 버포 가족도 아들 콜턴 소년의 3분간 천국체험을 아버지 타드가 ‘뻥튀기’ 하다시피 만든 책인 <3분>의 홍보를 위해 이번 봄 프로모션을 위한 스프링투어에 나선다. 하버드 의대 교수 출신의 뇌의학 권위자로 뇌사 상태에서 영의 세계를 여행했다며 <천국의 증거>(Proof of Heaven, 한국어판 : 나는 천국을 보았다)를 내놓은 이븐 앨릭잰더 박사도 모종의 맛이 들렸는지(?) 최근 또 다른 책을 써냈다.

이러한 근사체험 또는 임사체험(NDE: near-death experienes)은 종교의 경계선을 넘어 영적 세계나 내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감각적 욕구를 채워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대중을 겨냥해선지 사용하는 일부 용어나 개념도 딱히 복음주의적이거나 기독교적이지 않고 오히려 뉴에이지에 가깝다. ‘천국의 증거’의 경우 아마존서점 ‘기독교 종말론’ 코너와 동시에 뉴에이지 범주의 ‘환생’ 항에서도 구매율 1위를 마크하고 있다.

그리핏은 이러한 내세여행에 매혹되는 대중의 다수는 복음주의 신자들이라고 어림잡는다. 일례로 팻 로버슨의 기독교방송망(CBN)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천국 방문 스토리들을 소개해 왔다. 리버티 대학교 등 복음주의 학교들도 나름의 <3분> 소개 이벤트를 가진 바 있다. <90분>도 기독교 서점과 백화점망인 패밀리 크리스천 스토어(FCS)가 복음주의 대중을 노리고 만들어 뿌릴 심산이다.

이처럼 내세간증을 놓고 줄기차게 구분돼온 복음주의 마인드는 미국에는 일치된 무늬의 획일적인 복음주의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그리핏은 분석한다. 그는 타드 브렌먼의 논증을 빌려 미국 신교는 동성애 토픽에 대한 찬반론처럼 단순히 흑백논리로 양분됐다기보다 최소한 이성적 객관주의적이거나 체험적 주관주의적인 두 유형의 복음주의로 엇갈리고 있다는 것.

이성적 복음주의는 19세기 조직신학자 찰스 하지의 말대로 ‘팩트의 창고’인 성경의 객관적 진리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경험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인 복음주의는 지난 1960년대 ‘뉴패러다임 교회’로 출발했던 빈야드 교회나 ‘지저스 무브먼트’(JM)에서 파생된 캘버리 채플 계열처럼 신학적 정확성이나 명목상의 종교성 보다는 경험적 체험적 사고를 중시한다.

여성 인류학자 T.M. 러먼 박사는 자신의 연구 논문에서, 빈야드 계열 신자들이 상상력을 적극 발휘하여 성경 진리를 “보다 생생하게, 하나님과의 만남을 좀 더 체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꾸며내거나 조작했다기보다 아침 경건시간에 ‘주님을 위한 (여분의) 커피 한 잔’을 따로 챙겨놓는 배려(?)처럼 하나님이 삶속에서 어떻게 일하실지 좀 더 흥미롭고도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이라는 것.

그러나 이성적인 복음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볼 때 내세체험들은 그 강한 주관성에 큰 문제가 있다. SBC의 한 목회자는 그런 체험들이 죽음과 천국에 관한 성경의 ‘명확하고 계시적이고 전제적인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확증도 되지 않고 비슷한 체험담끼리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어정쩡한데도 최대한의(사실은 최소한의) 그럴 듯한 개연성을 보여주려고 자체포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으로 그다지 뒷받침되지 않는 자신들의 약점을 의식한 내세체험 간증자들이 한결 같이 내세우려는 것이 나름 ‘객관성’이다. <90분>은 웬만한 교인이면 기본적으로 신임해줘야 하는 목회자가 쓴 기록(공저자 : 세설 머피)이다. <3분>의 경우 예수님도 높이 평가하신 천진한 어린이의 고백이므로 믿을 수 있지 않냐며 공감을 자아내려고 한다. 과연 믿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믿을지 말지 어떤 절대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가 하면, <천국의 증거>는 과거 내세의 진실을 생각해 본 전례가 없었던 최고 뇌신경의학자의 고백이므로 응당 신뢰성이 높다는 식으로 밀고 간다. <3분>, <90분>, <23분> 등 체험 시간 길이에 숫자적인 정확도를 부여하려는 것도 일종의 심리적인 객관성 확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리핏의 결론은 ‘내세체험의 높은 인기와 깊은 의혹이라는 이 동시적 상호모순은 바로 주관성과 객관성을 함께 추구하는 복음주의 체험들의 절묘한 결합의 위치에 따른 결과물이다. 즉 이 간증들은 순수체험을 갈구하는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믿음이 바탕을 둔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근간을 어떻게든 실감나게 입증해줄 체험적 '발견'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받는 것이다.’로 요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