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통합 분당 아름다운교회 원로

▲ 김기홍 목사

텍사스에서는 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했다. 드류에서는 대학원 박사과정이었다. 공부의 차원이 달랐다. 한 학기에 3과목 세미나였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수업이 세 번 있었다. 시간 여유가 많은 것 같지만 읽으라는 책들을 다 읽으려면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거기다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알바를 하러다니니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었다. 수업은 교수가 읽으라고 한 10여권의 책을 어떤 방법으로건 들여다본 뒤에 강의실에 가서 토론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 개의 작은 논문(페이퍼)들을 제출한다. 그러면 교수가 그중에 몇 개를 강의 시간에 읽으라고 한다. 다시 토론이 진행된다. 우선 영어가 짧아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특히 토론하기가 괴로웠다.

하루는 지도교수가 오라고 한다. 그분의 이름이 리치였다.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은 정말로 이분 덕분이다. ‘청도교신학’이란 과목이었다. 페이퍼를 4개를 내야 한다. 그 중에 이미 두 개는 C를 받았다. 한 과목이라도 학기말에 C를 받으면 바로 위원회에 보고되고 보따리 싸서 학교를 떠나야 한다.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분이 페이퍼에 여러 면으로 이리저리 하라고 써서 보냈는데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 논문 쓰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리포트라고 해서 이것저것 편집해서 베끼는 훈련만 하다 왔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지도교수가 말한다. “네 글은 전체가 여기저기서 문장을 베낀 것이다. 네 자신의 말로 글을 써라.” 영어가 짧아서 그런다니까, “그런 건 걱정 말아라. 틀린 영어는 내가 고치면서 읽겠다. 네 생각을 좀 써봐라.” 아니, 그나마도 밤을 새워서 썼는데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도저히 더 이상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마음이 기진맥진하고 낙심되었다. 지도교수에게서 나와 학교 운동장 넓은 잔디밭을 걸어서 끝까지 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박사가 될 실력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보내주신 은혜는 감사합니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이제 그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별안간 여호수아 10장 12절이 떠올랐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하늘 문이 큰 소리로 열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지도 교수의 이름을 외쳤다. “리치야 머물러라. 리치 머물러라.” 얼마나 오래 그랬는지 모른다. 목이 쉴 때까지 외쳤던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준다. 신기한 능력도 준다. 넘어설 수 있게 한다.

그대로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논문작성법에 관한 책들을 찾아냈다. 처음부터 그 훈련을 한 뒤에 대학원에 들어갔어야 했다. 이제라고 해야지. 수업을 전폐하고 한 주간동안 해당되는 모든 책들을 읽었다. 논문에 대한 이해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책이 미국에는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었다. 어쩌다 논문 작성법에 관한 책을 발견해도 각주나 참고서적 쓰는 방법 정도나 말할 뿐이지 논문 내용을 쓰게 돕는 책은 없었다. 그 점은 지금까지도 그렇다. 대학입시의 논술은 서양식 논문 쓰는 방법이 아니다. 서양의 논문은 그렇게 골치 아픈 글이 아니다. 자기주장을 증명하는 글이니 가능하면 쉽게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쓴 책이 <논문 작성 이렇게 해라>였다. 지금까지도 잘 팔리고 있다.

이렇게 논문으로 중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지도교수 과목에 페이퍼를 써서 냈다. 평가가 왔다. 놀랍게 발전했다고 하면서 이 논문은 A학점 수준이지만 이러저러한 게 부족하다는 글과 함께 B+를 주었다. 이제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 분명히 이해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무슨 과목이건 논문을 내면 항상 A였다. 정말로 자신이 붙었다. 사실 논문쓰기는 공부하는 방법 그 자체이다. 무엇이건 연구하고자하면 그 방법대로 하면 된다. 여기서 간단히 말하기는 어려워도 누구든 배우고 싶어 하면 가르쳐줄 수 있다. 우선 내가 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오면 된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쉬운 선생만 찾아다닌다. 점수도 잘 주고 과제물도 많지 않은 그런 선생이다. 그 결과는 자기 시간만 낭비하는 것으로 끝난다. 혹시 그렇게 해서 학위를 받아도 평생을 실력 없는 상태로 보내야 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정말 실력이 좋아지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도우신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언제나 정통 코스로 가기를 도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세워주신다. 다윗이 양치기에서 일어나 사자와 곰을 잡는 용사가 되고 탁월한 시인이 되게 하신다. 자녀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주셔서 열 배는 더 잘하게 만들어주신다. 믿고 도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