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통합 분당아름다운교회 원로

누구나 감정적으로 가라앉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돕는 것 같지도 않고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하나님이 정말로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일단 이런 상황이 진행되면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식으로 오래 가면 갈수록 더욱 깊이 가라앉아 일어나기가 어렵다.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다 귀찮아진다. 이렇게 되면 약에 의존하여 겨우겨우 살아가게 된다. 성경의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다윗도 엘리야도 그러했다. 시편에도 나온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러나 그대로 머물면 망한다. 그러기에 기자는 선언한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선언은 시편이다. 이미 찬송이다. 이대로 찬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울증에 빠지고 고통하는 이에게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하나님 나타나 도우신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찬송한다.” 그리고는 찬송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고 죽을 지경이라도 하나님은 나타나 도우신다. 이 사실을 믿고 찬송하고 행동하면 그 도우심이 경험되는 것이다.

지난번에 내 자신이 겪었던 위기를 말했다. 여러 해 동안 유학을 준비한 게 대사관에서 비자를 거부함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까짓 유학 안 가면 된다. 그러나 여러 해 수고했음에도 실패한 경험은 너무도 나를 아프게 했다. 삶의 의욕을 다 빼앗아 갔다. 힘든 상황에서, 불치병 선고를 받거나, 해결 못할 문제에 빠지거나 할 때 하나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 때는 하나님이 아주 멀리 느껴진다.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축복하시는가? 아니, 하나님이 정말 있기나 한가?”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지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럴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분발해야 한다. 시편 저자처럼 말하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구름이 덮여도 태양은 확실하게 빛나고 있다. 절망의 구름에 눌려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계시며 도우신다. 내가 반응해야 한다. 여전히 찬송해야지. 당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내게 꿈을 주고 용기를 준 책이 로버트 슐러 목사의 <불가능은 없다>였다. 제목을 직역하면 “적극적 사고로 움직여라”이다. 먼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마음에 가득 품고 움직여 나가라는 것이다.

내게 분명 꿈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그를 향한 믿음이 없었다. 아무리 해도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그림이 마음에 일어나지를 않았다. 나는 일어났다. 버스를 타고 김포 비행장에 갔다.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옆의 철조망으로 갔다. 그때 비행기를 그렇게 가까이는 처음 보았다. 얼마나 크던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거기 한 시간도 넘게 서서 비행기들에 집중하며 기도했다. 나를 태운 비행기가 하늘에 떠오르는 것을 상상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탄원서를 썼다. 내가 왜 미국을 가는지 그리고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다시 대사관으로 향했다.

몇 시간을 기다려서 영사 앞에 섰다. 전과 다른 것은 모든 서류에 탄원서 한 장 더해진 것뿐이다. 한 번 비자가 거절되면 다음에는 더욱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상황적으로는 가망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확률이 없으니까 더 용기가 났다. 한 번 해보자. 하나님이 원하시면 될 것이고 원치 않으시면 순종하면 된다. 이미 학기는 한 주일이 늦어졌다. 미리 가서 준비해도 부족한데 말이다.

영사는 내가 쓴 탄원서를 빨간 줄을 치면서 읽었다. 계속 내 뱉는 말이 “말도 않되,” “웃기는 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명령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 복종해라.” 다 읽고 난 뒤에 말한다. “비자 주겠습니다.” 내가 목사 안수 받으려 돌아오겠다는 다음 해 5월 17일까지 9개월짜리 비자였다. 물론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5월에 돌아왔다. 미국은 5월에 학기가 마쳐지고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아직 나는 석사학위 논문을 위해서 여름 학기에 돌아가야만 했다.

목사안수를 받은 뒤에 다시 대사관에 갔다. 일하는 영사가 물었다. “박사학위를 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적어도 5년은 걸립니다.” 아무 소리 않고 5년짜리 복수비자를 찍어주었다. 약속을 지켰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사실 지나고 보면 이제부터 고생의 시작이었지만. 힘든 상황에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도전해 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 케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