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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강규찬과 평양산정현교회>
“한국교회 민족지도자가 남긴 뚜렷한 족적”
2012년 01월 25일 (수) 07:30:28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강규찬 목사님은 제 고향 목사님이시오 또 제 조모님의 장례예배를 드려주신 목사님이시라 제게는 더 없으신 존경하는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강 목사님을 한학자시오 도인이시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소열도(T. Stanley Saltau,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목사님의 글을 통하여 그가 철학자이시기도 함을 알았습니다”(방지일 목사 추천서 중에서).

겨레와 함께한 교회!
민족을 가슴에 품은 지도자!

요즘을 사는 한국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꿈만 같은 수식어다. 본서 <강규찬과 평양산정현교회>(박용규 총신대 교수 저·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펴냄)는 이런 목회자 즉, 철저하게 역사에 가리어져 있던 위대한 한국교회 민족지도자 강규찬을 발굴해 후대에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머리말에서 “강규찬은 한학자, 기독교 민족운동가, 목회자로 한국교회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으면서도 그동안 한국교회사적 평가가 전무했다. 한국교회사를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무겁다”고 운을 뗀다. 그리고 자신이 강규찬을 만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책임의식을 가지고 강규찬에 대한 연구를 처음 착수한 것은 여러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산정현교회를 연구하다 그 교회 2대 목사였던 강규찬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산정현교회가 주기철 목사가 시무했던 교회 정도로만 알고 있던 필자에게 처음 강규찬은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너무도 중요한 인물임을 발견했다. 평양산정현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해 16년 동안의 목회를 통해 평범한 교회를 평양은 물론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회로 성장시킨 주역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p.9)

저자에 따르면 신민회 회원으로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강규찬은 기독교 민족운동의 요람 선천 신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백낙준, 박형룡, 정석해 등 수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했고,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신성학교로 돌아왔지만 일제의 감시로 더 이상 교사로 시무할 수 없었던 그는 1913년 평양신학교에 진학해 1917년 졸업하고 바로 평양산정현교회의 부름을 받았다.

평양산정현교회를 목회하는 동안에 그는 1919년 3.1운동을 온 몸으로 겪으며 기독교 민족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그의 영향으로 산정현교회를 통해 조만식, 김동원, 김선두, 오윤선, 김예진 등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배출됐다. 강규찬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에는 조만식을 비롯한 산정현교회 교우들과 함께 물산장려운동의 저변확대에 힘쓰는 한편 기독교 학교운동에도 깊이 개입해 개교회로는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했으며, 평양에 숭인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을 설립하는데도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저자는 본서를 총 10장으로 구성했다. 1장, 2장에서는 “한학자로서 낙춘 강규찬”, “강규찬과 기독교 민족운동의 요람, 선천 신성학교”를 소개하는데, 신성학교에서 한문과 작문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학문적인 도전과 민족의식을 일깨워주었던 한학자로서의 강규찬의 면모를 살펴본다.

3장 “105인 사건과 선천신성학교”에서는 대한자강회와 신민회의 일원으로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강규찬이 신성학교 교사로 부임한지 3년 후 1911년 10월 105인 사건을 만나 다른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과 함께 구속되어 극심한 고난을 받으며 기독교 민족애을 가슴에 품었던 일련의 과정을 추적한다.

4장, 5장에서는 일제의 감시로 신성학교 교사를 사임한 후 사역자로 부름을 받고 선정현교회에 부임하기 전까지 강규찬의 목회준비 과정을 연구하고, 1917년 평양산정현교회 부임~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2년간의 초기 목회사역을 집중 조명한다.

6장, 7장에서는 강규찬이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민족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연구하고, 산정현교회 당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출발한 물산장려운동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저자는 마지막 8~10장에서 평양산정현교회가 어떻게 대 사회적 민족적 책임을 구현하는가를 다룬다. 특별히 저자는 여기에서 강규찬이 산정현교회의 목회가 절정에 달할 때 어떻게 후임을 준비하고 아름답게 세대교체를 마무리하는지 그 과정도 다뤘다. 1933년 고향 선천으로 내려가 선천읍동교회, 선천봉동교회, 그리고 모교회인 선천읍북교회를 섬기는, 그의 말년의 목회사역을 집중 조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한학자로서의 활동 △인재양성 △기독교 민족운동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모범적 목회 등을 “강규찬이 한국교회사에 남긴 뚜렷한 족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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