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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종교개혁이 시급하다
2011년 07월 15일 (금) 12:31:14 장경애 jka9075@empal.com
<하나님 편인가, 세상 편인가>중에서
A.W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규장 펴냄


현재 모든 교회에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새로운 종교개혁이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그것에 매료되는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교회에게 돌려주는 종교개혁을 추구했는데 그들은 목적을 성취했다. 그 후 교회에게는 또 다른 종교개혁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얻고 회심하여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종교개혁으로서 웨슬리 형제들의 주도로 일어났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종교개혁이 요청된다. 이것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영적 완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완전함을 가장 쉬게 설명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종교개혁이 일어난다면 우리 모두의 부족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이 볼 때 우리의 교리가 아무리 건전하고 우리의 명성이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부족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히 실현될 때 주어지는 적극적이고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 정말 좋겠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성경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 없어지고,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신약의 교훈에 따르지 않는 모든 것이 거부될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이런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구주를 바라보며 그분이 일하시게 할 것이며 각자가 “오! 십자가! 오! 감사한 십자가! 내 품으로 오라!”라고 고백하며 기쁘게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는 형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소극적인 형태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인 형태이다. 소극적인 형태는 그분의 행하심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소극적인 의미에서 그분의 뜻을 말한다.

이 소극적인 형태가 신약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0)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큰 기적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녀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반응하는 또 다른 형태는 적극적인 형태이다. 사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분의 계명을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준수하는가? 즉, 당신의 모든 삶을 신약의 교훈에 일치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당신의 삶에 적극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반응이 곧 교회의 종교개혁이다. 이런 종교개혁은 틀림없이 부흥을 일으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본당에 앉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고 찬송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들은 “나는 하나님께서 행하기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한다. 요컨대 그들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분의 뜻대로 행하기를 적극적으로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삶을 신약의 교훈에 일치시키며 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엘리야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큰 능력을 그토록 확실하게 보여주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던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말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 받아들인다면 즉시 십자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고통스럽지만 열매 맞는 복된 고난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일찍이 이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벧전4:13)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서 영적 능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즉, 그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이미 가신 그 길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분과 친밀하고 복된 교제를 나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와 연결시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복된 교제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위대한 성도들은 모두 자기 십자가를 잘 알았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살았던 성도들도 그랬다. 본질적으로 그들이 자기 십자가를 잘 알았던 까닭은 순종이 곧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체험하게 되고, 아주 빈번히 영적으로 훈련받게 된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살핀다면 십자가가 찾아올 때 그것과 기꺼이 씨름할 것이다.

구약의 야곱을 생각해 보라. 그의 십자가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것은 그의 육신적 자아로부터 직접적으로 찾아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 마음의 본질을 깨닫고 자기 자신이 자기의 십자가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했다.

다니엘의 경우를 잘 살펴보면 당신은 그의 십자가가 세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욥의 경우를 연구하면 사탄이 그의 십자가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탄은 욥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세상은 다니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야곱은 ‘야곱다움’이라는 십자가, 즉 자신의 육신이라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신약의 사도들을 연구해보면, 당시의 종교 세력이 그들의 십자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자. 나무 십자가를 그토록 많이 만들어내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루터의 십자가였다. 웨슬리의 십자가는 개신교로부터 왔다.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위대한 신앙인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전진했다.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예외 없이 그들은 고통스럽지만 복되고 열매 맺는 고난에 동참했다.

흔히 우리는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흥은 언제 일어나는가? 우리가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대가를 지불할 때 일어난다!

당신은 마음을 살피며 성령 안에서 해산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를 위해 복된 고난과 고통을 맛본 적이 있는가? 이런 결단과 헌신이 없다면 당신이 죽는 날까지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 할지라도 부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결단과 헌신이 없다면 부흥을 위한 철야기도회에 참석한다 할지라도 남는 것은 수면 부족과 약간의 신체 리듬의 변화일 것이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기도하라.
“오, 하나님! 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저는 영광을 완전히 먼지 속에 파묻습니다.”
우리에게는 비로 이런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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