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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2011년 04월 25일 (월) 06:59:47 장경애 jka9075@empal.com

<나를 따르라> 중에서
톰 라이트 지음/ 이혜진 옮김/ 살림 펴냄


공산주의자 연사는 연설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잠시 뜸을 들였다. 큰 무리의 청중은 겁에 질려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따라서" 그가 말을 이어갔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성령 같은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단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도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었습니다. 미래는 국가에 달렸으며, 이제 그 국가의 운명이 당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막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에 앞좌석에 앉아 있던 한 늙은 신부가 일어났다. “두 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신부가 물었다(사실 세 마디이지만, 그 신부는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연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요청을 허락했다. 신부는 몸을 돌려 청중들을 훑어보더니 소리쳤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러나 신부 뒤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분이 과연 다시 사셨습니다!” 이들은 지난 천 년 동안 부활절이 되면 이렇게 소리쳐 왔다. 이제 와서 다시 외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부활절은 일 년 중 가장 위대한 시기이다. 부활절은 너무나 큰 절기이기 때문에 교회에 속한 우리들조차 그 절기의 광대함을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부활절의 의미를 축소하여 자신들의 작은 마음에 끼어 맞추려 들었다. 세상은 부활절을 털복숭이 토끼나 초코릿으로 만든 달걀과 맞바꾸었다. 물론 토끼나 초코릿도 어렴풋하게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부활절이 의미하는 바의 출발선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교회에 속한 우리는 오늘날의 영적인 삶의 원천이 모두 부활절에 기초한다고 생각해 왔다. 예수는 오늘도 살아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이는 매우 훌륭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부활절의 진실을 온전히 설명해 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미래의 소망의 근원이 부활절에 근거한다고 생각해 왔다. 예수의 부활은 무덤 너머에도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이 말 속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작은 언덕의 정상에 올랐음을 의미할 뿐, 사실 부활절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 산의 제 1 베이스캠프에도 채 이르지 못한 셈이다.

부활절은 단순히 당신과 나와 우리의 영적인 경험을 설명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혹은 무덤을 넘어 선 희망을 암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부활절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는 “뉴에이지”라는 개념은 실제를 엉성하게 패러디한 이교적 산물에 불과하며, 실제는 다음과 같다. 최초의 부활절 아침, 예수께서 향유가 부어진 무덤에서 걸어 나오셨을 때, 우주 역사의 진로가 바뀌었다. 비로 이 순간 진정한 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소위 “뉴에이지”운동과 온갖 잡다한 문화들과 반쯤 굽다만듯한 거짓 철학이 치고 들어와 빈 공간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부활절은 창조주께서 모든 악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신 날이다. 부활절은 사랑의 하나님이 모든 폭정에 승리하셨음을 의미한다. 이 때 폭정이란 좌파와 우파 할 것 없이 모든 권력의 압제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때때로 흉악한 실체를 드러내곤 하는 소위 중도 세력에 의한 압제를 포함한다. 부활절은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그분의 나라가 임하실 것이며,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임을 뜻한다. 부활절은 이 세계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부활절은 눈물을 닦는 날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참된 공포와 기쁨을 두려워한 나머지, 눔물의 진정한 의미를 잊게 되었다. 우리는 눈물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우가 있다. 사실 눈물이란 진리를 상기시텨 주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징표였으나, 공산주의 선동가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 시대의 문화는 진리를 - 우리는 발가벗은 원숭이도 아니고 천사가 되기 위해 예비 과정을 밟는 존재도 아니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라는 진리를 -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던 것이다. 어떤 하나님의 형상인가? 친구의 무덤 앞에서 우셨던 하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땅에 엎드려 흐느끼셨던 하나님 말이다. 우리는 눈물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사실 눈물이란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활절이 없다면 갈보리의 사건은 또 한 사람의 실패한 메시아에 대한 정치적인 숙청 사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활절이 없다면 이 세계는 냉소적으로 어깨나 으쓱이게 만드는 회의론과 도피주의의 환성과 독재자의 탱크에 둘러싸여 사면초가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부활절이 없다면 선이 악에 승리를 거두고 사랑이 증오를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이길 것이라고 사정할 수 있는 이유가 사라진다. 그러나 부활절을 통하여 우리는 희망을 본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사랑이 있어야 탄생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사랑이 인간이 되어 죽으시고 이제는 영원토록 살아 계시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계셨기에 하나님이 모든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실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금요일의 세상에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일요일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 모두는 갈보리 언덕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사역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부활절의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그분의 손길이 우리에게 수건을 건네시며 그분을 따르라고 명령하시며 가서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라고 말씀하심을 깨닫게 된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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