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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긍정병(病), 심리학자·저술가·설교자 책임”
2011년 04월 15일 (금) 16:01:37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우리는 ‘긍정적’이라는 단어와 ‘좋은’이라는 단어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밝고 낙천적이고 명랑한 사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환영받는다. ‘긍정’은 그 이름부터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친화성 또는 강제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현실을 비판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면 ‘부정적’이라고 비난하고 ‘패배자’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는 그만큼 ‘긍정이데올로기’가 우리사회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긍정’은 이제 여러 가치 중 하나가 아니라 누구나 따라야 할 절대가치, 사회 성원들이라면 의례적으로 갖추어야 할 미덕이 된 것이다.

본서(<긍정의 배신>, 원제 Bright Sided, 도서출판 부키, 2011년 4월 1일 발행)는 기업, 종교(초대형교회), 의료계, 학계(심리학) 등에 만연한 이 같은 ‘긍정주의’를 다룬 책이다. 우리가 흔히 ‘좋은 것’이라고 칭송하는 긍정적인 생각, 낙관주의를 난타한다. 물론 저자 역시 고통과 절망을 극복해내는 희망과 긍정, 낙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부터 확산된 이른바 ‘긍정적 사고’가 이제 ‘긍정병’의 수준을 넘어 ‘긍정교’의 차원이 됐다고 고발한다.

세포생물학자인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가 ‘긍정주의’문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인생이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였다. 보통 사람들처럼 막연한 낙관주의에 빠져 지낼 뻔 했던 저자에게 발병한 유방암 때문에 분노의 취재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정작 저자는 암수술로 기가 죽어 있는데 주변에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누군가 선의로 내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찬 것과 같다”는 경험담이 넘쳐났다. 심지어 “핵심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라는 증언까지 나왔다. 막상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은 ‘긍정’을 강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암담한 그림자 속에서 사람들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기업계에서는 세일즈 영역에서 긍정주의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동기 유발이라는 이름의 각종 강연 및 코칭 산업은 한편으로는 직원을 통제하는 고삐로, 다른 한편으로는 해고된 노동자의 불만을 다독이고 남은 직원의 사기를 북돋는 나팔수가 되었다. 서비스산업이 발달하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사고’, ‘스마일’을 강요할 필요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사회는 이미 긍정이라는 마약에 마비됐으며,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항공기를 날게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이착륙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부주의한 학생들”에 대한 비행 학교들의 보고를 비롯해 항공기를 이용한 공격 가능성에 대한 숱한 경고가 무시된 결과는 9·11테러였다. 주택거품 붕괴 우려 때문에 ‘매도(賣渡)’ 의견을 낸 전문가를 바보 취급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재점검하자”고 제안한 관리자를 해고한 대가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심리학자·저술가·종교인(특히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모든 면에서 볼 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설교자들은 긍정적 사고를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더 이상 죄를 언급하지 않으며 기독교 우파의 단골 속죄양이었던 낙태나 동성애도 거의 지적하지 않는다. 지옥의 위협과 구원의 약속은 사라졌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복음주의 초대형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찾아볼 수 없다”(p.178).

   
저자에 따르면 미국이 원래 낙관주의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칼빈주의로 무장한 청교도의 엄숙함, 깐깐함이 미국문화의 바탕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였고, 결정적으로 낙관주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1952년 노먼 빈센트 필 목사가 쓴 <적극적 사고방식>이었다. 이 책에서 필은 “자신의 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상쇄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생각을 의식적으로 소리 내어 말해 보라”고 권했다.

필의 낙관주의는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호황을 맞아 만개했으며 1997년 미국 심리학 회장에 당선된 심리학자 셀리그먼은 ‘긍정심리학’을 임기 중 역점사업으로 발표했다. 이제 만연한 낙관주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이라는 근거까지 갖추게 됐다. 여기에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 같은 책은 “원하면 이뤄진다”고 속삭이고, 개신교 목회자인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힘> 등의 저서와 설교를 통해 “당신이 직업을 잃었다 해도, 문 하나가 닫혔다 해도,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어주실 것”이라며 ‘긍정신학’을 전파한다.

“1950년대 노먼 빈센트 필에게 제기되었던 비판은 오스틴의 걸작에도 그대로 통한다. …하나님이 당신이 갖기를 바라시는 성공과 건강, 행복을 어떻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오스틴이 제시한 기법은 세속의 긍정적 사고 주창자들의 방법에서 직접 따온 것이다. 바로 시각화다. 다른 긍정신학 주창자들 역시 언명을 강조하며, 꿈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신앙의 승리를 긍정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p.181).

본서를 통한 저자의 주장은 선명하다. 자본주의가 긍정이데올로기와 서로 윈윈하며 공생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살라는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을 무디게 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개인의 영역으로 머물게 하기 딱 좋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주의 깊은 현실주의’다.

“주의 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 우리 자신이 처한 실제 환경을 도외시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p.280).

<바벨탑에 갇힌 복음>, <무질서한 은사주의>, <신비주의와 손 잡은 기독교> 등 그동안 교회 내부에서조차 ‘부흥신학’내지 ‘긍정신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본서는 사회학자의 시각으로 드러난 교회의 실제적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날카롭고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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