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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내가 오늘밤 너를 여선지자로 세운다"
분석/ 신디제이콥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죠이선교회)
2011년 03월 21일 (월) 08:13:01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소위 예언사역자로 알려진 ‘신디 제이콥스’(이하 신디)라는 여인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죠이선교회, 1996)는 책을 통해 자신이 ‘여선지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선지자인 근거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다시 말해 직통계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어느 날 저녁, 한 능력 있는 연합 중보집회 도중 주님이 내 마음 속에 말씀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9살 때보다는 좀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신디, 나는 오늘 밤 너를 이 나라의 여선지자로 세운다.” 잠시 후, 기도를 인도하던 인도자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그때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 다음에 들었던 말로 내가 기억하는 것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 내가 너를 이 나라의 여선지자로 세운다’”하는 것이 전부였다.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날 밤 이후 나는 달라졌다. 내가 비유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방법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마치 안수를 통해 한 명의 사역자로 임명받는 것과 같았다. 나는 새로운 기름부음을 받았고, 성령 안에서 더 큰 권위를 받았다. 내가 하는 예언은 더 상세하고 구체적이 되었다](신디 책, pp.261~262).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통해 ‘여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신디’는, 자신의 역할은 소위 ‘예언’을 하는 것이라 한다. 그가 말하는 예언의 행위는 직통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신디가 4살 때부터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신디는 이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의 책 서두에 언급했다.

[1955년, 4살 난 여자 아이가 엄마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며 “엄마,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네 살짜리 아이였던 나는, 나의 여동생의 출생에 대해 알았던 ‘지식’이 예언(자발적이고도 신적으로 주어진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이해나 예견)이었다는 것이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내가 여동생의 출생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내 생애에서 나타난 단 한 번의 사건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삶 가운데 예언적 소명을 받았다고 할 만한 작은 증거가 될 수 있다](pp.23~24).

신디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동료 베스라는 여성의 예도 언급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것의 정당성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베스라는 여성이 3살 때의 일이다. 삼촌이 그때 자살했다. 가족들은 삼촌의 불신앙적 행위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신디가 말하려는 베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베스는 나무 밑에 앉아서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하나님 우리 삼촌이 천국에 갔어요? 아니면 지옥에 갔어요?”하고 소녀 베스는 물었다. “천국인가? 지옥인가?”하는 이 말이 그 아이의 마음 속에 메아리치며 이리저리 울렸다. 마치 어떤 사람이 옆에 서서 그녀에게 말해 주는 것처럼 분명하게 그 아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나는 중심을 본단다. 나를 믿어라” 그 아이의 어린 영혼은 평안으로 가득 찼고, 삼촌이 천국에 간 것을 알았다](p.38).

   
신디는 자신의 자녀들도 특별한 예언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황당한 ‘전기코드 구멍’사건을 그 증거로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메리가 예언적인 아이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첫 번째 지표는 전기코드 구멍에 대한 씨름이었다. 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아이는 집안의 모든 전기 구멍에 손가락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우리는 작은 안전마개를 사다가 막았지만, 그 아이는 그것을 빼버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작은 손을 아무리 때려도 그 아이는 또다시 전기 구멍으로 기어갔다](pp.194~195).

할 말을 잃게 한다. 어이가 없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요즘 청소년들이 쓰는 용어도 생각난다. ‘헐~’.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디와 그의 자녀가 정말 뛰어난 예언자적 부름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신디는 그의 자녀 다니엘이 11살 때 가졌던 체험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이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기도를 했다. 그때 벽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한 분은 예수님이고 또 다른 한 분이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다니엘과 대화까지 했다는 것이다. 신디는 그것을 환상을 통한 예언이라고 한다. 들어보자.

[다니엘은 “주님, 저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요”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아이는 두 사람이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하고 그 아이는 흥분해서 말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이었고요. 다른 사람은 할아버지였어요” ···그 아이는 부드럽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분이요. 이렇게 말했어요. ‘다니엘, 나는 네 할아버지란다. 나도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그를 너에게 소개시켜 주겠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의 아버지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엄마,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어요. ‘메리에게도 안부 전해라. 아 참, 한 가지 더 있다. 주님은 네가 그분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너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신단다’”](p.309~310).

죽은 자를 보았다는 다니엘의 체험은 신디가 생각하는 ‘환상’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신디는 환상의 종류를 ‘열린 환상’, ‘내적 환상’으로 구분한다. 열린환상은 실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영적인 존재인 천사도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p.321). 이는 같은 영적 존재인 사탄도 볼 수 있으며, 영이신 하나님도 볼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과연 그 말이 옳은가? ‘신접한 자나 초혼자를 용납하지 말라’(신 18:11)는 성구가 그녀의 성경에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신디는 자신이 받았다는 직통계시를 그의 책에 수시로 기록했다. 아래와 같은 식이다.
“신디, 나는 네가 그에게 가서 안수하길 원한다. 그러면 내가 그를 치유할 것이다”(p.61).
“드디어 네가 스스로 무엇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구나”(p.158~159).
“신디,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고 과거에는 논쟁거리가 되었던 일이 오늘날에는 흔히 일어날 수도 있는 법이다. 나의 말을 가르쳐라”(p.191).
“신디, 네가 나의 명성을 더럽힐 수는 없다. 너는 그저 내 앞에서 신실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p.301).

신디와 가계저주론


   
▲ 신디 제이콥스
신디는 조상의 저주가 가계를 통해서 흐른다는 소위 ‘가계저주론’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미 한국교회로부터 비성경적인 사상으로 규정된 바 있다(예장합신/2001년 86회 총회/위험한 사상, 예장통합/2006년 91회 총회/사이비성 농후). 신디는 자신에게 있는 심령능력은 아버지 집안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 이유로 아버지가 심령술, 점성술, 독심술 등에 관심을 기울여왔었다고 했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친구 아버지는 “장차 큰 영매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디의 말을 들어보자.

[전술한 바와 같이 나는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를 “알았던”것 같다. 그 예언들 중에 많은 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들이었다. ···나는 좀더 심령능력에 가까운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아버지 쪽의 가족으로부터 유래했다. 사실 우리는 심령술에 대해 농담하면서, 때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맞출 수 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점성술 책에 있는 나와 관계된 내용을 읽기는 했지만 거기에 대해 단 한가지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 시도하면서 독심술을 한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p. 88).

그녀는 “가족 안에 이단적 사술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비록 그것이 2세대나 3세대 전에 제거된 일이라 하더라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샌포드 부부의 책 내용을 인용하며 자신도 ‘심령유전’을 받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는 ‘공포’와 ‘염려’라는 세대를 통해서 흘러온 죄악이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p. 88-89).

그녀의 가계저주론 사상은 성경을 해석할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윗이 밧세바와 비도적적인 행동을 한 이유를, 다윗이 기생 라합의 직계 후손이라는 데서 찾는다. 마찬가지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적 범죄를 저지른 그 원인이, 그의 불신앙과 인격 등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적 범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암논의 근친상간의 죄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p.90).

특별한 방법으로 가계저주론 사상을 끊을 수 있다며 그 방법까지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선조들의 특정한 죄를 찾아내라.
2. 그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회개하라(그녀는 회개 기도문도 기록해 놓았다. 필자 주).
3. 그 죄의 결과로 오게 된 모든 저주의 능력을 무너뜨리라.
4. 이러한 죄의 열매가 당신과 당신 자녀들의 인생에서 메말라버리고 죽어버릴 것을 명하라.
5. 당신의 인생에 세대적 불의에서 유래된 모든 부정적 영향을 고쳐주시도록 주님께 요청하라.
6. 이러한 세대적 불의로 인해 지나간 속박과 악습을 분별해 내라.
7. 이러한 속박과 악습과 중독에 대한 소유권을 취하라.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롬 8:1),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등의 많은 성경구절들이 가계저주론 사상 앞에서는 과연 무용지물이 되는가?

예언 실패?

신디는 예언을 ‘개인예언’과 ‘연합예언’ 등으로 구분한다. 개인예언은 말 그대로 개인의 일상에 대한 일들을 맞춰준다는 식이며, 연합예언은 회중에게 주어지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p.25). 특히, 신디는 개인예언을 “마지막 시대에 성령의 부어주심의 성취”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p.141).

예언이 실패했을 땐, 어떻게 될까? 신디는 ‘예언 실패’에 대해서도 당당하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참 예언자가 100% 정확하다는 것이 아니다”(p.136).
“비록 잘못된 예언이 있기는 하지만 예언의 은사의 장점은 그것이 유발하는 문제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p.102).
“당신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신디, 당신의 예언이 틀린 적은 없습니까?’ 물론 나도 있다”(p.270).

예언이 실패할 수 있지만, 성공했을 때의 장점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이다. 확률이나 영향력이 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오히려 특정한 사건과 날짜를 예언했다가 실패한 후 그것에 대해 공개사과를 한 어느 예언자의 행동에 대해, 신디는 존경한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p.270). 적중하면 “그것 봐라”이고, 빗나가도 “그래도 괜찮다”는 식이 신디가 추구하는 예언이라는 말인가?

예언 실패에 대한 재미있는 예가 또 있다. 먼저 독자들께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한 예언자라는 이가 2년 후 특정 지역, 특정 날짜에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그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지역에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경우 그것을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틀렸다. 그 예언은 가짜다’라고 말하는 게 정직한 모습이지 않을까? 너무도 정확한 날짜와 장소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변명할 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디의 반응은 다르다.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약 2년 전에 어느 특정한 날이 되면 미국의 태평양 북서부에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돌았다. ···그 날이 오고 지나갔지만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예언이 가짜였을까?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기도가 재난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것이다. ···어려운 부분은 우리가 그 예언에 너무 사로잡혀서 속임수로 인도될 수 있는 문을 열어 좋게 되거나, 혹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었으니 재난은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pp.274-275).

예언이 틀렸을 경우,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옮기셨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날짜와 장소에 일어날 일을 예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언자의 잘못이 아니라 계획을 바꾸신 하나님 ‘탓’이라는 말이다. ‘손으로 태양을 가리겠다’는 말과 다를 게 무엇인가?

일본 대지진 예언은?


최근 전 세계는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다. 원자력발전소의 파괴로 인해 경제뿐 아니라 환경문제까지 그 파장이 말 그대로 ‘전 세계’에 매우 심각하게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큰 문제에 대해 신디는 예언이라는 것을 했었나?

신디는 자신의 예언의 특징을 ‘세계 열방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특정한 나라를 대신해서 예언하는 게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독특함이라는 것이다(p.330).

그런 그가 그의 책에서 ‘일본’에 관한 언급을 했다(p.353). 기자의 눈이 순간 멈췄다. 최근의 일본 대지진 상황이 기자의 뇌리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신디의 책은 1996년에 초판으로 발행된 것이었다. 15년 전에 과연 신디가 지금의 대지진에 관한 언급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러나 이내 실망으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최근에 그녀가 한 예언 속에는 일본에 관한 언급이 들어 있지 않을까? 몇 가지를 찾아보았다. 신디는 집회 차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북한 문제 등을 언급하며 한국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예언했다. 이때 일본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2년 전인 2009년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한국을 방문했음에도 한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본 대지진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예언(?)도 하지 못했다.

일본과 한국이 별개의 상황이라고 그런 것일까? 일본의 상황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의 일본 대지진은 한국의 경제, 환경 등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북한 문제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신디의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보았다. 그곳에서는 일본 대지진을 예언해 놓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신디와 그의 남편(마이크)의 이름으로 개설되어 있는 사이트(www.mikeandcindyjacobs.com)에 들어가 보자. 자신들의 소개와 집회 소개 등 여느 집회 인도자의 사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와 연관된 다른 사이트(www.generals.org)에 들어가 보았다. ‘한해의 예언의 말씀’(Prophetic word for the year)이라는 주제문구가 정면에 나타났다. 신디의 방송 인터뷰가 동영상으로 여러 개 올라와 있기도 했다. 사이트 안에 있는 'news'와 'prophetic' 방을 차례로 들어가 보았다. 소위 예언에 관한 뉴스를 소개한 것이다. 일본 대지진일 발생한 날짜인 3월 11일에 뉴스가 있어 살펴보았다. 신디가 그의 남편과 함께 한 작가와 대담한 동영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 대지진은 그곳에 없었다. 다른 곳을 살펴보았다. 1월, 2월의 뉴스, 심지어 지난 해 11월 12월 뉴스도 살펴보았다. 신디의 행적과 그녀의 말을 자세히 올려놓았지만 역시 일본은 없었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 4일만인 지난 3월 15일 날짜에 ‘일본 대지진에 대한 전망’(A Perspective on the Earthquake in Japan)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온 게 전부다. 글의 끝에는 일본을 위한 기도제목을 실었을 뿐이다. 사건이 지난 후에 대한 내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신디의 예언에 ‘일본 대지진’은 없었다.

신디가 행한다는 예언이 과연 옳은 일일까? 존 맥아더는 그의 책<무모한 신앙과 영적 분별력>(Reckless Faith, 생명의 말씀사, 1997)에서 ‘자기 기분, 내적 음성, 환상, 주관적 느낌 등’에 의존하는 것들을 무모한 신앙이라 불렀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믿음들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그의 책, p.7). 박영돈 교수(고신대 신대원)도 같은 의견이다. 박 교수는 최근 발간된 그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IVP, 2011)에서 자기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 즉 지적인 감명이나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심적 감동을 성령의 음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pp. 32-33). 어떤 종류의 ‘느낌’보다는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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