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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거니, 길이 열리더군요”
[개척교회, 우리의 희망] 청주 참사랑교회(박종선 목사)
2011년 01월 21일 (금) 08:11:5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개척교회’라 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목회자나 성도 입장 양쪽에서 생각해 봐도 부담스럽게 들리는 말입니다. 재정 문제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 보면 ‘희망’이 보입니다. 개척교회도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지요. 개척교회 현장에서 그 희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편집자 주>


   
“장년 성도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아이들 때문에 안 되겠어요’라며 저의 결정을 요구했어요. 마치 최후통첩과도 같았지요. 저도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이들을 택하겠다고 말이죠. 갈 곳 없는 30명의 아이들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지요. 그랬더니 5가정의 장년들이 모두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박종선 목사(48, 청주 참사랑교회, http://0675.ijesus.net)의 목회는 5가정의 장년이냐, 30여 명의 아이들이냐를 선택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장년을 선택하면 목회가 ‘푸른초장’으로 보이고, 아이들을 선택하면 목회가 ‘광야’로 보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여러 의견들이 있었지만 박 목사는 아이들의 눈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아이들을 선택한다는 것은 ‘목숨 건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11년 전, 박 목사(당시 전도사)는 개척교회의 문을 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 청주의 한 지하실을 임대했다. 특별한 비전, 달란트, 철학, 계획 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목회의 소신으로 시작한 것이다. 전도를 통해 5가정의 장년들이 함께했으니 나름대로 ‘선전’(?)한 셈이었다.

“어느 날 새벽기도에 나오려는데 교회 앞에 3~4명의 가출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갔지요. 거의 매일 그들을 만났어요. 그들을 교회로 불러들였어요. 식사를 대접하고 불편하지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했어요. 그리고 물었죠. ‘너희와 같은 아이들이 더 있느냐’ 30여 명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했지요.”

박 목사의 목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박 목사는 온종일 그들을 돌보는 데 사력을 다했다. 고아, 부모 이혼, 가정 폭력, 학교 퇴학 등 수많은 상처들로 점철된 아이들의 인생을 보살폈다.

그런데 장년 성도들이 반기를 들었다. 가출 청소년들과 함께 신앙생활 못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냐 저들이냐’의 선택을 요구 받았다. 박 목사는 ‘당신들은 갈 곳이 많지만, 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며 아이들을 선택했다. 그러자 그들은 떠나고 말았다.

“비효율적인 목회다, 미쳤다, 쓸데없는 일이다, 결국 얼마 못 간다”는 등의 충고(?)를 들었다. ‘내가 정말 미쳤나’를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의 논리를 떠 따르기로 했다.

   
결국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재정이 바닥났다. 가지고 있던 조금의 개인 재산도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어디서 빌릴 수도 없고, 또 빌린다 하더라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다. 30여 명의 청소년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에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로 ‘결단’을 했다. 막노동이었다. 아내 김순복 사모는 식당 설거지 등의 일에 뛰어들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카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굶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두 달……. 신용불량자로 떨어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 목사는 이 아이들을 돌보다가 인생이 끝나면 그렇게 하겠다고까지 다짐을 했다.

“그 때 남편(박 목사)을 향해 처음으로 이혼하자고 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못 하겠으니, 혼자 하라고 한 것이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참.”

옆에 있던 김순복 사모가 당시를 생각하며 한 마디 거들었다. ‘이것이 목회인가’ 등 수 많은 생각이 자신을 흔들었다고 했다. 어린 딸 지희(지금은 고1)를 볼 때 더욱 마음이 아팠다.

   
▲ 박종선 목사(왼쪽)와 김순복 사모(오른쪽)
2년 후, 빛이 비추었다. 정부의 사회복지를 위한 각종 제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박 목사가 청주지역 1호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자로 선정이 된 것이다. 박 목사 내외가 모두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격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후 급여가 지급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각종 시설도 제공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4동의 기숙사(해뜨는집, 해맑은집, 해오름집, 드림하우스)가 마련되었다. 학생들은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미래를 꿈꾸며 달려가고 있다. 모두 충실한 교회 성도들인 것은 당연하다. 큰 아이들은 벌써 청년부가 되어 동생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

안미영 양(20)은 중학교 3학년 때 박 목사를 만났다. 가정적인 어려움으로 방황할 때다. 그가 지금은 해뜨는 집 기숙사의 보육사로 일을 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는 찬양팀인 오아시스밴드의 단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김민석 어린이(초6년)는 초3년 때 이곳에 왔다. 아동학대 등의 고통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태권도 유단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초등학생 찬양밴드인 파라다이스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장년 성도들도 많이 늘었다. 평균 30~40명이 출석을 한다. 예배당 의자가 부족할 정도다. 또 하나 즐거운 일은 올 4월이면 박 목사가 신용불량자 해제가 된다.

“우리 교회는 ‘쉼’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든 사람, 상처받은 사람 등 누구든지 찾아와서 쉼을 얻고 또 힘을 공급받고 나서, 자신의 비전과 더욱 적합한 곳이 있다면 떠나도 좋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렇게 여러 차례 설교도 했구요.”

박 목사는 개척교회, 작은 교회가 해 줄 수 없는 분야가 많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좋은 환경, 좋은 교육 시스템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지만,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국교회, 특히 큰 교회가 ‘치리 목회’를 좀 더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불의한 신앙과 삶에 대해 교회가 공정하게 치리하게 된다면, 큰 교회는 물론 작은교회도 보다 건강해 질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정말 아이들만 생각하고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목숨 걸었죠. 그러니까 길이 열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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