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교육·세미나
       
일본문화개방에 따른 기독청년의 문화전략03/ 일본문화의 전통과 현재
1999년 05월 01일 (토)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응교
* 시인 김응교는 연세대 신학과, 일본 동경외대 국비연구생을 거쳐, 연세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동경대에서 비교문화와 비교문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교수(한국문학 . 비교문화)로 강의하고 있다. 지은책은 예술문학기행 {천년동안만}, 인물전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문화예술론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가 있고, 번역서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 {예언자의 동산} 등이 있다. 

선정성과 폭력성. 아마도 일본문화에 대한 우려를 대변해 주는 가장 적합한 단어들일 것이다. 전 세계의 만화 시장을 잠식한 일본 만화영화 <드레곤볼>이나 일본보다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 더 인기가 높은 X-JAPAN의 노래들을 보면 세간의 염려가 괜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는0 듯하다. <드레곤볼>에서는 여자들이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밀며 춤을 추는 장면을 보는 '무천도사'와 그에게 무술을 배우기 위해 도색 잡지를 상납하는 '크리링'. 그것을 받아들고 낄낄거리고 보며 좋아하는 무천도사가 원하는 것은 싱싱하고 예쁜 여자아이인 '팔팔걸'이라는 것 등등 도무지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로는 납득이 안 가는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X-JAPAN의 히트곡 'Sadistic desire'를 보면 "천진난만한 여인을 웃으면서 고통을 줘 죽이고, 오 그래 난 무아지경이야. 뇌리에 새겨진 해침의 쾌락은 살기를 띠고 피를 토해 내내... 휘감기는 섹시한 미친 여자 손목을 토막내고 정답게 미소 짓네..."라는 등 섬찟한 가사 일색이다.

이렇듯 폭력, 선정적이라는 일본 문화의 개방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떤 문화 전략을 가져야 할 것인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3월 27일 제 3회 문화 심포지엄을 통해 그 대안에 대해 모색하는 장을 마련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신국원 교수(총신대), 김응교 교수(일본 와세다대학) 등이 발제자로 나섰다. 신국원 교수는 <대중 문화와 윤리, 그리고 신앙>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며 "일본 사회가 우리 대중문화나 서구의 것보다 선정성, 폭력적, 주술적인 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라며 "뛰어난 기술과 자본력으로 밀려오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원론적인 부분을 강조한 신교수의 강의 이후에는 일본문화의 전통, 일본 대중음악, 게임 및 전자매체, 영상문화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인 부분에 대한 문화전략을 세우는 데까지 접근해 갔다.

 김응교 교수는 현대의 일본 대중 문화를 통해 중요한 미학체계를 ▲ 와비사미의 미학(자기 억제적인 간소의 정신) ▲ 사무라이 문화와 우익 정치성향 ▲ 성개방 문화 ▲ 죽음의 미학 ▲ 숨겨진 천황주의로 나누는 것에서부터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까지 탁월한 안목으로 주제 강연을 해 주목을 끌었다. 이외에도 선택식 토의에서는 강인중 대표(음반기획사 라이트하우스 대표)가 <일본 대중 음악 개방에 따른 우리의 자세>, 최태연 교수(숭실대)가 <일본문화 수용의 실태와 문제, 게임 및 전자매체>, 강진구 위원(기윤실 문화전략위원)이 <일본 문화 개방에 따른 기독청년의 문화전략, 기독교 세계관으로 읽은 일본의 영상문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일본문화개방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모두 의미 있는 강연이었지만 지면관계상 김응교 교수, 강인중 대표, 강진구 위원의 강연을 게재한다.

우주온 간사(기윤실)는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일본문화 교류에 있어서 협소한 시각을 탈피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특히 일본문화에 대해 복음전파라는 틀 속에서 봐야 한다는 별도의 시각을 제시한 심포지엄"이라고 평가했다. - 정윤석 기자 -


긴 역사를 가진 민족의 문화는,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의 문화와 비교해서 그 가치를 논할 만한 것이 아니다.
- 인도를 여행하던 톨스토이의 말

 크로스오버
 먼저 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을 함께 해야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문화를 향유해 온 과정을 보면, 문화란 대략 다섯 가지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첫째, 문화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생산물이다(人爲性). 둘째, 문화는 집단의 특성을 나타낸다(集合性). 셋째, 문화는 생성되고 발전하며 소멸하거나 재창조되기도 한다(變化性). 넷째, 문화는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평가를 받게 된다(優劣性). 다섯째, 문화는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갖는다(이데올로기 성).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보는 시각도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은 저질성과 우익 제국주의성이다. 일본 문화라 하면 자연스럽게 근친상간이나 포르노 혹은 일장기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한 단어로 '왜색'(倭色)이라며 단죄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일본 문화가 자극적이고 해롭게만 보이는 까닭은, 이제껏 빗장을 걸어 막았기에 음성화되어 '저질'만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성질, 즉 성적인 집합성, 우익적인 이데올로기성이 분명히 있기는 있으나, 실제로 일본 문화의 핵심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본의 역사에는 중국 역사에 비견할 만한 기나긴 문화사(文化史)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 야요이 시대(3세기), 아스카 시대(6, 7세기), 나라 시대(8세기), 헤이안 시대(8 - 12세기), 카마쿠라 시대(1191-1336), 무로마치 시대(1378-1573), 에도 시대(1603-1868), 메이지 시대(1866-1912)로 이어지는 수천 년의 기간에 걸쳐, 일본 문화는 다양하면서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오래된 역사 과정을 거쳐 오늘날 1억 2천 3백만 낱낱의 삶으로 표현되고 있는 일본인의 문화를 그저 천박하다고 말하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특히,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변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일본 문화를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누릴 것은 누리게 된다. 문화는 변하고 서로 영향을 끼친다. 가령, '퓨전 재즈(Fusion Jazz)'라는 장르를 예로 들어보자. 'Fusion'이란 말은 '용광로'를 말한다. 즉, 퓨전 재즈란 재즈를 기반으로 해서 Rock, Blues, Classic, 혹은 각 나라의 토속음악을 용광로에 섞듯이 섞어 다양한 맛을 느끼게 생산된 재즈를 말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시나위나 사물놀이와 함께 재즈 뮤지션이 함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퓨전 재즈이다. 이들은 문화의 변화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그룹들이다.

이러한 현상을 'Crossover'라고 한다. 현재의 한일 문화를 자세히 볼 때,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과 일본 문화가 서로 'Crossover' 현상을 겪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국 쪽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 속에도 야키니쿠(불고기), 김치, '노란 샤쓰 입은'(노래), 김지하(문학) 등 한국의 문화가 스며 가고 있다. 서구 문화와 교류하는 것보다, 한일 양국의 문화가 'Crossover 현상'을 통해 스스로 폭이 넓어지고, 풍요롭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렇게 적극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대중 문화를 보려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다.

 전통을 변용한 현대의 일본문화
 현대 일본의 대중문화는 마치 서구문화에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에서 쓰린 패배를 겪은 일본인들은 스스로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잃었다. 게다가 안팎으로 일본의 전통 문화가 배척되어 가는 과정을 겪었다. 그래서 "일본의 상식은 세계의 비상식(非常識)"이라는 등의 일본인론(日本人論)이 상식화 되었던 것이다. 대중 문화의 주도권을 젊은 세대가 잡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인상일 뿐이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본래 뿌리인 전통적인 요소가 녹아져 변용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리 서구 문화를 받아들여도 일본인들은 서구문화를 곧 일본 문화의 틀에 녹여 소화해낸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일본인들이 만들어내는, 마크도구나르도 하무바가(McDonald Hamburger), 고갸르(高 - girl), 양마마(Young- mama)처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본 영어들이다. 이만치 일본인들은 스스로 고유의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러므로 일본문화의 전통적인 요소를 살펴보면, 일본 대중문화 생산품 중에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을 여는 코드(cord)를 얻게 된다. 그 중에 몇 가지 중요한 미학체계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와비사비(わびさび)의 미학
 오늘도 일본인 내면에 숨어 있는 중요한 미학 중의 하나는 와비사비(わびさび)의 미학이다. 일본인이 한국인의 한(恨)이나 독특한 '한국식 정(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일본인의 와비사비에 관한 감정을 짐작하기 힘들다.

 와비(侘, わび)란 가난함이나 부족함 가운데에서 마음의 충족을 끌어내는 미의식의 하나이다. 서글프고 한적한 삶에서 아취(雅趣)를 느끼고, 탈속(脫俗)에까지 승화된다면 그것이 모자름(不足)의 미의식이요, 가난함(貧)의 미의식이 된다. 모든 것을 버린 가운데에서 인간의 본질을 붙잡으려는 정신인 것이다.

사비(寂, さび)란 한적한 가운데에서도 더없이 깊고 풍성한 것을 깨닫는 미의식이다. 단순한 호젓함이나 낡음이 아닌, 깊이 파고드는 고요함 속에, 무르익는 가운데에서 넘쳐나서, 한없는 깊이와 넓이를 깨닫는 미의식이 바로 사비다. 와비, 사비는 일본의 다도(茶道)하 하이카(俳界)의 정신적인 미의식으로 기능했다. 이것은 중세 전국(戰國)시대의 전란을 거쳐, 그후 모모야마(桃山)시대의 현란하고 화사한 번영을 지나 이윽고 도달한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와비사비란 말을 오카다 타케히코(岡田武彦) 교수는 '간소(簡素)의 정신'이란 말로 바꾸어 설명했다. 그는 "일본인은 서양문화의 화려함의 미학에 비하여 '간소의 정신'으로 상반된 모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일본인이 타인 앞에서 자기 억제적인데 비해, 서양인은 자기 현시적이기 때문이다"라면서, 표현을 억제하면서 내적으로는 풍성함을 누리는 것이 '간소의 정신'이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모든 문화예술에 숨어있는 것이 바로 간소의 정신이라 한다. 수필, 와가(和歌), 하이쿠, 회화, 조각, 건축, 정원, 요리, 도자기, 차도(茶道), 음악, 무도 등 전 장르에 걸쳐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말을 사용할 때도 절제되고 생략된 말을 쓴다. 가령, '안녕하세요'는 '곤치와'(今日は)인데, 한국말로 하면, 그저 '오늘은...'하고 여운을 둔 말에 불과하다. 뒷말이 어떻듯 인사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숨기기의 미학이랄까.

 와비, 사비라는 미의식은 패전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과는 정반대의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후 일본은 와비, 사비와는 전혀 다른 물질만능주의, 이코노믹 에니멀의 길을 걸어온 대목이 있다. 그런 탓에 현대의 일본인은 더욱더 와비, 사비의 정신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일본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간소의 정신이 눈에 띈다. 도쿄라는 대도시에 이들은 시타마치(下町)라는 지역을 두어 옛날 집과 거리를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옛날 전차를 그대로 두고 타기도 한다. 도쿄의 북쪽, 오사카 . 쿄토에는 시내를 옛날 전차들이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향수를 팔아 돈을 만드는 이들의 상술과도 연결되어 있다.

 영화를 볼 때도 느끼곤 한다. 일본 소시민의 세계를 완벽하고 세련된 양식으로 그린 사람이 오스지야스지로(小津安二郞)이다. 그는 일본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 특히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애정을 테마로 <만추>, <가을다운 날>, <도쿄 이야기(東京物語)>, <꽁치의 맛> 등의 아름다운 영화를 발표했다. 그는 서구의 영화 문법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일본의 전통적 미학을 잣대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그것은 포커스보다 배경의 여백을, 인물보다는 자연을 잡아내는 영상이다. 음악보다는 침묵으로 관객의 마음을 채우는 기법이다. 그는 국제적인 상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영화인으로서 최초로 일본 예술원상을 수상하고,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가 죽은 후,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그의 작품이 붐을 이루어 많은 작품이 상영되었다.

 음악에서도 와비사비의 미학은 느껴진다. 가령,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담당했던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음악들에는 이러한 간소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외에 바쇼의 하이쿠에서 보여지는 간소의 맛, 생략의 법칙은 현대성으로 이어져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 같은 곳에서 살아나기도 한다. 또한 일본 교회의 건축이나 예식에서 와비사비를 느끼곤 한다. 일본 교회에 가면 적막감이 든다. 마치 절 같은 분위기이다. 예배 순서도 간소화되어 있고, 흰 장갑을 끼고 헌금을 걷는 교회가 적지 않다. 강대상은 검소하기 짝이 없다. 한국 교회처럼 거대한 강대상은 참으로 드물다. 도코노마가 딸린 응접실을 갖고 있는 교회도 있다. 간소한 전통을 교회 문화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코토(琴)를 옆에 진열시킨 교회도 많다.

 와비사비의 전통, 그것은 가난에 찌들어 보이는 것과 달리 어떤 넉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과거의 와비사비 정신 혹은 간소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2) 사무라이 문화와 우익 정치성향
 "우리 모두는 무로마치의 자손이다.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예의범절도 무로마치 막부가 정한 사무라이 예식(武家禮式)이 그 원류다"라고 시바 료타로는 말했다. 일본 문화의 핵심에 사무라이 문화가 놓여 있다는 지적은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이것이 작품으로 가장 잘 담겨 있는 작품은 <츄우신구라(忠臣藏)>이다. 1702년 3월에 일어난 사건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47명의 사무라이가 자신들의 영주 아사노의 복수를 하는 줄거리다. 이러한 사무라이 문화를 국제적으로 소개한 책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의 영문 저서 <BUSHIDO>(1899)이다. 이 두 가지 작품을 보면, 현대 일본 대중문화에서 보이는 몇 가지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첫째, 의리의 정신이다. '복수와 의리'라는 공식은 야쿠자 영화 시리즈, 가령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야쿠자와 싸우는 영화 <GONIN>(감독 石井 隆, 1995) 시리즈 등에 돋보인다. 야쿠자건 평범한 샐러리맨이건 '의리와 복수'로 삶을 이어간다. 흔히 한국인들은 정(情)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데 비해 일본인들은 철저히 의리로 뭉쳐 생활해 간다.

 둘째, 복수의 문화다. 의리로 이어져 있기에, 의리라는 관계를 깨어 놓는 대상에게는 복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다시 의리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세계에서도 희귀한 '복수문학'이라는 갈래가 있다. 반대로 일본인들은 한국의 옛이야기 <흥부와 놀부>에서 놀부를 용서해주고 흥부가 함께 사는 장면, 그리고 <춘향전>에서 마지막에 변사또를 복수하지 않는 장면에 대해 의아심을 갖는다.

 셋째, 의리는 하나의 중심체계를 통해 엮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문학에서 <임꺽정>이나 <홍길동전>, <장길산> 같은 인물은 국가의 중심세력에 항의하는 영웅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예술작품에는 이런 인물들이 거의 없다. 구로자와 아끼라(黑釋明)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들은 국가를 대신해서 산적들과 싸우는 충성스런 사무라이들이다. 이러한 사무라이 문화는 제국주의 시대에 군국주의로 변용되면서 천황주의와 이어져 과격한 종교적 군사체제로 완성된다.

당시 만화가 테츠카 오사무(手塚治)는 전쟁 자체는 문명사적으로 보는 인간적인 만화를 그렸으나, 구로자와 아끼라(黑釋明)는 전쟁을 응원하는 단편영화를 제작했고, 서정주나 이광수 같은 한국의 예술가들이 태평양 전쟁에 기여한 예술가들의 명목에 올라 있다. 이러한 광적 파탄의 결과물이 태평양 전쟁과 그 패배다. 패배의 시련을 겪은 뒤 그들은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신으로 만들었으며, 버블시대에 그것을 박제한 박물관이 야스쿠니 신사의 <유슈칸(遊就館)>이다. 이 건물에는 전쟁에서 죽은 246만 5천명이 신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인간어뢰·소년특공대·카미카제의 비행기들이 비장하게 전시되어 있다.

 아직도 <들으라, 바다의 음성을>(1995), <도조 히데키>(1998) 등 일본의 많은 영화들은 겉으로 평화를 위한 영화라면서 실상은 태평양전쟁을 찬양하고 있다. 또한 태평양전쟁은 백인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인종전쟁이었고, 정신대는 원래 창녀였던 여자들을 데려다 먹여살려주었던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담은 고바요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의 만화 <전쟁론>은 100만부가 팔리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동경대의 강상중 교수 같은 이가 일본의 자유주의자들과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3) 성개방 문화
 한국의 고대가요 중에 <헌화가>(8세기), <쌍화점>(1275-1308년경) 등을 보면 당시 한국인의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이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국문학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처음 보이는 것은 15세기 쯤이다. 판소리가 나오는 18세기에 이르면서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는 육체성을 갖게 되었다. <춘향전>이나 <변강쇠타령>에 보면 대단히 노골적인 성묘사가 나타난다. 그림을 보더라도 춘화(春畵)가 있기는 있었으나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린 춘화 중에서 유행된 그림은 직접적인 성 묘사 장면보다는, 두 모녀가 개와 개가 접(接)하는 것을 엿보는 그림 같은 것이 유행되고 모작(模作)이 많았다. 역시 한국인의 성 인식은 직접적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이고 숨기는 방식이다.

 비교컨데, 일본인의 성의식은 보다 직접적이고 드러내기이다. 일본인의 전통적인 그림인 우키요에(浮き世繪)는, 성 행위하는 모델을 보며 그린 세묘화이다. 일본에 사절단으로 갔던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은 일본인의 성의식에 충격을 받아 <해유록(海遊錄)>에 '욕조에 들어가 여자애가 등을 밀어주고, 내 배 위에 타기도 하며'(<나이와 여자 아이(浪華女兒曲)>에서) 등의 표현이 담긴 30수의 야한 일본탐방기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에도 일본의 성의식은 조선 사신이 볼 때 충격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개방적인 일본인의 성의식에 대해 학자들은 섬나라 일본에 대해 풍토론(風土論)으로 논의를 결말 짓기도 한다. 성 개방 문화는 예술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 우키요에 같은 전통 미술과 사진집, 그리고 잡지 화보, 스포츠 신문, 문학, 특히 소설 작품과 그것을 영상화한 영화 등 거의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닉카츠(日活)에서 1940년대에 만든 로만 포르노 시리즈는 성을 매개로 해서, 만주사변과 성·미망인과 성·아파트단지·하숙집·별장지대에서 일어나는 성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는 일칭 '아베 사다' 시리즈는 <실록 아베사다>(1975)로부터 시작하여, <감각의 제국>(大島渚 감독, 1977, 원제 : 愛のコリダ), <사다>(1998)로 이르면서, 일본인들의 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에도 TV의 심야방송(길가메쉬), 포르노 만화, 고갸르, 헬쓰, 사진집 등이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개방된 성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가 자신이 경험한 성생활을 과감히 표현하는 소설 작품이 적지 않다.

일본의 문학작품을 일별하면, 한국 문학에 비해 서사의 맥이 약한 대신 작가들의 사생활을 지리할 정도로 세밀하게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사생활, 그 치부를 적극적으로 보고하는 전통을 사소설(私小說)이라 하는데, 이것은 서구의 자연주의 작품이나 자전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일본문학사에서 독특하게 보이는 전통이다. 잔혹적, 변태적, 예술지상주의라는 명분 아래 작품화하는 전통이 그것이다. 한국의 문학작품 그 기본맥락이 계몽주의적이고 윤리적이라면, 일본의 작품은 사소설적 특성과 함께 성, 폭력, 죽음 등 금기적 윤리 영역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소설들이 아직도 잘 팔리고 있다.

 일본의 독자들은 이런 종류의 '작가적 성실성'에 연민적인 애정과 존경의 염을 보낸다. 작가들은 권위에 도전하고, 윤리에 도전하는 '반도덕적 주제'의 욕망 탐구를 위해 스스로 상당한 희생을 치르게 된다. 윤리적 파멸이나 자살로 생을 마친, 다니자키 준이치로, 나가이 가후,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등 적지 않은 수의 일본 작가들의 생애가 그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본인들은 그 죽음을 또하나의 미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 일본인 특유의 죽음의 미학이 있다.

 4) 죽음의 미학
 죽음의 미학을 확고히 다져놓은 것은 사무라이의 문화다. 사무라이의 죽음은 영웅의 죽음이다. 일본 무사도의 경전으로 알려져 있는 <하카게>(葉隱 : 나뭇잎 그늘)에는, 무사의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고 의심받는 이야기가 있다. 무사와 떡장수는 '먹었다, 안 먹었다' 하며 서로 입씨름을 한다. 무사의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며, 무사는 아들의 배를 갈라 떡장수에게 보여 결백함을 밝히고, 떡장수를 죽인 다음, 자기도 할복한다.

<하카게>의 저자는 이것을 무사다운 행위라고 극찬한다. 사무라이는 배를 주릴망정 명예에 죽고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무사도, 그중에서도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무사도의 극치를 일러 하가쿠레(葉隱れ) 정신, 곧 '나뭇잎 그늘에 숨는 정신'이라고 극적으로 미화했다. 우리는 '생사관(生死觀)'이라 하지만 일본인은 '시세이칸(死生觀)'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것보다 정확한 시기에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死)이 살림(生)보다 앞에 있다.

 사무라이의 문화, 곧 칼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변용되어 스며 있다. 잇쇼켄메이(一生縣命)이라는 말은 한국말로 의역하면 '열심히'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목숨을 건다'는 뜻이다. 목숨을 걸 만큼 진지하게 일한다는 뜻이다. 잇쇼겐메이의 원래 한자는 '一莊縣命'이었다고 한다. 이때의 '쇼'(莊)는 사무라이(武士)의 영주가 거처하던 장원(莊園)을 가리킨다. 자신의 영지를 지키려 목숨을 걸거나, 혹은 사무라이가 그 영지의 '오야붕'(親分)을 위해 생명을 바치던 언행일치의 잇쇼겐메이였던 것이다. 그것이 어물쩍 '一所懸命'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쇼'(所)는 현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 자기가 처하고 있는 장소를 말한다. 자기가 처해 있는 장소가 회사이든 학교이든 가정이든 공장이든,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일본인들의 근면에는 '목숨을 건' 죽음의 역사가 배경에 놓여 있다.

 20세기 집단자살의 극치는 연료뿐인 비행기를 몰고 깨끗이 산화해버린 태평양 전쟁 당시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가 시범을 보였다. 물론 한국의 고대사에도 집단 자살을 택한 경우가 있다. 백제 낙화암의 집단 투신, 고려시대 삼별초군의 최후 등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고대사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이 보여 준 '전원옥쇄'(全員玉碎)와 같은 것은 근세 한국사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헤어짐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헤어질 때의 인사말이 '사요나라'(在樣なら)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사요' 즉 '그렇다면'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대로 이 사실을 솔직히 받아들여 헤어집시다라는 뜻이다. 관을 앞에 두고 미친 듯이 몸을 틀며 통곡하는 한국인의 '한'과는 너무도 다르다. 차가운 침묵을 가지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심리에는 '그렇다면'의 철학, 곧 체념의 철학이 깔려 있다. 서양에서 죽음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인의 경우는 최소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본인은 사망을 '나쿠나루모노'(失亡 : 없어지는 것)라고 한다. 그야말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시신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도 없기에 불로 태워서 뿌린다. 그것으로 끝이다.

 천재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적어도 내 경우에는(자살의 동기가) 다만 어렴풋한 불안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1927년 7월 24일 서른 다섯의 나이로 자살했다. 1970년에는 미시마 유끼오가 "일본이여 깨어라"는 말을 남기고 자위대 주둔지에서 할복 자살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가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바뀌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장편소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가스를 틀어 자살했다. 죽은 작가들 이름을 나열하면 끝이 없다. 일본의 후생성이 발표하는 {인구동태통계}의 의하면 1993년 한 해 동안 2만4백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계산해보면, 하루에 대략 55명 정도가 소리도 없이 일본 어딘가에서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옛날 무사들이 죽는 것은 셋부쿠(切腹)라고 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자살하거나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자살하는 것을 신주(心中)라고 한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정사(情死)라 하겠다.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옥쇄(玉碎)라 한다. 집단가해라고 하는 이지메(いじめ)를 당해서 죽는 죽음도 많다. 왜 자살이 흔할까? 지금까지 말했듯이 사무라이 문화는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관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종교적인 요인, 즉 일신교(一神敎)가 아닌 신도(神道)에서는 생명 신성시의 관념이 없는 탓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인이 일본 영화·만화·컴퓨터 게임·문학 작품 등을 보고 '나쁘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성문제나 폭력 등도 있지만, 너무도 쉽게 나오는 죽음의 장면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문화물의 클라이막스에는 '아름다운 죽음'이 최대로 미화된다. 그리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퇴마·귀신·혼령 시리즈로 상품화된다. 이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서 너무도 당연한 말을 주장하고 있는 1998년 일본 아니마 최대의 걸작물인 <원령공주>(モモノケヒメ)이다. 현재 일본 인구의 10% 가량이 보았다고 추산되는 이 작품의 주장은 단순하다. -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1998년 4월에는 비주얼 락 밴드의 선두주자인 엑스(X)재팬의 리더 하이드(hide)가 자살했다. 언더 그라운드 락의 세계를 펼쳐 보여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환상을 보여주었던 하이드가 죽었을 때 장의식이 열리던 거리에 5만 명이 모여 거리가 일대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방송은 도쿄 거리가 막혔고 되도록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방송했다. 문제는 이러한 죽음의 행렬이 삶의 목적과 수단이 바뀌었을 때 오는 혼돈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특히 1998년 3월 재일 교포의 기대주였던 국회위원 아라이 쇼케이 의원이 정치가의 뒷돈 문제로 조사를 받는 중에 자살했다. 그는 문제가 더욱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자살을 택했다. 그 자살이 해결의 한 방법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로 인해 조사는 멈추어버렸고 그보다 더 큰 문제점들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일본이란 나라는 이런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 큰 거짓말은 계속 보존된다.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으로, 큰 것을 위해서는 죽어서도 된다는 생각이 이들이 만든 문화물 곳곳에 스며 있다. 이로 인해 일본이란 나라의 큰 거짓말은 이런 미화된 죽음으로 감추어져 유지되어 오고 있다는 것을 몇몇 일본 지성인은 솔직히 인정하기도 한다.

 5) 숨겨진 천황주의
 이 대목은 일본 문화작품에서 교묘히 숨겨져 있는 대목이다. 소설가 오에 겐자브로 같은 지식인들이 천황주의를 거부하고는 있지만, 일본 문화 속에 여러 상징으로 천황주의는 숨겨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이 쓰고 있는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의 공통성 중에 한 가지는 천황주의를 긍정한 인물들로 선정되었다는 것 같은 예다.

 일본이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천황을 거부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힘들다. 일본의 정신체계는 천황주의를 통해 교묘히 정리되어 있다. 가령, 사회의 계급질서도 천황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의 언어는 천황에 대한 존경어를 기준으로 해서 체계화되어 있다. 에도시대 때부터 굳어진 체계, 즉 '천황 - 영주 - 사무라이 - 상인 . 농민 - 부락민(백정)'으로 이어지는 체계는 아직 일본인의 잠재심리와 언어체계 속에 녹아 있으며, 가장 천민으로 차별받고 있는 자리에, 부락민 . 아이누족 . 재일동포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나 작품은 국가권위에 대한 일종의 도전을 하는 셈이다.

 일본인의 정신이나 문화 속에 천황이 차지하는 위치는, 마치 도쿄라는 도시가 천황궁을 중심으로 해서 방사선으로 뻗어 있는 미로의 도시인 것과 비슷하다. 망상형 도시의 중앙에는 천황궁이 있는데 이것은 정말 텅빈 공간이며 '완벽한 환상의 공간'인 것이다. 도쿄는 이 텅빈 환상의 공간을 빙 둘러 싸며 구성되어 있다. 느릿느릿 주행하는 택시들도 중앙, 원형의 공간을 피해 빠져나가듯이, 일본의 예술가들은 숨겨진 혹은 거추장스러운 천황주의를 비켜가기에 바쁘다.

 일본 대중문화 시스템의 특징
 이제 일본의 전통 문화들이 어떻게 현대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 현대적 특징을 살펴보려면, 그것들을 생산하고 있는 문화 시스템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항목이 있다.

첫째, 일본의 대중문화는 하위문화의 토대에서 발달되고 있다. 하위문화(subculture)는 '주류문화로부터 주변부화 된 것, 지배적인 가치와 윤리로부터 배격당한 것, 동시대의 지배적인 문화적 형태와는 다른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로 폭넓게 이해된다. 하위문하는 '지배문화/피지배문화, 자본주의문화/사회주의문화, 부르조아 문화/프롤레타리아 문화, 전통문화/대중문화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에 갇혀 그 동안 문화적 모순들에 저항하는 방식들을 몇 가지 규범에 따라 한정했던 것을 해체시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서구의 하위문화는 청년문화의 일탈과 비행에 대한 상관관계들을 중요한 논의대상으로 해 왔다. 이런 하위문화는 세대의식과 계급의식을 동시에 드러낸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하위문화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을 거부한다. 언더그라운드(Under Ground)라는 말은 범죄적이며 어두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들은 인디즈(Indies)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주류사회의 논리와 규모에 맞서 밝고 역동적이면서 생산적인 문화를 만들려 한다.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한가지에 몰두하며 창작에 골몰하는 '오다쿠'(オカク,オ宅)라는 계열이 있다. 1982년부터 쓰인 이 단어는 언론계에서 잘못 해석하여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져 왔으나,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는 이를 긍정적인 문화운동으로 보아 "'영상의 세기'라고 말해지는 20세기에 태어난 새로운 유형의 인종으로, 영상에 대한 감수성을 극단으로 진화시킨 '눈'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오다쿠"라고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오다쿠의 탄생은 텔레비전 시대가 아니라, 비디오 시대부터라고 한다. 이들은 만화에만 몰두하거나, 비디오 혹은 컴퓨터 게임 등 개성적으로 한가지에만 골몰한다. 비평하는 마니아 수준을 넘어 자기 것을 창조해낸다. 현재 일본의 수준 높은 컴퓨터 게임, 아니마(애니메이션), 영화 등은 오다쿠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이들이 바로 현재 일본의 대중문화를 일구고 있다. 기존 학교를 거부하고 미용학원을 다니며 락 그룹을 만들고, 미용학원에서 익힌 화장술로 환상적인 화장을 하고 비주얼 락(Visual-Rock)을 만든 엑스 재팬(X-JAPAN)도 하위문화의 산물이며, 술집 웨이트리스인 혼혈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惠)가 일본 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도 중학교를 중퇴하고 오키나와 <아트 스쿨>을 찾아가 가능했던 것이다.

 둘째, 풍부한 다양성을 말할 수 있겠다. 대중음악만 해도 포크 록, 헤비 메탈, 재팬 락, 비주얼 락, 비트 계열이 공존하고 있다. 영화만 해도, 호모 드라마, 야쿠자 영화 시리즈, 사무라이 영화, 태평양 전쟁 영화 시리즈, 닉카츠 로망 포르노, 재패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갖고 있다. 천박한 코메디언 비토 타케시 혹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키타노 타케시로 불리는 '다케시'는 일본 문화의 다양성과 다층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일본 문화의 미래를 예시한다.

 셋째, 일본 문화의 무서운 힘은 크리에이터를 키워내는 힘이다. 현재 가수를 관리하는 프로덕션은 대부분 월급제를 택하고 있다. 히트곡을 못내도 가능성이 보이면 몇 년이고 월급을 지급하며 키운다. 최근 활기를 띄고 있는 일본 영화업계의 비밀도 간단하다. 재능이 있다면 상대방의 전력을 묻지 않고 감독을 맡기는 탁월함 때문이다. <Shall We Dance>(1996)로 미국을 강타한 스오 감독은 원래 포르노 영화 감독 출신이다. 일본 문화계는 창작하는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대중문화의 업계의 성장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다.

 일본문화와의 교류 : 결론
 지금까지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이 어떻게 현대적인 작품에 드러나고 있는가를 살폈고, 일본의 대중문화를 드러내고 있는 문화 시스템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문화교류를 하면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몇 가지 짚어보려 한다.

첫째, 표절을 막을 수 있다. 막음으로 해서 베끼기 만연과 저급 문화의 지하 범람이 창궐했다. 따라서, 일본문화를 단계적으로 여는 동시에, 수용자들의 비평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 누릴 것은 누리고 비평할 것은 비평하면서, 우리 문화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기술적인 교류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철저한 편집주의 정신이 보편화되어 도서관 문화나 박물관 그리고 출판문화는 세계적 수준이다. 이미 우리는 하고자 할 때,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화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 세계적인 예술가가 나온 바 있다. 일본 문화의 기술적 요인을 적극적으로 연구하여 우리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셋째, 상상력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일본의 텔레비전을 보면 다양한 것들이 보여지고 있다. 특히 구메히로시(久米宏)의 <뉴스 스테이션>(TV 아사히)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반도의 역사가 가진 5천년의 풍부한 문화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일도 중요하다.

 넷째, '시스템 미학'에 대한 대결을 통해 한국의 문화계가 구조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전 없는 영세업자는 정리될 것이고, 문화산업에 투자하는 대자본과 의욕과 실력을 갖춘 독립프로덕션이 손을 잡는 구조가 될 것이다. 영화 <쉬리>는 이러한 공조 시스템으로 생산된 수작이다.

 다섯째, 경제적으로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한국보다 20배 정도의 거대 시장을 갖고 있다. 음악이건 소설이건 영화건, 그것을 만드는 한 예술가가 4천만을 의식하는 것을 넘어 1억 3천을 대상으로 하고 작품화할 때, 그 예술품의 질적 평가나 시장성은 그만치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 컴퓨터, 영화, 가수(박진영), 한글 교육은 가능성이 크다. 가스펠 송은 이미 일본에 많이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여섯째, 작은 것은 배울 것이 많아도 큰 것은 검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기술 같은 소프트웨어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나, 역사관·종교관·국가관 ·애정관 같은 하드웨어는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자유주의 사관의 역사관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진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 선진적인 것은 받아들이되 일본적인 것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이 문화 수입국에서 문화 수출국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사물놀이만 해도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문화수출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첫 눈뜸은, 우리의 협소한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다. 문화운동의 목표는 비판 자체가 아니라, 창조적 생산이며, 그 생산에 이어지는 일상화 즉 생활화이다. 일본 문화를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대하면서 우리 것을 생산해낼 때 우리는 누릴 것은 누리는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5월호)

교회와신앙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오정수 장로 재정비리 해명, 앞뒤
<미주 세이연>, 과연 정통 삼위
신천지의 엉뚱한 시위 “한기총 해
JTBC, 서울교회 오 장로 재정
교회분쟁 유발 첫째 원인은 목회자
“이단상담 사역은 우리 모두의 사
“신천지 극단적 변화에 대한 준비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