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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이 아닌데…
영화로 본 ‘복수 전성시대’
2010년 10월 15일 (금) 08:12:51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바야흐로 ‘복수의 시대’다. 현실에서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이야기다. 최근 브라운관을 점령한 드라마는 ‘복수’라는 테마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며, 극장가의 흥행을 선도하는 영화 또한 복수극이 대부분이다.

우선 드라마. 드라마에서 복수는 이제 필수조건이 된 듯하다. 남편의 바람,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의 이른바 ‘막장드라마’ 필수요소들에 ‘복수’가 더해진 모양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대로 복수극이 시대가 도래 했다. 복수, 한가지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막장의 향기를 풍긴다. 종영된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는 여주인공 아리영(장서희)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철저히 복수했고, <아내의 유혹>에서도 같은 배우가 연기한 구은재(장서희)는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 점하나 찍어서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유혹, 복수한다는 실로 황당한 설정으로 막장드라마의 정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일일드라마 최고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황금물고기> 역시 복수를 위한 드라마다. 자신의 생모를 죽인 양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애인을 버리고 결혼한 이태영(이태곤). 이태영에게 버림받은 옛 애인은 태영의 장인을 유혹하여 결혼한 후 사위된 태영을 몰락시키면서 복수하고, 그 과정을 본 태영의 아내가 자신의 새어머니의 의도된 결혼을 폭로하면서 다시 복수한다는, 실로 복수만 넘쳐나는 줄거리다.

영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잔인한 묘사로 논란이 된 두 한국영화 모두 복수이야기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수현(이병헌)이 자신의 약혼녀를 죽인 살인마 장경철(최민식)에게 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면서 복수한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잔혹한 장면의 묘사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앞서 개봉한 <아저씨>는 주인공 태식(원빈)이 옆집에 사는 어린 소녀를 납치한 악당들에게 옆집 아저씨로서 복수를 감행한다는 줄거리로, 주인공의 액션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잔인한 묘사 역시 충격적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최민식, 이병헌이라는 최고의 배우들이 열연했지만 지나친 시각적 충격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전국관객 600만 명을 동원하고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논란에서 벗어났다.

   
▲ 영화 <아저씨>
두 영화 모두 복수를 모티브로 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왔지만, 관객들의 평가가 달라진 이유는 영화가 보여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의 행위 자체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며 감독은 복수의 실체를 드러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저씨>에서의 복수는 도구일 뿐,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부분은 멋진 외모를 가진 배우가 펼치는 호쾌한 액션이었다. <아저씨>에 등장하는 총칼을 휘두르는 아저씨를 보면서 관객들은 잔인한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영웅을 보게 된 것이다.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나 <본>시리즈의 제이슨 본을 보는 느낌과 흡사하다.

<아저씨>를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멋진 아저씨의 모습에는 감탄하면서 왜 옆집 소녀를 위해 자신을 목숨을 버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영화관을 나설 때까지 해답을 얻지 못한다. 관객들은 <아저씨>를 보면서 원빈의 행동에 동화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타자의 입장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관람하게 된다. <아저씨>와 비교되는 외국영화 <테이큰>(Taken, 2008)의 경우 자신의 딸이 납치된 상황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주인공의 분노에 좀 더 쉽게 동화된다. 또 다른 영화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2004)의 경우는 주인공이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를 다시 되찾아준 소녀가 살해됐기에 목숨을 걸고 복수하려고 한다. 하지만 <테이큰>은 딸을 찾는 과정이기에 면밀히 보면 복수라고 말할 수 없다.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맨 온 파이어>의 경우 소녀가 죽은 것으로 알고 복수를 감행하던 중 살아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줄거리이기에 비슷한 세 영화 중 가장 복수 영화에 가깝다고 하겠다.

<악마를 보았다>나 <아저씨> 이전에 한국영화에는 복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가 여럿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대표적인데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 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다. <복수는 나의 것>은 착한 유괴(?)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주인공 동진(송강호)의 딸을 죽인 유괴범 커플에 대한 동진의 잔혹한 복수극이며, <올드 보이>는 15년간 자신을 감금한 자(유지태)에 대한 복수극인 동시에 어린 시절 자신의 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친구(최민식)에 대한 서로간의 이중 복수극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13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금자(이영애)가 자신을 감옥에 가게 만든 백 사장(최민식)에 대한 치밀한 복수극이다.

   
▲ 영화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예외이지만, 대부분의 남성이 복수를 행하는 영화는 과감한 액션영화의 형태를 취할 경우가 많다. 악당에 대한 통쾌한 복수의 과정에서 행해지는 잔혹한 행동은 상대적으로 덜 잔인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복수의 칼날을 들었을 때는 복수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내에서도 여성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약자가 강자에게 행하는 복수는, 잔인할수록 더 통쾌해진다.

여성의 복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옛 애인이 속한 갱단에게 남편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이 무차별 살해당하고, 심지어 자신까지 죽게 된(?) 여자가, 다시 살아나 자신을 죽인 옛 애인 ‘빌’을 찾아 복수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킬빌>(Kill Bill: Vol. 1·Vol. 2, 2003·2004)이다. <킬빌>은 주인공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당시 자신을 살해할 때 함께했던 조직원들에게 한명씩 무자비하게 복수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킬빌>은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으로 어느 정도 과장과 비약 등 만화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어, 그 복수의 잔인함이 리얼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핑계 삼아 좀 더 과감하고 통쾌한 복수극을 펼치고 있다.

   
▲ 영화 <킬빌>
여성의 복수극을 다룬 우리나라 영화로는 <친절한 금자씨>가 대표적이다. 앞서 말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주인공 금자(이영애)는 <킬빌>의 브라이드 같이 무예나 출중한 살인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절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략에 의한 복수, 그만큼 <킬빌>보다는 현실에 좀 더 가깝다. 좀 더 현실적이어서 후반부에는 복수라는 행위가 가지는 한계까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복수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사회적 부조리에 원인을 두기도 한다. 내가 피해를 받게 되면 국가가 대신 범인을 잡아주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어야 하는데, 그 해결에 믿음이 가지 않아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복수영화에는 무기력한 경찰과 부패한 국가기관이 주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요인보다는 ‘복수’라는 테마 자체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가장 좋은 소재이기에 예로부터 사랑받아왔었다. 복수를 실천하면서 행하는 잔혹한 행위 이전에, 이미 영화 전반부에 나쁜 이들의 행동을 보여주면서 ‘죽어도 마땅한 이’로 낙인찍어 놓는다. 따라서 잔인한 행동은 관객에게 정화된 채로 전달되기에 좀 더 영화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극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선량한 이들이고, 가해자는 잔인무도하게 그리는 이유도 다름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살인행위는 전쟁영화를 제외하고서는 복수극만이 관객으로 하여금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 쾌감과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복수라는 소재를 끌어오지만 많은 수의 영화가 복수의 끝이 행복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금자는 마지막 복수가 이뤄지는 순간 그동안 냉정했던 모습을 잃고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만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은 딸을 죽인 이들을 잔인하게 죽이려는 순간, “너 착한 놈인 것 안다”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이 이미 복수 자체에 사로잡혀 있는 피폐해진 인간임을 인정한다. <올드 보이>에서는 오랜 시간 복수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며,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살인자보다 더 악랄해진 무서운 악마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주인공 수현을 볼 수 있다.

닐 조던 감독의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 2007)은 여성의 복수와 복수의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은 불량배들에 의해 약혼자가 죽고 자신도 크게 다치게 되자 개인적인 복수를 결심한다. 어렵사리 총을 구하게 되고 그 총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몇몇 악한 이들을 만나게 되고, 에리카는 쉽게 총을 사용한다. 점점 많은 이들에게 ‘사회정의구현’과 ‘약자보호’라는 명분으로 살인의 행위를 하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녀의 행동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자경단’으로까지 불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시민들의 반응이다. 어떤 시민은 “법을 어기고 있더라도 보는 시민들은 희열을 느낀다”며 “복수는 즐거운 것이다. 전쟁이나 사형처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복수영화를 보는 이들은 즐겁다”는 의미와 같다. 복수영화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영화 <브레이브 원>
<브레이브 원>은 후반부로 갈수록 살인마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못견뎌하는 에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점점 더 과격해지는 그녀의 복수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복수의 실체를 드러낸다. 영화 속 에리카는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독백으로 되뇌이면서 복수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함정을 강조한다. “더 이상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이 이상한 사람이 현재의 나 자신이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은 영화적 소재로써의 가장 매력적인 ‘복수’를 애용할 것이고, 관객들은 답답한 현실에 대한 돌파구로써, 자신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통해 통쾌한 복수를 행하며 대리만족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차치하고서라도 폭력을 통한 복수를 행하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잘 지켜온 올바른 가치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또 다른 범법자를 발견할 뿐이다. 복수를 다룬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통쾌했다면, 복수의 결말이 결코 행복이 될 수는 없다는 무가치함을 많은 영화들이 함께 경고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복수, 그 주체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의 영역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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