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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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단, 과거 이단
2010년 07월 06일 (화) 15:53:5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이단 문제를 취재 연구하기 시작한 약 20년 전(정확하게는 19년 전이다)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소외 요즘 이단들과 과거 이단들의 차이점들이다. 20년 전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선명하게 비교가 된다.

먼저 요즘 한국교회 주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단을 꼽으라고 하면 신천지, 구원파, 안증회(하나님의교회세계선교협회, 안상홍증인회) 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20년 전에는 통일교, JMS(정명석), 영생교, 할렐루야기도원 등을 들 수 있다. 더욱 이전으로 넘어가면 백백교, 박태선, 동방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물론 시기적으로 ‘요즘’과 ‘과거’ 또한 그 이전의 ‘대과거’를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단체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이단과 과거 이단 사이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
먼저는 성경을 대하는 태도다. 요즘 이단들은 과거 이단들에 비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한다. 성경을 많이 사용한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자신들의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많이 인용한다. 정통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성경적(?)인 단체임을 알리려는 모양이다. 무료로 성경공부를 해 준다며 성도들을 유혹한다. 요한계시록 강연회 또한 성경강연회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서 수시로 집회가 열린다.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성경을 펼친다. ‘기성교회는 교리로 말하지만, 우리는 성경으로 말한다’는 이상한 논리도 만들어 내며 성도들을 설득하고 있다. 심지어 ‘안상홍이 하나님이다’거나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해괴한 주장도 성경으로 증명해 내려고 덤벼든다.

결과는 대체로 성공(?)이다. 요즘 이단들의 세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는 기존 교회 성도들이 ‘성경공부’에 목말라해 왔음을 반증한다. 한국교회가 120년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에 5만교회 1천만 성도(주장하는 수치에는 다소 차이가 있음)로 급성장해 오는 동안 무엇인가 중요한 나사가 빠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새신자가 교회에 올 경우 한국교회는 ‘등록’을 중요하게 여긴다. 올무에 걸려들게 하는 듯한 부정적인 의미가 깊다. 4-5주 정도의 새신자 교육이 끝나면 곧바로 구역으로 편성되어 구역장이나 전도사에 의해 ‘관리’를 받는다. 이 때 관리자의 최대 목적은 교인이탈방지가 되어버린다. 교인이 줄어들 경우 관리자는 윗분(?)으로부터 꾸중을 듣는다. 심하게는 사례비에도 영향이 미친다.

어찌됐건 새롭게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성도들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듯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신앙생활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만든다. 그것을 통해 힘과 용기 그리고 위로를 얻게 하신다. 예배 시간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웃고 울기도 하고 또 구역 모임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마음이 빈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진다. 원인은 간단하다. 성경을 실질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모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교는 각종 이야기들로 가득 차 버렸다. 구역모임은 이미 친목 모임으로 전락된지 오래다. 참 만족과 기쁨을 주는 성경 이야기를 어디서든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성도들은 좀더 깊이 있는 성경이야기로 눈물을 흘리고 싶어한다. 무릎을 치듯 놀라움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이 섬기는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린다. 외부 단체에서 행하는 각종 세미나 모임에 찾아간다. 자동차도 있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으면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 이단들은 그러한 성도들을 눈 여겨 보아왔다.

위 이야기가 한국교회 전체를 말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일부분일 뿐이다. 이단 연구를 하는 동안 이단에 빠진 이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대체로 위와 같은 과정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이 많았다. 교회의 규모가 크건 작건 그것은 그다지 영향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큰교회 성도들이 더 미혹되기 쉬울 지 모른다.

   
▲ 신천지 이만희 교주
과거 이단들은 교주 신격화 개념이 보다 강하다. 물론 요즘 일부 이단들도 신격화 놀음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치병, 즉 병을 치료해 준다는 주장이 요즘 이단들보다 훨씬 많았다. 과거 경제적 궁핍한 시대를 반영해 주기도 한다. 치병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성경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한 교주 신격화를 언급하는 것이다.

각종 안수가 대거 유행했다. 교주의 손에서 성령의 불이 나가기 때문에 안수 한 번만 받으면 모든 질병이 낫는다는 식의 안수가 많았다. 성령안수, 불안찰, 귀신 쫓는 안수 등 다양했다. 교주의 사진을 몸에 품고 다니기만 하면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가 된다고 하는 등의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어느 특정한 지역이 ‘에덴 동산’이라며 논 팔고 집 팔고 자식들 학교 포기하고 모두 그곳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예수, 교회, 예배, 성경, 찬송 등의 기독교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오직 신(神)처럼 여겨지는 교주의 말만 믿을 뿐이었다. 참으로 우습고 한심해 보이는 이러한 일들이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니었다. 불과 20-30년의 우리네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성도들의 지적 수준이 요즘 이단과 과거 이단을 구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요즘 누군가가 “내가 재림예수다. 나를 따르라” 또는 “나에게는 계시 받은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어떤 반응이 일까?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일부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막말을 하게 될 것이다. 신앙인이건 비신앙이건 말이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합시다”라고 외치면 태도가 달라지는 게 요즘의 신앙풍속도다.

   
▲ 자칭 재림예수 구인회의 묘
둘째는 이단들의 반응이다. 20년 전만 해도 이단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사무실은 이단 신자들의 ‘샌드백’과도 같았다. 자신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이단 연구 사무실에 찾아와서 물리적으로 실력행사를 곧잘 했다. 신도들이 여러 명 찾아와서 업무를 방해하거나 심지어 한 밤중 몰래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다. 이단단체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공공 방송국을 수 천명의 신도들이 찾아가 물리적으로 대처하는 대범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신도들 중에는 중한 환자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환자들보다 자신들의 목적을 우선시했었다. 이러한 이단들의 물리적 행동은 한 이단연구가의 죽음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요즘 이단들은 대체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설픈 물리적 행동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손해인 것을 잘 안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의 영향이 크다. 또한 증거를 위한 양질의 각종 촬영 녹음 장비들도 한 몫을 한다.

대신 법정 송사 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요즘 이단들의 특징이다. 이단 연구와 보도에 대해서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먼저 소(訴)를 제기하려 한다. 무조건 법정 싸움을 신청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일부 이단 연구가는 평균 3-4건의 송사에 항상 시달리고 있기도 한다.

대부분의 송사 건이 이단 연구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사실을 적시하여 어느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면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 310조)는 법의 기준에 따라 연구가들이 철저하게 준비해 온 결과다. 또한 이단문제로 인한 대법원의 판결이 이단 연구가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고 있다. 종교적 목적을 위한 언론 출판 행위는 고도의 보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종교적 목적을 위한 언론출판의 경우에는 그 밖의 일반적인 언론출판에 비하여 보다 고도의 보장을 받게 되며 다른 종교나 종교집단을 비판할 권리는 최대한 보장받아야 할 것’(대법원 1996. 9. 6. 선고 96다19246, 19253 판결 참조)].

   
▲ 영생교 조희성 교주(사망)
이단 구분에 대한 우리 성도들의 반응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사용 여부’가 이단 구분의 큰 축이었다. 또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요즘 이단을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예배 중에 사용하면서도 이단 행위를 하는 곳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크다, 선교를 많이 한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 목사에게 은사가 많다’는 등의 기준들이 성도들을 적지 않게 혼동되게 한다. 교회가 크고 선교를 이렇게 많이 하는데 이단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딱 요즘 이단들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렇다. 교회가 크고 선한 일도 많이 하고 또 선교를 많이 해도 이단이 될 수 있다.

이제 이단 구분과 대처 방안에 대해 언급해보자. 요즘 이단이든 과거 이단이든, 아니 미래 이단이라 할지라도 이단 구분의 핵심은 ‘성경 해석’이다. 단순히 성경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약 5백년 전, 이 땅에 교회가 심각하게 부패되었을 때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등을 기치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믿음의 선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성경을 성령에 의해서 성경 스스로가 해석하도록 하는 게 그들이 발견한 위대한 진리다.

예수 이름 위치에 교주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든지, 구원의 길이 예수 외에 다른 곳에도 있다고 하든지, 심지어 6천년 동안 감추어졌던 성경의 비밀이 어느 특정인을 통해서 이제야 풀리게 되었다는 식의 접근이 이제 썩은 시궁창에서 더 이상 올라오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단 대처 방안에 대해 ‘사랑’을 언급하면 군내나는 말일까? 그렇지만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교회가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교회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이단 대처에도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교주 신격화 등 이단 교리가 훌륭해서 이단 단체에 다닌다고 말하는 이들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대신 기성교회에서 상처 받은 것을 이단 단체에서 감싸주었다며 그곳에 다니겠다고 하는 이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성도가 교회로부터 관리 대상이 되면 많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되면 상처도 아물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어찌보면 이단 대처의 가장 좋은 방법은 교회가 교회답게 충실하게 존재하기만 하면 될 듯싶다. 과거든 요즘이든 미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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