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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 성경, 암송보다 실천을!
2010년 04월 27일 (화) 07:17:38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기독교적인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는 직접적으로 기독교적인 소재나 메시지를 드러내는 영화이며, 다음은 겉보기에는 전혀 기독교적 모양새가 없지만 내포하고 있는 주제가 성경이나 기독교적 가치에 부합하는 경우다. 전자로 대표되는 영화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나 <벤허> 등이며, 후자로는 <매트릭스>, <그린마일>, <나니아 연대기> 등이 속한다. 직접적으로 종교 색을 드러내면 아무래도 관객의 반응이 한정되기 때문에 대다수의 영화는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최근 개봉한 <일라이(The Book Of Eli)>는 드물게도 전자에 속하는 영화다. 영어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소재는 바로 주인공 ‘일라이’가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일라이의 책’은 전 세계에 단 하나만 남아 있는 유일한 성경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인 성경이 한권 밖에 남지 않았다는 설정을 위해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그리고 어떠한 원인에서인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지구로 맞춰져 있다.

멸망에 가까운 상태의 지구,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인육을 먹어야 할 만큼 상황이 절망적이다. 그 가운데 일라이(덴젤 워싱턴)는 홀로 오랜 여행을 하고 있다. 그의 목적지는 서쪽. 그는 서쪽 어느 곳으로 성경책을 운반하고 있다. 그리고 한권밖에 없는 성경을 노리는 카네기(게리 올드만)가 그의 뒤를 쫓는다. 그는 이미 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고, 무력을 이용해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

   
영화 <일라이>의 전체적인 느낌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더 로드>와 많이 닮아있다. 폐허가 된 지구, 몇 남지 않은 인류, 살기 위해 행하는 식인…. 설정뿐만 아니라 장면의 묘사도 흡사하다. 하지만 <더 로드>와 <일라이>는 설정과 분위기만 같을 뿐 엄연히 장르를 달리하고 있다. <일라이>는 의외로 액션 영화에 속한다. 자신을 쫓는 여러 무리들을 뛰어난 칼 놀림과 총 솜씨로 물리치며, 선한 주인공과 사악한 악당이 등장해 결투를 벌인다. <일라이>는 성경을 소재로 삼은 액션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일단은 독특한 영화다. 게다가 덴젤 워싱턴과 게리 올드만의 연기 대결은 아무런 영화적 장치가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볼 만하다. 물론 그들의 연기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잡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을 달아야 한다.

기독교 색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서인지 액션영화로서 볼거리가 풍부하지만 <일라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가는 박하다. 그리고 평의 결론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좋아하겠다”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에게 이 영화는 감동을 주고 있는가? 일단 ‘대 놓고 기독교적인’ 영화가 국내 대부분의 극장에 걸렸다는 것만으로 기독교인들은 흐뭇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라이>라는 영화 자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액션 오락이기에 큰 종교적 감동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성경을 목숨같이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매일 읽고 암송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감동받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일라이>는 소재는 기독교를 다루고 있으나 주제는 기독교적 가치에서 멀어졌다. 따라서 액션영화로서의 재미 외에 더한 것을 주지는 못한다.

   
주인공 일라이가 행하는 폭력성과 살인은 거침없다. 그가 통쾌하게 악당을 처단하는 모습은 매일 성경을 암송하는 그의 모습과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후반부 일라이가 ‘결국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결론으로 기독교적 변화를 부각시키려 하고 있으나, 그 상황이 희생보다는 굴복에 가까워 설득력이 떨어진다. 성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없이 행하는 일라이의 모습에서 그동안 역사적으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된 일들이 오버랩 된다.

성경을 암송은 잘하면서도 성경대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영화 속 일라이의 행동은 현대사회에서 점점 많아지는 ‘무늬만 크리스천’들과 많이 닮아있다. 일라이가 저지른 살인의 대상은 모두 사악한 악당들이었으니 복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라이도 예수님이 주신 중요한 한 가지 과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예수님이 명하신 명령 중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단연 “원수를 사랑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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