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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대해서 농담하지 말라
2010년 01월 22일 (금) 07:44:46 장경애 jka9075@empal.com

 
<네 믿음은 어디 있느냐> 중에서
A. W. 토저 지음/ 규장 펴냄


이 시대에 설교단에서 ‘양심’이라는 주제에 대해 설교하는 목회자는 별로 인기가 없다.
어찌하여 교인들은 더 이상 인간의 양심을 믿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실한 증인을 세우셨는데, 이 증인은 우리 각 사람을 무리로부터 뽑아내어 우리의 외로움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 각 사람은 이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해야 하는 운명을 면할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외로움이다.

성경이 양심을 그토록 강조하건만 어찌하여 교회들은 양심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는가? 성경은 양심이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 선다고 가르친다. 양심은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롬2:15) 도덕법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판단한다.

언젠가 나는 어느 교회에 강사로 초빙을 받아 양심에 대해 설교했다. 설교가 끝난 후 나이가 지긋하신 어떤 분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니 목사님이 앞으로 목회를 어떻게 해 나가실 지 걱정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볼 때 그는 인간의 양심을 믿지 않았다. 청중 가운데는 아주 유명한 복음주의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역시 내게 다가와 “나는 양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탄은 자신의 홍보 전략을 통해 인생의 진실들 중 많은 것들의 가치를 추락시키는데 성공했다. 거기에는 물론 양심도 포함된다. 이제는 배웠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양심이라는 말이 나오면, 사람들은 서로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양심이 밥 먹여 주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인생의 고상한 가치들을 추락시켜왔다. 사탄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농담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부패해졌다. 고상한 것을 농담으로 만드는 그런 장난은 악마적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진지한 것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습관에 급속히 물들고 있다. 그들은 죽음과 생명에 대해 농담한다. 그리고 양심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것이 이제는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가 양심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려면 양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변호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참으로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빛이 비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농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가슴속에 깊이 새기신 빛, 마치 하나님께서 한 영혼만을 창조하신 것처럼 그 영혼을 격리시켜 천국과 지옥 사이에 걸어놓으신 빛, 이런 빛은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치에 대해 농담하고 싶으면 농담하라. 어차피 정치는 우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양심에 대해서는 농담하지 말라!

나는 인류가 발견한 보편적 지혜를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물론 각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다.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이 공통으로 증거 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명백히 가르치는 것을 내가 굳이 옹호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구사전을 훑어보면, 몇 군데에서 양심이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는 개념을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양심에 대한 내용은 성경 전체를 떠받치고 있으며, 계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말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언제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양심은 이론과 관계되지 않는다. 언제나 옳고 그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또 개인이 옳은 것이나 그른 것과 관계를 맺는 것과 관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성경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는 복수로 사용되지 않고 단수로 사용된다. 그 유일한 예외는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들’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후4:2)라는 구절이다.(개역한글성경에는 “양심”이라는 단수로 번역되어 있다. 역자 주). 이 구절을 빼고 다른 곳에서는 양심이 단수로 쓰인다.

성경에서 언제나 양심은 옳고 그름의 문제와 연관된다. 따라서 양심은 개별적이고 독점적인 것이다. 양심은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양심은 당사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배제한다. 양심은 당사자가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양심은 마치 다른 사람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당사자 한 사람만을 상대한다.

성경에서 양심이라는 말은 도덕적 통찰과 관계된다. 양심은 충분히 깨닫는 것이고, 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은밀히 의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심에는 그것의 근원이 있다. 나는 우리가 양심에 대한 심리학적 정의보다는 이 양심의 근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양심의 근원이 바로 이 세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은밀한 임재라고 믿는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은밀한 임재가 양심의 근원이 된다. 이것은 도덕적 인식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 시대에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분의 음성과 교훈을 직접 들었을 텐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당시에 수천 명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오순절 성령강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 지금 우리에게 향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양심이라는 내면의 음성이 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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