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대교 밑에서 단체사진

목회자 11명이 모였다. 특별한 여행을 위해서다. 빛과소금교회(예장 통합, 최삼경 목사)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홈커밍데이’(Home coming day)라는 행사의 일환으로 그동안 동교회를 섬겼던 목회자들을 초빙해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부부동반으로 총 22명이 참석한 이번 여행은 2박3일로 거제, 하동 등 우리나라 남해 지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참석한 목회자 중 3명은 캐나다에서 왔다. 이민목회 현장에서 고국, 고향과 같은 옛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제주도 선교를 각오하고 3년 전 파송되었던 목회자도 오랜만에 나들이 길에 나섰다. 빛과소금교회를 20년 넘게 담임하고 있는 최삼경 목사보다 이전에 시무했던 목회자도 이번 여행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곳저곳 목회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연락 가능했던 목회자들과 현재 동교회 선임 부교역자(목사)까지 다양한 모습의 목회자들이 ‘같은 교회 출신’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쉼’을 향해···
이번 여행의 목적은 ‘쉼’이다. 그것뿐이다. ‘○○세미나’와 같은 이름을 붙여 그럴듯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어떤 외적 형식도 없었다. 그냥 ‘쉼, 쉼, 쉼!’이다.

지난 11월 3일(월) 이른 아침 7시. 동승한 두 분의 장로와 한 분의 권사 그리고 운전을 맡은 집사의 헌신적인 수고와 함께 22명의 목회자 부부를 태운 버스는 힘찬 엔진소리를 울렸다. ‘자! 출발이다.’

“야호! 할렐루야!!”
이번 여행에 동행한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귀에 시끄러운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체면은 없어졌다. 소풍을 떠나는 어린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그동안 목회 현장에서 장·단기적으로 긴장하며 사역을 해왔기 때문일까? 누구하나 흥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들의 눈빛, 입가 그리고 손끝 하나에서도 그들의 속마음을 그 이상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여행 전, 기자에게 궁금한 점이 있었다. 바로 ‘목사들은 여행갈 때 버스 안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하는 점이었다. 평상시 부족했던 잠을 보충할까? 기도회 시간을 가질까? 아니면 무엇일까? 관광버스 춤을 추는 일부 일반인들의 모습까지도 상상하며 즐거운 기대를 해보았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 보겠습니다. ‘국수’와 ‘국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 모르시나 보군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하.”

출발 10여분 후, 도우미로 동승한 이시걸 장로(빛과소금교회)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야기 소나기’가 시작됐다.

▲ '이야기 소나기'를 시작한 이시걸 장로

“장로님은 그것밖에 모르시나 보군요. 그럼 밀가루와 밀가리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밀가루는 봉지에 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기 때문입니다. 그럼 봉지와 봉다리의 차이점은 아십니까? 봉지는 비닐로 만들고 봉다리는 비니루로 만듭니다. 그럼 비닐과 비니루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비닐은 가위로 자르고, 비니루는 가새로 자르죠. 가위와 가새는, 가위는 엄마가 가새는 엄니가 사용하는 물건이지요.”

웃을 사이가 없다. 곧바로 마이크는 다른 목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럼 학교와 핵교의 차이점은 아시나요?”
“아, 알지요. 학교는 다니는 곳이고, 핵교는 댕기는 곳입니다. 아기와 얼라의 차이점까지 아셔야죠.”
“그런 것도 있습니까?”
“그럼요. 아기는 누워 자고, 얼라는 뒤비 자는 것이죠.”
“아- 하하하”

‘우리(목사)는 이렇게 노는구나!’하며 다들 놀라는 듯했다. 중간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아침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거제까지 약 5시간 걸렸다. 그동안 이야기 소나기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걸어 다니는 예화사전, 그 이상이었다. 물론 여행에 관한 안내와 목회자 각자의 소개 시간도 버스에서 진행됐지만 길어야 30-40분 정도에 불과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거제 포로수용소였다. 버스에서 내린 목회자들은 곳곳에 설치된 전시물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안내 설명서를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필요에 따라 사진기의 셔터를 연속해서 눌렀다. 아마도 여행 후, 목회 현장에서 다시 사용해야 할 예화를 수집하는 듯했다.

▲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즐거운 한 때

여행코스는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교회→거제포로수용소→인근 낚시→노래방(1박)→외도→남해대교(노량해전 유적)(2박)→소설 <토지>(작가 박경리)마을→화개장터→교회 순이다.

이번 여행에 목회자들은 철저히 수동적으로 임했다. 버스에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저곳에 가자면 그렇게 하고 또 식사하자면 그렇게 응했다. 한 마디로 시계를 쳐다볼 일이 없었다. 바로 ‘쉼’을 위해서다. 수련회 등 각종 프로그램을 각 교회에서 능동적으로 진행시켜오던 것과는 180도 다르게 임한 것이다. 이를 위한 전체 프로그램 진행자(심요택 장로)와 도우미(이시걸 장로, 양성순 권사 등)들의 철저한 수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사모들을 위한 목회자의 헌신(?)

삶을 나누는 시간에 한 사모의 간증이 모든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남편 목사와 함께 캐나다에서 이민 목회를 5년 이상하고 있다는 그녀는 최근에 우울증 초기 단계까지 왔었다고 한다. 이민 목회의 어려움 때문이다.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더욱이 성도들과 이 부분에 대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가까운 동료 목회자 가정을 찾아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주 찾아가기도 힘들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인이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부모님 생각이 더욱 난다. 고향이 그립다. 한국에 훌쩍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미칠 정도였다.

그때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쉼’을 위해 초청한다는 것이다. 비행기표도 보내준단다. ‘오! 하나님’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왜 안 그렇겠는가! 캐나다 현지인 교회를 섬기고 있는 한 목사님은 전화를 받고 그 교회 캐나다인 목사에게 한국 교회에 대해 자랑을 했다고 한다. 한껏 부러워하는 현지 교회 목회자 앞에서 자부심을 세운 것이다. 다른 목회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교회 목회, 작은 교회 목회 형편 가릴 것 없이 ‘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동일했다.

방해물도 있었다. 바로 ‘전화’다. 여행 도중 목회자들의 핸드폰이 수시로 울렸다. 그때마다 목사들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네, 집사님. 그것은···”. 대화중에도 식사 중에도 목회자들은 성도들로부터 오는 전화를 최우선으로 받는다. 그럴 때마다 ‘쉼’의 정막이 깨지고 긴장 줄이 소리를 내며 다시 튕겨진다.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냐-’라는 요즘 유행가 풍의 용어가 실감난다.

“한 번 놀아보세!”
첫째 날 저녁 식사 후, 목회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재미있게 한 번 놀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삼육구(369) 게임’이 진행됐다. 중고학생들에게는 이미 고전(?) 놀이가 되었지만, 아직 게임 설명을 들어야 하는 목회자도 있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새로운 게임을 배울 때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전게임이라고 우습게 봤던 이들의 실수는 더욱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노래방 시간도 가졌다. ‘삼육구 게임’ 분위기에 탄력을 받아 더욱 흥겨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목사님들이 노래방에서도 잘 놀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도 일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방 시간은 목회자의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보였다. 노래방 분위기가 왠지 부담이 되었던지 한 목회자 부부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다. 무대에 올라선 목회자 부부 대부분도 억지로 끌려오듯 했다. 그나마 “서양에는 베토벤이 있다면 한국에는 배호가 있다(?)”며 나름대로 열창을 한 이와 목회자 사모들을 위로한다며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곡으로 무대에 선 이가 돋보였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마지막 소절에서 정말 자신의 아내를 향해 무릎 꿇는 장면에선 감동과 부러움의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흥겹지 않은 노래방 분위기

‘족구’는 역시 목회자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놀이문화다. 둘째 날 저녁 식사 후 목회자들은 비장의 각오를 하고 숙소 뒷마당에 모였다. 준비운동을 하는 몇몇 분들의 몸동작에 프로급 실력이 감지되기도 했다. 게임이 시작됐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프로선수(?)들은 모두 수비를 위해 뒤로 물러났다. 팀원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그것이 승리를 위한 팀 전술인지 구분되지는 않았다. 게임 내용은 ‘열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양보란 그 순간에는 없다. 승리뿐이다. 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날이 이미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족구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아쉬웠던지 ‘내일 아침 6시 재경기’를 약속하고 파했다.

▲ 언제나 즐거운 족구 시합

목회자 사정은 목회자가
목회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의 목회를 소개하고 자연스럽게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식이었다. 답답함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목회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감했다. ‘나도 그렇다’는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선배 목회자들의 조언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어떠한 비법(?)을 전수해 준 것도 아니다. 목회자의 기본 자세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어쩌면 대답의 전부다. 그리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것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목회자 아내, 사모들도 모임을 가졌다. ‘사모’라는 한국교회에서의 특수 신분(?)으로 인해 겪게 되는 다양한 자신의 삶을 나눈 것이다. 성도들도 모르고 심지어 남편 목사도 모르는 그들만의 아픔들 말이다. 교과서에도 없는 사모들의 삶의 문제는 역시 선배의 경험과 또 권면으로 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 소명을 위한 합심기도

다시 목회지로
2박3일의 일정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 아침이 왔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다들 서둘렀다. 양복을 일찌감치 갈아입은 이도 있었다. 저녁 때 있을 수요예배 인도를 위해서다. ‘족구 재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시간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의 모습은 처음과 달랐다. 취침 분위기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올라오는 도중 한두 분 씩 미리 자신의 목회지로 발길을 옮겼다.

5년 뒤를 다시 기약했다. ‘홈’(Home)으로 다시 모이자고 말이다. ‘약속’보다는 ‘소망’이라 표현하는 게 더 좋을 듯하다. ‘꼭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5년간 또 목회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가는 데에 힘을 받을 수 있겠다는 간절함이다.

이번 여행처럼 오늘 목회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쉼’이지 않을까? 선물이나 음식 등 그 어떤 것보다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