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디히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에 대해, 나치 정권 하에서 짧은 인생을 살다간 신학자나 윤리학자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그를 설교자요, 목회자로 이해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2년 전 서울신대에서 본회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학술대회에서도 본회퍼의 신학과 영성, 평화주의 등에 대해서는 논문 발표가 있었지만, 설교자와 목회자로서의 본회퍼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본회퍼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그의 신학이나 기타 사상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그의 설교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세계명설교대전집>에는 그가 당대(1900-1950년대)의 명설교가로 기록되어 있다. 다간(E. C. Dargan)이 지은 A History of Preaching에서도, 그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설교자들 7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본회퍼를 꼽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설교자로서의 본회퍼 연구는 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파란만장한 본회퍼의 생애
본회퍼는 1906년 2월 4일, 슐라이에르마허가 태어난 독일 브레슬라우(Breslau)에서 아버지 칼 본회퍼와 어머니 파울라 사이의 8남매 중 여섯째인 쌍둥이로 태어났다. 본회퍼 일가는, 1513년 화란에서 이주해 온 중산 계급으로서 루터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상당한 학문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프리드리히(1828-1890)는 튀빙겐의 고등법원장을 지냈다. 아버지 칼은 신경과 정신의학 교수로 재직했고, 어머니 파울라는 예나 대학의 저명한 교회사 교수였다.

본회퍼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필요를 살피도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각 개인의 개성과 소질을 인정해주는 자유로운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가정 속에서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그의 가정은 오랜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에 충실한 가정은 아니었다. 모라비안 형제단의 영향을 받아, 종교심이 강한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들을 읽어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과학적 불가지론자였으며 현실주의자였다.

본회퍼는 10대에 목사와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17살에 튀빙겐대학에 입학했고, 1924년에 베를린 대학으로 학교를 옮겼다. 1927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이 통과된 이듬해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교회에서 1년 동안 부목사로서 목회 훈련을 받았다. 그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24살에 교수자격 논문인 “행동과 존재”(Akt und Sein)를 제출하여, 같은 해 7월에 베를린 대학 신학부의 강사가 되었다.

그 후 본회퍼는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1년 간 연구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때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와 교제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평화주의자 프랑스 출신 장 라세르(Jean Lasserre)를 만나, 평화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성경적 교훈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베를린 대학으로 돌아온 본회퍼는, 1931년 가을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강의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1933년 여름에 끝을 맺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섬기던 교회와 베를린 대학이 ‘아리안 입법 조항’을 인정 내지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1933년 4월 7일에 선포된 입법 조항으로, 유대인의 피를 받은 사람이나 유대인과 결혼한 사람은 일체 국가의 공직을 가질 수 없게 한 법적 조항을 일컫는다. 실망한 본회퍼는, 독일을 떠나 1933년 10월에 영국 런던에 있는 독일교회로 가서 그곳에서 약 1년 반 동안 목회했다.

본회퍼의 구체적인 항쟁은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시작되었다.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독일 총통이 되면서 교회는 심각한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울러 교회 안에 있는 나치 당원들, 이른바 ‘독일 기독 신자들’은 권력에 부합하여 독일교회를 지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유대인 문제에 직면한 교회’라는 제목의 강의를 통해 국가의 유대인 탄압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독일 기독 신자들’에 비성경적 신학노선에 맞선 ‘베델 신앙고백서’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곧이어 ‘아리안 입법 조항’의 철회를 요구하는 목사 긴급 동맹 선언에 동참했다.

이런 항쟁 속에서, 본회퍼는 1935년에 고백교회의 부름을 받고 독일로 귀국하여 핑켄발데(Finkenwalde) 신학교에서 목회자 후보생들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형제의 집’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했다. 그러나 이 신학교와 ‘형제의 집’은 1937년 가을에 히틀러 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다. 1938년에 본회퍼는 고백교회 교육 책임자들이 모인 베를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게슈타포에 의해 베를린 체류 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 후 1939년, 본회퍼는 혼란스러운 독일을 떠나 미국 뉴욕에서 잠시 머물렀다.

짧은 미국생활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그는, 히틀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에 남은 힘을 쏟아 부었다. 그는 결국, 루트비히 베크 장군과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 수하의 방위군 소속 한스 오스터 대령 그리고 법무장관 보좌관 매형 한스폰 도나니 등과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1940년 오스터 대령으로부터 정보국 민간요원으로 위촉받아 적극적인 군대항쟁 속으로 뛰어들었고, 1941년에는 정보국이 주도한 유대인 구출계획인 ‘작전 7호’에 가담했다.

이런 저항운동 속에서도, 본회퍼는 1943년 1월에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M. von Wedemeyer)와 약혼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해 4월,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본회퍼는 테겔(Tegel)교도소에서 1944년 10월까지 약 18개월 동안을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구약 연구에 집중하면서 부지런히 성경을 통독하였고, 여러 경로를 통해 신학, 철학, 음악, 문학 및 역사 분야 등의 많은 서적들을 확보하여 섭렵했다. 또한 부모, 동료 베트게, 약혼녀 베데마이어 등과의 서신 연락을 통해 감옥의 일상생활과 그 속에서의 기독교적 묵상의 글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뿐 아니라, 함께 수감된 동료들에게 위로의 설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그 후, 본회퍼는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등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카나리스 제독 및 오스터 대령 등과 함께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본회퍼의 멘토들
본회퍼가 신학을 하던 1920년대는 자유주의 신학이 몰락하고, 새로운 변증법적 신학이 독일의 대학을 휩쓸 때였다. 그 와중에서도 베를린 대학은 자유주의신학 전통의 마지막 보루였다. 본회퍼가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시작할 때 트뢸취는 갓 세상을 떠났고, 교회사는 한스 리츠만이 가르치고 있었다. 하르낙은 은퇴하여 세미나를 주관하고 있었다. 이런 신학적 환경 속에서, 그에게 구체적인 영향을 준 인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본회퍼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루터교 정통주의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루터교의 신학 전통 위에서 가르침과 강조점들을 그의 시대에 생생하게 해석하려고 했다. 본회퍼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옳게 되는 것의 재해석, <윤리>에서 두 왕국론의 재해석과 율법의 제1용법의 재해석 등을 그 대표적인 예다.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낙은, 젊은 신학도 본회퍼에게 애정 어린 보살핌을 주었다. 본회퍼 역시, 하르낙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하르낙에게 보낸 편지와 1930년 6월 15일 하르낙의 무덤 앞에서 읽은 하르낙 추도사에서 그는 하르낙이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을 그의 가슴 속에 심어주었다고 고백했다.

하르낙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는 그가 옥중에서 하르낙의 <프러시아의 아카데미 역사>(The History of the Prussian Academy)을 읽었다는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그러나 본회퍼가 하르낙의 신학적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지는 않았다. 하르낙이 죽은 후, 그는 베를린 대학 강사 취임 강연에서 그를 반박했다.

본회퍼는 칼 바르트에게서 직접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그와의 교제를 통해 신학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본회퍼는 초청기 바르트의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따라가면서도(<성도의 교제>), 계시의 초월적이 행동과 위기성의 지나친 강조에 대해서는 계시의 존재로 균형을 유지했다(<행동과 존재>). 계시의 객관적인 권위가 포함하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계시의 세상적인 언어를 강조했다(<옥중서간>). 그렇지만 본회퍼는 신학의 구조와 골격, 방법론에서 본회퍼의 신학은 항상 바르트의 신학이었다.

그는 특히, 투쟁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칼 바르트가 무엇보다 종말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본회퍼는 시급한 평화 계명의 성취를 위해 구체적인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본회퍼는 <행동과 존재>를 통해 바르트 신학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바르트 사상 속에 있는 문제의 핵심인 ‘계시의 행동과 존재’라는 딜레마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다. 본회퍼는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위기의 신학’을 강연하면서, 아무런 비판을 가하지 않고 바르트의 신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본회퍼에게 신학적인 영향을 준 사람 중에는 그의 박사논문 지도교수 제베르크 박사, 루터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칼 홀, 에큐메니컬 세계의 문을 열어준 다이스만 등이 있다.

본회퍼의 저작들
본회퍼의 대표적인 저작은 대학시절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1927년)를 들 수 있다. 교수자격 취득 논문으로 제출한 <행동과 존재>(Akt und Sein, 1930년) 역시 뛰어난 저작이다. 고백교회 투쟁시대에는 산상설교와 예수를 따르는 것에 대한 심오한 해석을 담고 있는 <나를 따르라>(Nachfolge, 1937년), 핑켄발데 신학교의 ‘형제의 집’ 생활을 바탕으로 저술한 <신도의 공동생활>(Gemeinsames Leben, 1939년) 등이 있다. 끝으로 정치적 참여시대에는 미완성작품으로 1940년부터 1943년 사이에 본회퍼가 쓴 단편들을 모은 <윤리>(Ethik, 1949년), 옥중에서 쓴 편지와 시 등의 글을 모아 출간한 <옥중서간>(원제는 “저항과 복종” Widerstand und Ergebung, 1951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창세기 1-3장의 신학적 주석이 담긴 <창조와 타락>(Schopfung und Fall),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문제에 접근한 <다윗 왕>(Konig David, 1936년), 유혹에 대한 성경적 해석을 시도한 <유혹>(Versuchung, 1953년), 교회의 기도생활 안에서의 시편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성경의 기도 책: 시편입문>(Das Gebetbuch der Bible: Eine Einfuhrung in die Paslmen, 194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