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국 청소년교육선교회 총무. 염광교회 협동목사

 1976년 어느 날 봉사하던 교회의 한 여학생이 느닷없이 빵을 사 달랬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려 주겠다는 말을 들으며 주중에 시간을 내어서 교회 근처의 빵집에 나갔다. 그 곳에는 이미 그 학생과 또 한 명의 친구가 와 있었다.

"전도사님, 사실은 오늘이 제가 거듭난 날이에요. 그래서 전도사님과 제 친한 믿음의 친구에게 축하를 받고 싶어서 오시라고 했어요."

이러한 초청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우리가 마지막 만난 것은 그 후로 5년이 지나서였는데 아마도 믿음이 좋은 집사님이 되어서 교회봉사를 잘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청소년들이 경건의 능력은 고사하고 경건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중고등부 헌신예배를 인도하거나 문학의 밤을 곁들인 전도집회를 참석해 보면서 그리고 여름과 겨울 수련회 집회에서 설교와 특강으로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다.

 가장 기독교적인 사람을 영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은 인격적인 성품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사람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과 맺는 관계성>을 의미한다. 즉 온전한 영성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과 자기 자신, 그리고 이웃과 피조 세계에 대해서 열린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또 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쉬우면 쉽다고 하나님께 아뢰면서 순간순간을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균형잡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영성은 인격이기 때문에 지식과 감성, 그리고 의지를 다 포함해야 한다. 감정만 가지고 영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영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오해가 있다.

 먼저 영성운동을 새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영적인 일이다. 그 동안 너무 교리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강조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지만 영성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인답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영성을 소유의 개념으로 본다는 점이다. 영성은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때에 하나님에게 꺼내놓고 이웃에게 꺼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피조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계속 추구해야 할 관계성이다. 현대문명의 특성으로 무엇이든지 소유해야 하는 물질주의적 개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셋째, 영성을 단지 개인의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이다. 영성은 개인의 내면적인 경건생활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사회생활과도 관련되고 또 정신과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몸을 쓰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고전 3:16). 그리고 성령충만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경건이라고 해야 한다. 즉 경건(Godliness)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창세기 5:21-24에서 짧게 언급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고 히브리서 11장에서 <하님을 기쁘시게 했던 자>로 인정되고 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았으며 하나님을 자신의 존재목표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삶을 말한다.

 경건한 삶이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그 내용은 1) 하나님을 경외하고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3) 하나님을 열망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다. 존 머레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경건의 진수'라고 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함께 있었던 것이다. "교회가 …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많아지니라"(행 9:31).

 경외는 두려워 한다와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성도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달아야 하고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하심과 지혜와 권세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 경건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향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감 사이에 건전한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을 느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으로 감사할 수 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를 범한 피조물 사이의 무한한 간격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이 간격의 다리를 놓으신 사랑을 보게 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독생자를 주시고(롬 5:8; 요일 4:9-10)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것이다(롬 3:32). 이러한 사랑을 아는 것이 우리를 헌신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헌신은 강력하신 권면을 담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이러한 사랑의 강권하심이 사도 바울을 가능케 하였고 우리의 헌신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주님을 영접하였다. 그 날은 음력으로 내 생일이었다. 1971년 8월 3일 화요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학원 단과반에 등록한 나는 모두들 떠난 여름수련회를 따라가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 교회에 나간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 동안 여러 가지 교회생활을 해 보았지만 수련회를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여학생을 사귈 절호의 찬스도 생각없이 놓쳐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생일날 공부한다는 것이 너무 심하다 싶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교회 수련회 장소로 혼자서 찾아갔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경기도 팔당을 향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또 배를 타고서 배알미리라는 곳으로 갔다. 정말 신기하게도 잘 찾아갔다.

수련회장에 가니 친구(?)들이 반겼다.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수영도 하고 저녁을 먹었는데 저녁집회에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아마 아름다우신 담임선생님과 회장 그리고 부회장의 강권함이 마음을 움직였나보다.

집회가 시작되고 부목사님의 설교가 있었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말씀은 없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이후에 즐겨 외우던 요한복음 3:16과 갈라디아 2:20이 핵심이 아니었는가 생각이 된다. 아무튼 집회가 계속되는데 부회장이 먼저 감동이 되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갑자기 장내가 숙연해지고 목사님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물으셨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맨 뒤에 앉아있던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동안 복음을 체계적으로 듣지 못했던 나에게 이 질문은 설교의 내용에 근거한 답을 찾게 하였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으며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나는 그분의 종입니다."

찬송과 감격의 기도가 이어진 집회를 마치고 나는 회장과 함께 밖으로 나와 근처의 한적한 산으로 가서 각자 기도를 하였다. "주님, 나를 위해 돌아가셨으니 이제 나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한번은 우리 전도사님이 물으셨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컴퓨터를 전공해서 돈을 조금 벌어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습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어렵게 살았다. 그리고 나는 수학을 좋아해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에게 내 인생을 맡기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는 공부하는 것이 좋으니까 학자가 되자. 그리고 학문을 하려면 신학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자.' 이렇게 생각하니 모두가 반대하는 신학대학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고백을 마음에 새기면서 청소년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정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이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을 열망한다. 참 경건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모하게 하여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즐기려는 열망을 우리 안에 불러 일으킨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1-2).

 만화가 이현세 씨가 아주 오래 전에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를 그렸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만화의 주인공은 까치와 엄지다. 까치는 남자주인공이고 엄지는 여자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던 중,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인데 그 날은 엄지와 까치가 옛날 어린 시절에 약속한 날이었다.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몇 날 며칠에 우리 여기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장소였다. 그 장소에 먼저 까치가 도착했다. 까치는 그 약속 장소에서 엄지를 기다렸다. 엄지도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왔다. 그러나 그는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이미 까치의 라이벌, 까치가 야구 선수인데 그의 라이벌격인 선수와 약혼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까치는 언덕에 앉아 있고 엄지는 숨죽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무 뒤에 숨어 있다. 이 때 까치가 손가락을 들어 땅에다가 글을 쓴다. 까치는 <갈증>이라는 단어를 쓴다. 억수 같은 빗속에서 <갈증>이라는 글씨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아,  까치에게 있어서 가치의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은 엄지밖에 없구나." 

까치와 엄지는 사랑의 갈증에 애태우고 있었다.

백과사전에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었다. "지구의 표면은 약 3분의 2가 물로 덮여 있으며 인체는 약 70%가 물이고, 어류의 경우 약 80%, 미생물은 약 95%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이처럼 갈망하였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려 하여"(빌 3:10). 이것은 "나는 그를 알아야겠다고 작정한 바가 있다. 곧 그분의 경이스러운 인격을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붙잡아 이해하고 깨달아 그분을 점점 더 깊고 친밀하게 알아가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현대역 성경의 해석).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자녀인 디모데가 으레히 경건할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운동선수처럼 연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1) 개인의 책임 2) 자신의 영적 성장이 목적이다 3)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훈련에는 1) 헌신해야 하며 2) 유능한 선생으로부터 배우고 3) 반복적인 연습이 있어야 하며 4)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은 경건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딛 2:11-13). 그리고 이 시대의 미래가 되는 청소년에게 경건훈련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 된다. 우리 기성세대는 가정과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삶을 모델로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