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소비행위가 지니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소비는 하나의 단순한 소모적인 경제행위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경제활동으로 간주된다. 소비의 진작을 위해 온 사회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새 소비는 하나의 ‘종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문화선교연구원(원장 임성빈 교수)이 12월 1일 서울 혜화동 동숭교회에서 연 제4회 기독교문화 학술 심포지엄 ‘소비문화시대의 기독교’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소비문화적 욕망은 특정한 물질 자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끊임없는 모색과 추구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소비문화적 욕망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모색과 추구를 내용으로 하는 기독교적 열망과 매우 유사합니다.”

장신대 임성빈 교수(기독교윤리학)는 실제 소비란 그 대상을 만족시킬 수 없는 목적을 향한 것임으로 실망만을 남기게 된다는 점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열망을 기본적으로 하는 기독교적 열망이 소비문화 안에서 미묘하게 오도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문화의 핵심요소는 ‘문화의 상품화’인데, 상품화가 문화적으로 작동하였을 때 ‘추상화’, 즉 대상이나 역사적 전통과는 아무런 관계성이 없이 오로지 소비욕망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현상이 문제라는 시각이다.

그는 “상품화의 과정을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체계와 실천적 전통 등을 전략적으로 지혜롭게 동원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종교가 가진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을 보존하고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도전을 적극적으로 브리코라쥐(bricorage) 할 수 있도록 문화 행위자로서 신앙인들을 세움이 적극적으로 요청된다는 의미다.

▲ 임성빈 교수

경희대 송재룡 교수(사회학)는 현 한국사회의 부정적 소비문화 즉, 과시적, 모방적, 향락지향적인 문화의 패턴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전통적 유교 이념과 가치규범 체계들 특히, 혈족적/씨족적 굴레에 갇혀 ‘무도덕적’(amoral) 속성을 갖는 ‘가족주의(유사가족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이 같은 ‘특수주의적’ 가족주의를 뛰어 넘어 강력한 ‘보편주의적’ 윤리, 도덕성, 공공성의 의식을 갖다 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기독교의 긍정적 정신문화를 대비했다. 목적은, 기독교 문화의 정신적 유전자 ‘밈’을 통해 한국 소비문화의 부정성의 밈을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 것이다.

송 교수는 “이 ‘밈’ 전환의 역할이 더욱 강력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기독교 정신문화 전승의 주체들 스스로가 더욱 더 비판적, 성찰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사회가 상업자본주의와 소비극대화 논리와 메커니즘을 답습하면서 위기에 빠져 있는 현 문제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의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모든 일에서 ‘먼저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쪽으로 일종의 존재론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천신학대학원 조성돈 교수는 현대사회를 ‘소비공동체’로 규정하면서 그 특징을 시간, 공간, 그리고 가치라는 측면에서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소비공동체 문제의 근본이 ‘욕망’에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살폈다. 소비자로서 인간은 욕망의 끊임없는 쳇바퀴를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존재인데, 이러한 욕망은 인간에게 아노미 현상을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그 욕망 충족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개인의 심리적 문제만이 아니라 각종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우리사회에 팽배한 한탕주의나 요행주의, 그리고 자살자의 증가 등도 이 같은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특히 “문제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소비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는 것”이라며, 세상의 성공기준과 교회의 성공기준이 구별되어지지 않고, 세상에서 복되다고 하는 것과 교회에서 복되다고 하는 복의 기준도 구별되지 않으며, 더 많은 물질의 추구와 획득으로 나타나는 욕망에서 같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조 교수가 제시하는 소비사회의 교회가 해야 할 과제는 첫째, 구별되어지는 거룩성의 회복이며 둘째, 도덕적 힘으로서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구체적 행동으로서 조 교수는 △소비행위에 대한 비판적 시각 △공정함에 대한 실천력 △소비행위가 가져올 불이익 집단에 대한 사회적 책임 △소비행위가 미치는 환경적 책임 △사회조직의 연대성 등의 대안적 소비개념을 제안했다.

장신대 교회와사회연구원 박성관 교수는 “소비사회에서 소비자는 주권을 가지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인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광고와 판촉활동으로 소비자를 조종한다”며 “소비의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여한 불가피한 자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참된 자유는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히고, 소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의 모델로 ‘소공동체교회’를 제시했다.

소비사회에서는 종교 역시 소비되는 상품이 되어 자신을 브랜드화하려고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의 새로운 중심 브랜드는 초대형교회라는 설명이다. 초대형교회들은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고 있어, 소비문화를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비문화에 중독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