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처럼 싱싱한 삶의 현장이 또 있을까? 인간의 희로애락(喜怒愛樂)이 싱싱하게 날뛰는 곳. 질탕한 싸움, 흥청이는 난장, 광풍처럼 거친 원색의 타령들이 팔고사기 위해 널려 있는 온갖 물건들 이상으로 질펀하게 펼쳐지는 곳이 시장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싱싱한’ 그리고 가장 ‘질펀한’ 시장이라면? 십중팔구는 ‘남대문시장’이라 답할 것이다. 1608년(선조 41년) 대동미(大同米), 포(布), 전(錢)의 출납을 맞아 보기 위해 설치했던 선혜청(宣惠廳)을 효시로, 남대문시장은 380년 간 이 땅의 상권을 지배해왔다. 일제시대 때는 ‘중앙물산시장’으로 개명되는 설움을 겪었고, 6․25 한국전쟁 때는 완전히 폐허가 됐다. 서울 수복 후에는 주로 이북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68년과 75년의 대화재를 극복해내고 오늘날까지 면면히 서민들의 삶의 궤적을 그려 오고 있다.

악착스런 삶의 칼날을 곧추세우는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은 42,225m2의 대지면적 위에 연건평 97,194m2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시장 안에는 총 58개동, 9,265개의 점포가 있다. 대한민국 제일의 재래시장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약 12,000명의 상인들이 밤낮으로 상주하고 있고, 하루 이용객이 평균 45~50만 명에 이른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끼고 있는 남대문시장은 역시 가장 싱싱하고도 질펀한,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급 시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남대문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초대형 할인마트와 백화점들의 급신장으로 인한 유통산업의 변혁과 온라인(on-line) 시장의 급격한 확대로 말미암아 다른 여타 재래시장들처럼 서서히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특히,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경쟁시장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더 개발된 동대문시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말미암아 생존의 위기 한 가운데 서 있는 실정이다.

남대문시장의 주력 품목은 아동복과 숙녀복 그리고 액세서리다. 이들 품목은 대부분 이곳 상인들이 직접 생산하여 판매하기 때문에 동대문시장보다 경쟁력 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서 있다. 그래서 남대문시장은 대한민국 아동복과 액세서리만큼은 ‘메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이 남대문시장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의 터전이 된다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솔직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아귀다툼을 다투며, 악착스런 생존의 칼날을 곧추세우는 시장 바닥에서 감히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단 말인가?

사실, 성경에서조차 시장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반드시 깨끗이 씻어야 하는 그런 불결한 곳이며(막 7:4), 고작해야 긴 옷 입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문안 받으며 뻐기는 장소(막 12:38, 눅 11:43)에 불과했던 곳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런 시장에 한 가닥 소망이 있었다.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막 6:56).

그렇다.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려는 병자의 심정으로, 그래서 성함을 얻어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보겠다는 소망이, 삶의 질펀한 현장 남대문시장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다.

열린선교회, 남대문시장의 영적 진공상태를 열다
열린선교회 김용욱(44세) 목사는 남대문시장 복음화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목회자다. 김 목사가 이곳에서 복음의 문을 활짝 연 것은 2002년 11월 7일. 이전에 그는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했으나, 8년 간 50명의 성도를 넘지 못했다. 교회의 성장 불능은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고, “이 땅에서의 교회 개척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있었다. 새로운 사역지를 물색하면서 잠시 머물 목적으로 오게 된 곳이 바로 남대문시장.

그러나 지금은 김 목사가 죽기까지 머물러야 할 최후의 선교지가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는 처음에 시장 상인들의 영적 상태를 보곤 충격을 받았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수많은 상처와 고통 중에 있는 주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이었어요.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들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만하지 않습니다. 제품을 디자인하여 생산하고, 경영까지 하는 자영업자들이지요. 또한 전국의 재래시장에 생산품을 공급하다보니, 보통 밤 10시에 도매시장이 섭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성 사장님들이 많아요. 그러니 가정이 엉망이에요. 남편은 가정에서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자녀들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들 중에는 이혼했거나 또는 이혼의 위기에 놓여있는 분들이 많아요.”

깨진 가정, 위기 앞에 선 여성들, 홀로 온 몸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쓰러져도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영혼들. 때문에 그들은 쉽게 술과 향락에 빠졌고 탈선의 위험에 노출된 인생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간혹 기독교인도 있었다. 하지만 과중한 삶의 무게와 물질적인 압박 그리고 동종업종 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영혼은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러니 불신자 전도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하나님은 김 목사에게 이렇게 영적 진공상태에 빠진 남대문시장의 현실을 보게 하셨다. 그리하여 남대문시장 복음화를 위한 ‘열린선교회’는 이렇게 태어났다. 열린선교회 비전은 “남대문 일만이천 영혼을 주께로”다.

셀을 통한 효과적인 복음 증거
주님의 위로를 받지 못한 그들을 위해 김 목사가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은 기도였다. 낮과 밤을 거꾸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터. 그래서 한참 장이 갈무리되어가는 새벽 5시 30분에 새벽기도회를 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시장 내 열린선교회관에서는 찬송과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또한 목요일 새벽에는 2시간씩 소수의 회원들과 함께 남대문시장 전체를 돌면서 노방전도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장 안에 선교회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신앙생활을 쉬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들자 새벽기도회는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기를 1년. 잠시 생업에 손을 놓고 노방전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40명을 초과하게 되었다.

“그때부턴가 봐요. 제 마음에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선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계속 늘어났고, 게 중에는 순수 불신 영혼도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이 타 교회에 출석하는 기존 신자들이었지요. 새벽기도처로 열린선교회를 찾았던 것이에요. 주님은 제게 거룩한 부담감을 주셨어요.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으로는 이곳의 불신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시장 복음화에 대한 고민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김 목사는 셀을 접목한 교회 설립으로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보다 더 효과적인 복음화를 위해 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 셀 리더를 양육하고 훈련하여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하는 전략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역동적인 셀이야말로 상가에서 복음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하여 2004년 2월 17일, 김 목사는 기존의 선교회 회원 예닐곱 명과 함께 시장에서 30분 떨어진 곳에 열린선교교회를 개척했다.

“선교회를 통해 전도된 영혼은 열린선교교회를 통해 남대문시장을 복음화하는 셀 리더로 양육됩니다. 그렇게 되면 열린선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들의 현장 사역지가 될 것이고, 교회는 그들을 양육하고 후원하는 곳이 되지요.”

셀 리더들을 통해 교회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현재 이 교회의 주일 평균출석 성도는 180명을 웃돌고, 재적은 3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대부분은 그야말로 초신자다. 찬송가를 제대로 몰라, 주일예배 때는 같은 곡을 두세 주 동안 반복해서 불러야 할 정도다.

▲ 새벽 집회 모습

세상과의 영적인 전투
남대문시장 열린선교회의 선교활동이 그렇게 순탄하게만 풀려가는 것은 아닐 터.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어 선교활동 하느라 손님 잃고 수입 주는 것쯤은 각오한 터지만, 동료 상인들로부터 “먹고 살기도 바쁜 판국에 무슨 놈의 예수 놀음이냐”는 식의 놀림과 멸시를 받을 때는 안타깝다 못해 슬퍼지기까지 한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심지어 회원들 몇 명이 모여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도 질시하여, 불교의 독경 테이프 등을 일부러 크게 틀어 놓아 모임을 방해받기도 한다.

그럴수록 선교회 회원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더욱 열심히 전도하고, 장사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이고자 노력한다는 게 김 목사의 말이다. 다른 상인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손님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는 것.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가는 곳이요 남대문시장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가는 곳” 이라고 말한다. 한국 제일의 재래시장으로서 모든 사람의 뇌리에 새겨져 있으면서도, 한국교회의 뇌리에는 사라져 버린 잊혀진 땅 남대문시장. 남들이 잠든 고요한 시각, 오들도 남대문시장에서는 영적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