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온 송곳 같은 꽃샘추위. 매섭기가 보통이 아니다. ‘이상고온’이라 하더니 강풍과 눈이 뒤섞이는 바람에 최악의 경칩을 맞이했다. ‘춘삼월’은 가고 ‘춘이월’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난히 따뜻했던 올 겨울. 그때 벗어던진 겨울옷을 다시 찾아야 할 만큼 추웠다.

날씨와 무관하게 항상 화끈한 열기가 넘치는 곳이 있다. 2007년 최대의 화두 ‘대통령 선거.’ 다가오는 12월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방송, 인터넷 매체는 온통 대선에 시선이 고정돼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 눈과 귀를 둘 곳은 대선 이외에 다른 선택사양은 없는 듯하다.

“한나라 빅3 ‘경선룰’ 합의 실패”, “‘한나라 집권 땐 남북전쟁 발발 우려’ 발언 논란”, “박근혜- 이명박 지지층 집중분석”, “손학규, ‘이명박 실언’ 씹어대기 연일 ‘집중타’”, “한명숙 컴백 환영식, 대선 출정식 방불”, “정운찬, ‘이르면 이달 안에 중대한 결정할 것’”, “정동영 ‘2007년 대선 교육대통령 뽑아야’”.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두세 사람만 모이면 대선 이야기를 한다. 난데없는 검증 공방이 나오는가 하면, 정치 안하겠다는 사람을 대선 후보군에 밀어 넣고 입방아를 찧는다.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호불호를 외치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지 설왕설래한다. 어떤 시각으로 이런 일련의 행태들을 바라보아야 할까?

어느 가수가 노래한 것처럼, 산 너머 남촌에서 불어오는 남풍은 대선이 끝난 뒤에야 불어올 것인지…. 더 이상 정치가 이슈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을 그려 본다면 지나친 허상일까?

“대선, 하루 빨리 치러지면 좋겠어요!”
한때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호황을 누리는 산업이 있었다. 관광 버스업, 음식점, 충무로 인쇄골목은 가히 선거 특수 업종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미디어 선거전 양상을 띠면서 각종 미디어가 호황을 누리는 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요즘 각종 언론의 대선 관련 뉴스는 가히 폭발 일보 직전이다. 미디어 산업이 대목을 만난 것이다. 특히, 대선 주자들의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은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올려진다. 그들의 한 마디는 어록으로 남겨질 지경이고, 한두 시간이면 말의 진위 여부를 분석하여 예측하는 기사까지 올라올 정도다. 대선 주자들의 과거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제 그들의 사생활은 없다.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밝혀내는 대선 뉴스는, 정보 제공 차원을 넘어 최근 젊은이들을 강타하고 있는 개그맨 죄민수(조원석 분)의 말처럼 “수뤠기” 수준과 가깝다.

12월 대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상당수 시민들이 대선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만큼 대선이 절실하다는 반증이다.

“현 정권이 부동산 잡겠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양극화만 더 심화되었잖아요. 이번 대선에서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 주겠습니다”(서울 사당동 조천규 씨).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도 막아줬고, 몰표로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줬잖아요. 그러면 국민들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를 해야 되잖아요.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남의 탓만 일삼는 정쟁에 말싸움만 하는 현 정권에 신물이 날 수밖에 없어요”(경기 안양시 권홍일 씨).

“요즘 온통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는 야당 대선주자들만 부각되고 있어 안타까워요. 아직 대선은 9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야당이 집권한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눈꼴사나워 못 견디겠어요. 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할 텐데… 답답합니다”(서울 돈암동 이기욱 씨).

“예전에 우리 기독교 안에서 김영삼 장로 대통령 만들기가 있었잖아요. 그때처럼 한국교회 안에서 이명박 장로에 대한 지지 흐름이 높은 것 같아요. 그게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일인지…”(경기 부천시 김연순 씨).

반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다. 반대 목소리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즘 직장에서는 온통 대통령 선거 이야기뿐이에요.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서 직원들이 각자 알아낸 정보를 공유하면서 토론이 한창이죠.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어요. 대선은 아직 9개월이 남았고, 대선 주자들이 드러난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너무 오버하는 거 같아요.”(경기 수원시 공영진 씨).

“대선이 하루 빨리 치러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세상이 조용해질 것 같아요.”(서울 신정동 20대 회사원 양승희 씨).

대선 광풍은 교계에서도 불어
대선 광풍은 교계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부터 12월 5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32명을 대상으로 BBC와 매일경제신문, 동아시아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시장은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각각 38%와 30%의 지지율을 보여 박근혜 후보를 앞질렀다. 종교가 없다는 무종교 층에서도 25%로 박 전 대표를 앞섰다. 이 전 시장에 보내는 기독교계의 애정이 각별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이번 대선에서 개신교적 시각에서 후보들의 정책 검증 및 투표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목사는 지난 2월 15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전 대선에서는 (교계가) 엎드려 기도만 했지만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 정책을 마련해 이를 후보들에게 제시하고 정책을 수용하는지, 대통령이 된 뒤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기독교 정책을 만들고 제시하는 ‘기독교 정책 포럼’을 구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연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정책으로 대선후보를 검증하겠다”고 밝히고, “어느 정당이나 후보 개인에 대해 편향적으로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어느 후보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판단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친북반미 좌파 종식 3·1국민대회’가 열렸다. 공동대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모두 9명 중 5명이 목사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 기독교대한민국살리기운동 대표회장 김홍도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이광선 목사, 북한구원운동 대표회장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최성규 목사 등이 그들이다. 게다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국가비상대책협의회 의장 김상철 장로,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도 집행부 지도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이날 발표한 결의문에는 북한의 핵무기 완전 폐지, 북한의 변화와 연계하지 않는 무원칙한 대북지원 금지, 고려연방제 안을 수용한 6·15선언 폐기, 한미연합사 해체 계획 중단, 개정 사립학교법의 철폐 등이 실려 있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다시는 이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결국 올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 반대세력을 지지할 것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교계에서는 ‘장로 대통령을 청와대로’라는 구호가 상징하는 특정 후보 지지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더불어 사학법 개정 반대 삭발투쟁, 김진홍․서경석 목사가 중심이 된 뉴라이트운동연합과 기독교사회책임 등의 활동도 대선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안에는 이 같은 목소리와 대칭적 관점에서도 대선 관련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고 있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은 대선 정국에 초점을 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기사연 기획위원회는 ‘대선 정국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 ‘대선 이후 한국 사회 전망’ 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키로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지난 2월 2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기독교의 정치 참여를 경계하되, 최근 보수 교계의 정치 참여 행태를 “하나님을 빙자하며 강자에게만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거의 교훈을 거울로 삼아야
과거 한국 보수교회의 정치 참여는 원죄에 가깝게 부정적이다. 지나치게 권력 지향적 자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자유당 정권은 기독교인들이 이끈 정권이었고, 기독교 부흥에 기여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만들고 3.15 부정선거를 저지름으로써 이에 저항한 시민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당시 교회와 신자들은 독재로 나아가는 정권을 견제하는 세례 요한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0년 3선 개헌을 하고자 했을 때 보수교회는 이에 대하여 경고하기는커녕, 개헌 찬성 성명서를 신문지상에 내고 이를 대가로 신학교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80년대 광주항쟁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한 신군부 정권 시절에는 소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신군부들에게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데 기여하였다.

아직도 한국교회에는 100개 넘는 군소교단이 난립하고 있으며, 무허가 신학교들에게 무자격 목사들을 양산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권력에 대하여 전혀 이를 견제하고 올바른 통치자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위치에 있지 않다.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한 정당성이라는 맥락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참여했다. 이들은 정치를 속세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일부로 보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대선보다 영적 각성을 이야기할 때
기독교인은 정치에서 손을 뗄 수도 없고 떼어서도 안 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다. 그러나 참여 방법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기독교의 이름을 빌어 특정 교파나 개인의 정치적 이득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과열된 현 상황을 직시하되, 기도하면서 여야나 개인의 종교적 취향과 상관없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참된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도록 대선에 대한 신앙적 냉각기가 필요하다.

지금은 기독교가 대선에 대해 지나친 열기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비기독교인 입장에서는 기독교가 정치 세력화되어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인에게 올해는 여러 모로 의미 있는 해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는 해로서 그 어느 때보다 영적 각성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기독교인 각자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도 우리가 썩지 않는 소금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