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신분으로 1년여 동안 경기도 파주와 서울 일대에서 최소 30명 이상의 부녀자를 성폭행한 강간범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월 12일 문모 씨(35)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0월 15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연립주택에 들어가 미리 챙겨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뒤 부엌칼로 잠자던 여성(46)을 위협, 성폭행했다. 같은 해 11월 16일 새벽에는 경기 파주시 모 연립주택에 숨어들어 같은 수법으로 50대 여성을 성폭행했고, 일주일 뒤에는 현장을 다시 찾아 중·고생 자매까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추행했다.

그러던 문 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 4시께 서울 여의도 모 교회에서 이 교회 선교사로 있던 30대 중반의 여성을 폭행한 뒤 미리 준비한 칼로 위협해 강간했으나 평소 서로 알고 지내던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 검거됐다. 경찰은 이날 “문씨가 자백한 성폭행 사건만 수 십 여건에 이르고 이 중 7, 8건에 대해서는 현장 검증을 마쳤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미 같은 혐의로 15년 실형을 살았던 사람으로 2005년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다른 범죄보다 재범률이 훨씬 높은 성범죄 전과자의 관리 소홀이 또한번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2월에도 성폭행된 뒤 무참히 살해된 용산 초등생 허모양 사건으로 성범죄자에 대한 낮은 처벌 수위와 허술한 사후관리가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이 한동안 제기됐었다. 그동안의 성범죄, 특히 유아성폭행과 관련된 판결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 1.
2005년 4월 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는 운동장에서 놀다가 한 아파트 경비원 김모(65)씨의 집에 끌려가서 성추행을 당했다. 며칠 뒤, 여자아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똑같은 짓을 당했다. 법원은 김씨에게 판결했다.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피해자를 위해 금 1천만원을 공탁한 점을 참작했다”. 집행유예.

△사례 2.
2005년 5월 서울 양천구의 어린이 놀이터. 장난감과 머리 끈을 갖고 노는 11세 여자아이에게 화물기사 최모(54)씨가 접근했다. 장난감을 보여주며 인근 야산으로 데려가 돗자리를 깔고 여자아이의 옷을 벗겨 성추행했다. 어린 여자아이는 처녀막이 파열됐다. 법원은 판결했다. “범행의 죄질은 매우 불량하다 할 것이나 피고인의 가족이 4천만원을 지급하고, …피고인에게 1회의 경미한 벌금형 전과 외에 별다른 처벌 전력이 없고, ….” 집행유예.

△사례 3.
2005년 9월 서울 용산에서 김모(53)씨가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했다가 기소됐다. 법원은 판결했다. “동종 전과가 없고 피해자에 대한 추행의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으며,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 집행유예. 이렇게 풀려난 김씨는 2006년 2월 17일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4학년 허모(11)양 살해범이다.

△사례 4.
서울 중구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2005년 8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여자 어린이 10여 명을 ‘집에 놀러오면 돈을 더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추행한 김모씨는 재범자였다. 98년 4세 유아를, 2000년 7세 유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총 2년 6개월간 복역했을 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4년 994명이던 성범죄 재범자의 수는 2005년 1천188명으로 19.5%나 급증했다. 초등학생 이하(13세 미만)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2004년 721건, 2005년 738건이 발생해 계속 느는 추세다. 15살 이하 어린이들로 폭을 넓히면 성폭행 신고만 1천200여 건으로 하루 3명 이상 성범죄로 인한 어린이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성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자를 풀어주는 사이에 어린 소녀들은 공포와 죽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성범죄자가 석방되면 거주지를 경찰이 이웃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또 아동 대상 성범죄의 경우 2번 유죄를 받으면 무기징역을 선고하거나 일부 주에서는 출소할 때 거세 약물을 투여하기도 한다. 대만은 미성년자 성범죄자의 경우 언론에 공개하고, 프랑스는 최근 GPS를 갖춘 전자 팔찌를 차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미성년자 성범죄자에게는 형 확정 이후 5년간 학교나 학원 등에는 취업할 수 없도록 한 것이 재발방지대책의 전부다. 한나라당이 2005년 발의한 전자팔찌 착용법안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반발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성폭력 상담기관 해바라기 아동센터의 최경숙 소장은 “평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범들의 특성을 연구해보면 교화가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며 “재범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과학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재범자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과 아동들로부터의 격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역사평론가 이덕일 씨는 ‘조선의 성폭행 처리’라는 글에서 “성범죄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은 일제 때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에는 성폭행 사건에 대해 강간미수는 장(杖) 100대와 3천리 유형(流刑), 강간은 교수형, 근친강간은 목을 베는 참형이었다는 것이다.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화간(和姦)은 남녀 모두 장 80이었으며, 기녀(妓女)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이 없었어도 여성의 동의가 없었으면 강간으로 처벌했으며, 절도 도중 강간까지 한 경우는 참형이었고, 유아 강간은 예외 없이 교형이나 참형이었다. 이씨는 “지금은 일제의 유산인 현재의 성범죄 인식을 조선시대인들의 엄격한 인식으로 되돌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