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등장하지 않는 권경현(56·오륜교회) 교보문고 사장을 기자가 만난 것은 12월 4일이었다. 종로구 도렴동 세종문화회관 후문 쪽 한 일식집에, 그는 회색 버버리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임직원 1,000여 명의 대식구를 거느리고, 온,오프 라인을 통틀어 올해 매출액 3,300억 원을 예상하는 대기업 수장(首長)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수수했다. 그의 용모에서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특히,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눈빛은 활화산이 되었다. ‘책 읽는 국민’, ‘책 읽는 국갗, ‘책 읽는 교회’는 권 사장이 꿈꾸는 미래다. 점심식사 메뉴로 선택한 대구지리탕처럼, 우리나라 지식문화산업을 대표해 온 교보문고 대표이사의 책 사랑 이야기는 담백하면서도 시원스러웠다.

디지털 문화가 출판계에도
권경현 사장은 ‘독서’ 예찬론자다. 지식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원천인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책 읽기를 권한다. 그 역시 독서를 무척 좋아한다.

권 사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 묵상과 성경읽기를, 퇴근 후 귀가해서 책을 읽는다. 그의 규칙적인 독서 습관은 가정에도 영향을 미쳐 책 읽는 독서가정이 됐다.

‘책 권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그의 습관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권 사장의 제안에 의해, 부서장급부터 사장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추천도서를 읽고 토론회를 개최한다. 작가의 의도나 철학을 느낀대로 이야기하고, 때로는 작가와 다른 견해도 밝힌다. 이러한 일련의 독서를 통해 고객들의 변화를 따라잡고, 현업이 요구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 점이 바로 교보문고가 여타 동일 업체와 다른 점이다.

“저는 책을 통해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의 과정을 겪은 뒤 나비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런 작업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조금씩 진행될 수도 있어요."

권 사장은 그의 일생에 영향력을 미친 가장 인상적인 책 세 권을 손꼽는다. <꽃들에게 희망을>, <소유냐 존재냐>, <파우스트> 등이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자양분과 같은 책이다.

그의 책 사랑 이야기는 10월 말, (비즈니스북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CEO 13명의 책 이야기를 묶어낸 이 책에서 권 사장은 ‘책은 늘 가까이 둔다’, ‘내게 맞는 책부터 읽는다’, ‘정기적으로 독서하는 시간을 만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한다’, ‘난독하지 않는다’ 등 그만의 독서 비법을 공개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일수록 출판 불황은 불을 보듯 빤한 일. 기자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우리 사회에서 독서가 후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는 것이 문화비라지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책 읽는 추세가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어요."

권 사장은 현 대한민국을 그다지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이 늘어가는 만큼,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 그의 판단. 그러나 책 읽는 경향만큼은 독서 전문가답게 ‘참을 수 없는 책 읽기의 가벼움’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요즘 출판되는 책에서는 ‘책의 진수’가 안 느껴져요. 가벼움, 단순함, 속도, 짧음을 추구하는 디지털 속성이 출판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우리시대는 책 한 권을 몰입해서 읽을 여유가 없어요. 대개 200페이지 미만으로 편집되고, 그 나마 글자가 크고, 그림도 들어가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의 따끔한 일침(一針)은 책 내용으로도 가해진다. 작금 출판되는 대부분의 책들이 처세술, 자기 계발, 재테크, 웰빙, 취미, 여가, 건강 등 성공을 부추기는 쪽으로만 양산되기 때문이다. 현실의 각박함과 물질적 가치에 시달리면서 점점 기계 부속처럼 도구화되는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정서적 만족을 주고, 왜 살 것인가와 무엇 때문에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줄 수 있는 정신적 가치, 자아 찾기를 다룬 책들의 출판이 아쉬운 대목이다.

평생 책 읽는 사회를 위하여
책을 보급하는 데 머물지 않고 책을 읽게 해서 평생 학습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교보문고의 비전이다. 책을 통해 모든 사람의 역량을 키우고, 세상에 자신의 역량을 베풀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보문고가 지향하는 바이다.

이를 위해 교보문고는 5가지를 사업의 축으로 삼고 있다. 종이책 유통, 디지털 콘텐츠 사업, 독서 지원 사업, 평생 학습 사업, 문화 서비스 사업 등이 그것. 다른 동종 업체들이 종이책 유통이나 디지털 콘텐츠 등 개별 영역에 국한돼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교보문고의 경쟁력은 온오프 매장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데 있다. 온라인 쇼핑몰은 목적 구매가 이뤄지는 곳으로 전문가나 젊은 층이 많이 찾는다. 오프라인 매장은 사용자층이 넓고 목적 구매와 매장에 방문할 때의 특징인 충동구매가 적절히 일어나도록 내부 구성을 했다.

지난 5월에는 인터넷 교보문고 사이트를 개편, 고객의 구매 성향을 분석해 개개인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맞춤추천서비스와 검색 서비스를 강화했다. 또 일시 품절되거나 출시 예정인 상품을 고객이 신청하면 정상 유통시 알려주는 알림 메일 기능, 고객이 추천도서 리스트를 작성해 친구에게 메일로 보낼 수 있는 추천 메일시스템 등을 새로 선보였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사업뿐 아니라 기업들과의 B2B(Business to Business) 사업도 병행한다. ‘평생 학습’이라며 기업들이 직원들에 대해 투자하는 예산이 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과의 연계와 정보 제공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지난 11월 30일, LG텔레콤과 교보문고가 e-Book 및 맞춤형 출판 서비스(POD: Publishing On Demand)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도서 관련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기획, 개발, 마케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업무 제휴를 체결했다. 이로써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도서의 내용을 조회 및 검색하고, 온라인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주문 및 구매가 가능하게 됐다.

또한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다음 홈페이지의 ‘책 서비스’와 교보문고의 ‘제노마드’사이트를 통해 전자책, 오디오북, 본문 검색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하게 되었다. ‘제노마드’는 교보문고가 자체 구축한 사이트 브랜드로 키워드 하나만으로 책을 본문까지 검색해주는 본문검색, 실제 책을 보는 느낌 그대로 읽는 전자책, 언제 어디서든 귀로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 등 다양한 지식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궁극적으로 전자책, 오디오북 등 디지털콘텐츠 사업을 강화해 다음이 차세대 플랫폼으로 준비하고 있는 TV, 무선단말기 등과의 유기적인 연동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교보문고는 국내 출판사들과의 계약을 확대해 올해 안에 5만종의 전자책을 확보하고 향후 매년 2만종 이상을 추가할 계획이다.

온·오프라인의 ‘지식놀이공원’
권 사장은 교보문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교보문고는 책을 다루는 서점 기업으로 지식문화 전달차원에서 고객서비스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평소 그의 소신이다. 한마디로 교보문고를 ‘지식놀이공원’으로 바꾸고 싶다는 것.

실제로 얼마 전 문을 연 잠실점 중앙에는 원형의 문화 휴식공간인 ‘티움(Tium)’과 ‘북카페’를 마련했다. 이는 교보문고가 단순히 책만 진열하고 판매하는 서점이 아니라 소비자의 지식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문화기업인의 지식놀이공원으로 변신하기를 바라는 권 사장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권 사장이 강조하는 교보문고의 가장 큰 경쟁력은 ‘온·오프라인 통합 시스템’과 국내 제1의 브랜드 인지도. 그의 경영목표는 전국 오프라인 점포망과 출판사업 그리고 온라인 사업을 통해 독서인구 저변 확대와 사회교육기능을 살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는 사단법인 인간개발연구원이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와 함께 군부대를 대상으로 문화 지식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기념해 시각장애인를 위한 사랑의 점자도서 기증행사인 ‘사랑의 빛 세상의 빛’ 행사를 실시했다.

권 사장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 이전에 역량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현재의 나를 바꾸고 싶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180도 전환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량이란 개인의 경우 지혜와 덕과 체력이 겸비되어야 하고, 일반 기업체라면 태도와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런 구성 요소들이 갖추어져야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영적 성숙을 위해 독서해야
권 사장은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사랑하고 읽고 이해하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신앙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기 위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그리고 영적 성숙을 위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최근 급격하게 추락하는 기독교가 영적 성숙을 위한 책읽기를 시도함으로써 다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책 읽는 성도들이 줄어드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암담하게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기독서적 독서 붐이 일어나야 해요. 다양한 서적들은 사람들의 지친 영혼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더욱 깊고 균형 있게 하고 풍부하게 만들거든요. 기독출판 활성화와 독자층 확대 여부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독서 네트워크 커뮤니티를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신학을 공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책 사랑이 유별난 권 사장은 본래 금융·보험인 출신이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1973년에 교보생명에 입사한 그는, 교보증권 상무와 교보생명보험 상무, 전무 및 사장 등 30년 넘게 ‘교보’와 인연을 맺으면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러던 그가 2002년 4월, 교보문고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의 지식문화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