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일 / 직장사역연구소 부소장

요즘에는 티비 드라마에서도 이색 직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작년에 마치 신드롬과도 같이 ‘삼순이 열풍’을 몰고 온 드라마에서는 제과 기술자 ‘파티셰’가 등장했고, 또 다른 드라마에는 ‘미스터리 샤퍼’라는 특이한 직업도 나왔다. 고객으로 위장해서 매장을 방문하고 서비스를 점검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또 극장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하우스 매니저라는 직업이 나오는 드라마도 있었고 다이어트 전문가도 나왔다. 한 온라인 취업 사이트에서 대학생이나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니 신종 직업에 매력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이 거의 90% 가까이 나온 것을 보았다. 또 자신의 직업 선택에 그런 인기 있는 드라마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의욕은 좋은데 우리가 보통 직업을 구할 때 자기가 원하는 멋진 직업을 가지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래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들어갔다가 몇 개월 만에 나오고 또 다시 그렇고 그런(?) 직장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물론 평생직장의 시대는 지나갔고 평생직업의 시대에 직장을 좀 옮기는 것이 무슨 흠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첫 직장에서 근속하는 기간이 짧고 이직률이 높은 것은 기업이나 구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크리스천들 중에서 자기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어릴 적부터 바라던 직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가끔 청년들에게 질문을 해본다. 거의 손을 드는 청년들이 없지만 간호사들이 모인 그룹에서 자매들이 우르르 손을 든 적이 있었고, 제주도에서 연합집회를 할 때 학교와 어린이집 교사인 자매들이 여러 명 손을 들어 놀란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예전에 여자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희망하는 직업 중 간호사, 교사 등이 1, 2위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관광업이 발달했기에 주일성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하는 자매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등의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어릴 적에 희망하던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억지로 가진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꼭 원하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직업을 가지더라도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을 기억하고 일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평생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억지로 하게 된 일을 어떻게 잘 하는가 보여주는 멋진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홀랜드 오퍼스>인데 홀랜드(Holland)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남긴 작품(opus)이 무엇인가, 영화의 제목이 질문을 담고 있다. 작곡가가 되려는 꿈을 가진 젊은이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한 고등학교의 교사로 일을 시작한다. 4년만 교사로 일하여 종자돈을 마련하고 그 이후에는 퇴직하여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전력을 기울여야 겨우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대체 음악에 관심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면서 로큰롤을 수업에 도입하는 등 청년 홀랜드는 교사의 일을 열심히 한다. 교내에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발표회도 하면서 열정을 보인다. 아들이 태어났는데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것을 발견하면서 실망하기도 하면서 교사의 일을 계속하다가 처음에 계획했던 4년 만에 학교를 그만 두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자그마치 30년간이나 교사로 일한 것이다.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에 예산이 부족하여 그가 퇴임하면 그 학교에 음악 시간이 사라질 판이었다. 그것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으나 불가능했고 지난 30년의 교사 생활이 참 덧없다고 생각하고 쓸쓸히 학교를 떠나려는데 그동안 기른 제자들이 강당에 모여 선생님의 퇴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다닐 적에 클라리넷을 가르쳐준 소녀가 주지사가 되어 돌아와서 축사를 한다. “선생님, 30년의 교직 생활이 후회스러우십니까? 작곡가가 되어 이름을 날리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그저 우리에게나 유명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우십니까? 그런데 선생님, 우리가 바로 선생님의 음악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교향곡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잘 키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성장해 있습니다.”

그리고는 무대의 커튼을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교향악단을 구성하고 있었다. 홀랜드 선생님이 평생 단 한 곡 작곡한 ‘아메리칸 심포니’, 그것도 교향곡 작곡가가 아니기에 초연을 해보지도 못한 작품을 제자들끼리 연습하여 선생님의 퇴임식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홀랜드 선생님은 자기의 작품인 교향곡을 인생의 역작인 제자들을 통해 초연하는 기쁨을 누렸다. 과연 홀랜드 선생님의 작품은 무엇인가?

우리도 복잡하고 다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일이 아닌 일을 할 수 있다. 그때 묵묵히 그 일을 주님께 하듯이 해내면 우리의 직업을 통해 인생의 작품을 남길 수 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물건과 서비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남기는 것이고, 우리가 일하면서 관계하는 사람이라는 훌륭한 작품 또한 남길 수 있다. 비단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터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다. 물론 억지로 가진 직업이라도 주님께 하듯 할 때에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