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일 / 직장사역연구소 부소장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있는데 사실 축구 경기의 하프타임은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릴없는 시간일 수 있다.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은 먼 산을 쳐다보기도 하고 축구 중계를 보는 사람들은 광고를 보다가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수들과 코칭 스텝에게 있어서 하프타임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전반전을 평가하고 후반전을 전망하는 작업을 잘 하면 지던 경기를 이길 수도 있다. 여름휴가야말로 이런 하프 타임이다. 한 해의 하프타임인 셈이다. 이 하프 타임을 보내면서 책읽기를 통해 조금은 시들해진 열정을 북돋우면 어떨까.

책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두세 권을 함께 읽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나도 그 부류에 속한다. 관심 있는 책을 비슷한 종류보다는 다른 종류로 한꺼번에 (교대로) 읽는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게 읽다가 못 다 읽는 책도 꽤 많아서 집이나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 세 권의 책은 단숨에 읽었다.

<땅에 쓰신 글씨>라는 창조성에 관한 그의 책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음악가 마이클 카드가 쓴 <깨어지기 쉬운 반석>(IVP 펴냄)이라는 책이 첫 번째 책이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 대한 내용으로 베드로의 내면세계를 예술가답게 깊게 살피는데 그가 성경을 보는 안목과 깊이가 목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수준이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베드로의 내면과 정서를 예술가 특유의 감각으로 조망하고 있다. 서투를 수밖에 없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표현한 어설픈 사랑이 결국 성숙한 헌신으로 열매 맺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관심과 열정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책은 소설이었는데 레그 그랜트라는 미국 달라스신학교의 교수가 쓴 <소설 마르틴 루터 Ⅰ․Ⅱ>(홍성사 펴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설교학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창작법, 라디오 제작에 대해서도 강의하는 다재다능한 분이라는데 박진감 넘치는 소설을 썼다. 루터의 생애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해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인데 손에 잡으면 1권을 다 읽고 곧바로 2권을 잡을 정도로 흥미를 가득 담고 있다. 나의 책상머리 바로 앞에도 루터에 대한 책이 오래도록 꽂혀 있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예화 속에서나 단편적으로 만나는 루터라는 인물의 치열한 삶의 궤적 속에 나타나는 추진력, 그리고 한없이 깊은 인간미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또 한 권은 대전시향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혁신적 지휘와 열정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호평 받는 함신익의 <다락방의 베토벤>(김영사 펴냄)이라는 책이다.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그가 미국 이스트만 음대에 유학하던 중에 KBS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할 때 그 연주회에 가본 적도 있다. 보통 연주회장에 늦어서 들어올 기회를 주기 위해 처음에 연주하는 짧은 첫 곡인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부터 KBS 교향악단에게서 전에 들어보지 못한 멋진 음을 끌어내어 감탄했던 기억이 다시 난다.

이 책은 저자가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늦게 음악을 시작하고 단돈 200달러를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한국인 최초의 예일대학교 교수가 되고 세계적 지휘자가 된 이야기를 자선전적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어서 기독교적 채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지만 중간 중간 묻어나는 그의 신앙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10여 년 전에 그가 한 FM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 분이 힘든 유학 생활을 견디게 하셨습니다”라고 멋진 베이스 음성으로 고백하던 기억도 아직 새삼스럽다.

이 세 가지 책들을 교대로 번갈아 읽으면서 한 주제로 요약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1세기를 살았던 터프하지만 가슴 따뜻했던 사람 베드로, 그가 겪었던 주님의 열정. 16세기에 불꽃처럼 살다 간 개혁자 루터, 그가 마주쳤던 죽음을 몰아낼 담대함과 지혜. 21세기를 사는 멋진 크리스천 지휘자 함신익, 그가 보여준 범상치 않은 노력과 용기와 끼.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열정’이다. 열정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고, 그들을 향해 하나님이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하프타임의 계절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설레는 여름휴가를 고대하면서, 손에 책 한 권 잡고 가서 이 사람들의 멋진 열정을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