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일 / 직장사역연구소 부소장

벌써 몇 달 째 의욕이 없고 신나는 일이 없었다! 생업이랄 수 있는 글쓰기도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워 정수리를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나른한 봄이 지나 여름 들어서니 좀 나은 것 같기는 한데, 아마도 직장사역연구소 들어온 지 만 10년 되어가면서 찾아온 권태(boredom)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직장사역 주제로는 아직 배부른 소리지만 미국의 직장사역하는 동네에서는 중요한 주제라고 한다. 알파벳 순서로도 빠르고.

이제 조금씩 권태를 극복하고 있다. 아니 극복해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럴듯한 계기도 있었다. 지난 5월 31일 지방선거일에 바닷가에 다녀왔다. 우리 집에는 선거가 있는 날 새벽에 투표하고 아이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놀러가는 일종의 ‘전통’이 있다. 그 날도 일찌감치 가서 투표하고 마침 개표위원으로 나와 계신 큰아이 선생님과도 인사하며 눈도장을 확실히 찍고는(선생님이 부모님 투표 안하고 어디 가시나 감시하라고 했다나?) 충남 태안에 있는 연포 바닷가로 달려갔다. 시원하게 뚫린 길에 두 시간 반 남짓 걸려 도착해서 아이들과 잘 놀았다. 조개도 캐고 바위게도 수십 마리 잡고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고 탈피한 게의 흐느적거리는 것도 보았다. 물 빠져 나간 웅덩이에 갇힌 어린 망둥이도 여러 마리 잡았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게도 망둥이도 다 놓아주었는데 모래에 꽤 큰 구멍을 뚫고 사는 게(이름도 모르겠다) 세 마리는 가져왔다. 여러 차례 그 바다에 갔지만 처음 보는 제법 큰 게였고 키우기 힘들 줄 알면서도 아까웠기 때문에 욕심이 좀 생겼다. 그런데 그 게가 지금까지 잘 산다. 상처를 입은 한 마리는 일찍 죽었고 암수 한 마리씩 남았는데 수컷의 다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둘이 돌아다니다가 만나면 집게발을 들고 엉켜서 싸우는 것이었다. 덩치가 조금 작은 수컷의 다리가 결국 네 개 남았을 때 죽어버렸다. 닷새만이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녀석은 잘 살고 있다. 바다의 조건을 만들어주려고 3% 소금물을 정기적으로 갈아주고 최대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멸치와 밥알, 과일 등을 잘게 썰어 먹이로 주는데 밥알을 살짝 앞에 주면 집게로 잡아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 녀석이(이름이 게순이다) 자기보다 덩치가 적은 수컷의 다리를 하나씩 잘라 죽인 것을 보고는 화가 났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생존의 방법이었을 것 같다. 자기 영역이 있었을 테고. 또 이 녀석이 낮이고 밤이고 시간만 되면 그 30센티미터나 되는 통을 기어오르려고 기를 쓰고 열 개의 발로 벽을 긁어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한밤중에도 시끄럽게 굴었는데 꽤 소음이 컸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생존의 몸짓이었다. 하루 두 번씩 물이 드나드는 모래밭에서 물이 빠지면 굴을 파고 들어갔다가 물이 들어오면 막힌 굴 밖으로 나와서 먹이활동을 하는 부지런한 녀석이었으니 그렇게 열 개의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내가 부끄럽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어제는 나와 놀다가 다리가 하나 떨어졌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다. 2주 간 살았는데 앞으로 사는 날 동안에는 아마 그렇게 부지런한 활동을 하며 지낼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열정이었다. 게의 열정!

또 요즘 우리 부부는 큰 아이와 컴퓨터 때문에 신경전을 벌인다. 일주일에 다섯 시간 정한 시간이지만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온라인 큐티를 해서 그 시간만큼 시간도 연장하며 열심히 게임을 했다. 요즘에는 월드컵을 맞아서 네이버에 “&-붉은악마-&”라는 카페를 열어서 운영자가 되었다. 일주일 만에 30명이 회원 가입을 했다고 좋아하고 또 아빠 엄마도 가입하라고 해서 억지로(?) 가입했다. 그 카페에 또 자료를 올리느라고 한 시간, 두 시간 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 제 엄마의 속을 긁어놓는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열정이다. 그렇게 몰두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우리 아들은 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 그 열정을 잃었다. 고등학교 시절 좌우명을 생각해 보자면서 “진실, 순수, 열정”으로 정했는데, 그 열정이 부족하다.

정리해보면서 회복하려고 한다. 세상 살면서 비슷한 일 하다보면 권태가 느껴지지 마련 않겠는가. 권태기 보내며 쉴 만큼 쉬웠으니 그간 한 일들, 가정과 개인을 돌아보면서 앞날도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권태를 벗어나고 싶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작은 게 한 마리, 게임도 카페 운영도 눈치 보며 열심히 하는 아들을 보고 나도 열심히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