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일 / 직장사역연구소 부소장

전에 귀에 이상이 생긴 듯해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간 적이 있다. S대학의 부교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서를 벽에 붙여놓은 그 의사는 나의 귀를 들여다보면서 먼저 치료받던 한 아주머니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목구멍에 이물감이 있다고 호소하는 듯했는데, 의사의 말은 진료를 해 보니 아주머니의 귀에서 전혀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신경성일 뿐이니 그냥 돌아가서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 의사가 하는 말의 골자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뭔가 미련이 남는 듯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약국에 가니까 약을 지어주어서 여러 차례 먹었는데, 그때에는 차도가 있더란다. 그러자 그 의사는 나의 치료를 중단하고는,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그 아주머니에게 쏘아붙였다.

“아줌마! 약사가 뭘 알아요? 그 사람들이 뭘 안다고 식도에 이상이 있니, 기도에 이상이 있니 그래요? 약 팔아 먹으려고 그래요. 또 뭐 한의사들도 그러지요? 심장에 열이 난다느니, 기가 드세서 그렇다느니, 다 헛소리예요. 맥 짚어 보고 뭘 알아요? 그럼 아주머니, 차라리 안수기도 한다는 사람한테 가보실래요? 거기서는 뭐라 그러는가?”

가만히 듣고 있자니 화가 났다. 그 대학교수라는 의사는 그렇게 약사, 한의사에다 안수능력자를 싸잡아 팽개치면서 ‘양의사 절대 우위론’의 논리를 폈다. 그 의사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했다(?). 나한테도 카메라로 찍은 귓속 화면을 보여주면서 깨끗하니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귀 울림 현상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꼭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오! 교만한 양의사여! 우선 소설 한 토막을 읽고서 정신을 차리십시오. 바빠서 아마 이런 소설 읽지는 못하셨을 것 같은데 에릭 시걸의 <닥터스> 마지막 부분입니다. 의사 부부인 바니와 로라의 아들 해리가 RSS-리브 스트라스 버거 증후군이라는 신종병에 걸리게 되어 그 치료를 위해 애쓰게 됩니다. 바니와 로라는 가능한 방법은 다 동원합니다. 당시까지 밝혀진 치료방법으로 의사의 처방을 모두 받았고 개발 중이지만 아직 인체실험이 안된 효소를 투여하고 또한 바니의 옛 애인 아버지의 중국의학 치료도 받습니다(약과 침). 그리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그 아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기적적으로 아들의 신종병이 치료되었지요. 그 후 소설은 바니의 독백적 고백으로 끝납니다. 기적의 치료, 기적은 어떤 것으로 말미암았을까? 의사의 치료? 새로운 효소? 중국의 영약? 부모의 사랑? 바니는 일생의 대부분을 의학기술을 공부하느라 허비한 끝에 그제서야 자신이 인간이 몸이 치료되는 신비를 캐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의학이란 원인을 규명하는 끝없는 탐구에 불과하고 원인을 찾아 결과를 설명하려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이란 결코 기적을 규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이 양의사에게, 약사에게, 한의사에게, 또한 안수능력자에게도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 소설의 어느 대목에선가 나타나는 대로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것으로 단지 의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치료능력이 나타나기를 돕는 것뿐이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약사와 한의사 간의 싸움의 원인도 근본적으로는 귀한 인간생명에 대한 이러한 겸손한 자기성찰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약국과 한약방은 양자택일할 곳이 아니다. 상호공존해야 한다. 안수기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령의 능력에 의한 안수기도는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병자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틀림없이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은 존재한다. 또한 양의사나 약사, 한의사들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능력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 두 측면 역시 어느 하나만이 선택되어야 할 성질이 아니고 양자는 공존한다. 수많은 이적을 통해 병자들을 고친 사도바울은 아들 같이 아끼는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속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약으로 쓸 것을 권면하고 있다(딤전 5:32).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기해야 한다. 겸손히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다른 방법,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