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일 / 직장사역연구소 부소장

“당신의 직장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혹은 “당신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직장인들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해 간혹 어떤 설문조사를 보면 복잡하고 힘든 업무가 가장 어렵다는 대답이 간혹 더 많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조사에서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수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언제나 대인관계의 갈등 때문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직업 세계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실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인지 크리스천 직장인들 중에는 갈등이 있거나 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 취하는 자세가 ‘피하는 방법’인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격리된다고 크리스천들의 관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미봉할 뿐이다. 어떤 인관관계의 자리에서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갈등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을 피하기만 한다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아마도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갈등을 겪는 곳이 술자리일 것이다. 크리스천은 회식자리를 피해야만 제대로 사는 것인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격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자리를 계속 피하면 업무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하고 도태되기 쉽다. 또한 업무만큼 중요한 관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이것은 현실적인 필요성이기도 해서 우리는 회식 자리에도 사역하는 각오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식 자리에 가서 어울려 즐기면 된다는 것인가? 아니다. 참석하되 구별되는 것이다. 술자리에 가서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가능하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고 이방신의 제사에 오염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했던 것처럼(단 1:8) 노력하면 구별이 가능하다.

술자리에 참석해서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거나 회식이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 우거지상으로 앉아 있지 말아야 한다. 아예 자기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공언을 하며 술 대신 음료수를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서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회식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제 침 묻은 술잔 돌리고 험악하게 마시라고 강요하는 것으로나 권세를 부려보려는 졸장부 상사들이 남아있는 못된 직장들이 아직은 더러 있긴 하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또 다른 대처가 필요하지만 이제 많은 직장에서는 그토록 가혹한 술 강요 문화가 조금은 완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어쨌든 한 번 작심하고 놀아보는 것이다. 적당한 우스갯소리도 준비할 수 있다. 술 취한 사람들 틈에서 말짱한 정신 가지고 있으면서 미리 기획한(?) 이야기 보따리를 몇 개 풀어놓으면 사람들은 크리스천 동료를 뭔가 다르게 본다. 뭔가 튀긴 하지만 쉽지 않은 술자리에 참석해서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가상하게 보면서 ‘동지’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직장 생활 해보지 않은 목사가 겪은 본격적인 회식 자리라곤 군대 시절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군종병으로 주일에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입장이었지만 회식 자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안주(라고 해봐야 김치 조각이었지만) 먹으며 주로 노래를 불렀다. ‘상록수’,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러 등의 색깔 있는 가요부터 가곡에 뽕짝, 나중에 할 것 없으면 복음성가도 그럴듯하고 티 안 나게 부르면서 어떤 때는 한 번 회식에 한 열 곡 쯤 불렀던 것 같다.

어쩌다 파견을 나가거나 출장을 가서 회식에 빠진 때에는 고참병들이 “원 상병 없는 회식은 재미가 없다”고 성화이기도 했다. 떠들며 노는 것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회식에 참여해주니 우리 내무반 동료들은 본부 행정병들이라 늘 바빴는데도 교회당을 지을 때 사역병으로도 자원해주고 부대원 절반이 훈련 나가 예배가 썰렁할 때는 억지로 예배에 나와 주기도 하면서 서로 품앗이를(?) 했다.

돈 들여 마시고 다음날 속 쓰려 고생하는 그 술을 왜 마시는지 잘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람들이 너나없이 술자리의 분위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한다.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기에 술기운을 핑계로라도 상사를 욕해보고, 하고 싶었던 말 다 끄집어 내뱉으며 추한 꼴 다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진정한 의사소통을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그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전도연, 고두심이 나온 한국 영화 <인어공주>가 바로 이 소통을 말한다. 과거 아름다운 연애시절을 보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팍팍한 삶 속에서 소통의 도구를 잃어버린다. 결국 우체국에 다니며 어려운 집안 살림까지 걱정해야 하는 나영이 20세 시절의 어머니를 만나는 판타지를 경험하면서 의사소통에 대해 이해한다. 이 영화는 공부나 일과 같은 필수적인 인생의 과정과 모처럼 찾아온 해외여행의 기회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의사소통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 부부간의 소통이 필요하듯이 직장 안에서도 의사소통이 부족해 갈등과 문제가 생긴다.

한 달이면 스무 날 이상을 하루 종일 보고 지내는 직장 동료들이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너무나 모르고 있는 부분도 많다. 그러니 회식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사역’이다. 그뿐 아니라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잡담을 하면서, 특히 남자 직장인들은 동료들이 커피 마시며 담배 피우는 빌딩 밖 모퉁이 등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의사소통이 결국 인간관계를 제대로 세우는 기초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는 두 번 더 들으면 백번 듣는 옛날 이야기가 꽤 있지 않은가. 그것 들어드리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 큰 효도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도 윗사람의 젊은 날 무용담을 들어드리면 어떻겠는가. 동료들의 허풍이 분명한 군대 얘기, 못들은 척 들어주면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사소통으로 직장 공동체도 살 수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어울려볼만한 사람들로 인식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결국 인간관계를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전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