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근 목사/ 열린문교회, 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자연은 해마다 여러 번 옷을 갈아입습니다. 지역에 따라 일 년에 한 번쯤 옷을 갈아입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년 네 차례 정도 옷을 갈아입습니다. 금년 봄에도 새 옷 갈아입기가 한창입니다. 벌써 우리 동네에는 개나리와 목련이 예쁘고 우아한 화의(花衣)를 입고 한껏 뽐을 내고 있습니다.

자연은 순리입니다. 새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묵은 옷을 벗어버리는 데에 결코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새 옷을 입을 때에는 고집도 아집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순응합니다. 단단한 참나무도, 찌르는 가시나무와 가시 넝쿨도 새 옷을 갈아입는 데에 아무소리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며 기꺼이 자신을 벗기는 데에 순응하며 침묵합니다.

잃어버림을 통해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진리가 자연 속에는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옷은 자기에게 맞아야 합니다. 잘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며 힘이 듭니다. 사치하는 것이 아닌 이상, 옷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이어야 하고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비싼 옷의 값어치는 자신에게 맞을 때입니다.

제가 대학에 있을 때엔 교수로서 가운을 입어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학사일정에 따라 학위가운을 입고 학생들 앞에 서거나 행사장에 나타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박사가운과 박사 캡이 멋지게 보여도 아무데서나 착용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명예스러운 것일지라도
환경을 거스르면 좋은 것도 눈살을 찌 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옷을 잘 입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구색에 맞는 것을 요구합니다. 적당한 색(Colour)과 디자인이 어울려야 좋아 합니다. 농부가 매일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들녘에 나간다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정신 이상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입니다.

반대로 도시의 현대식 건물 안에 있는 일류기업의 회사원이 아침에 흙이 묻은 옷에 깨끗지 못한 수건을 두르고, 양말도 신지 않고 까만 고무신에 냄새나는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면 이 또한 어색하고 맞지 않는 모습일 것입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은 빨리 그 옷을 벗고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을 줄 알아야 수치를 면합니다.

옷이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옷은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는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검은 색깔의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다만 장례식에는 검은 넥타이를 매고 결혼식에서는 흰 넥타이를 맬 뿐입니다. 이것이 상주에게나 혼주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예식에 참석할 때에는 어울리는 옷을 입고 가는 것을 예의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옷을 바르게 입지 않고 잔치에 왔다가 쫓겨난 사람이 있습니다. 잔치 집에 입고 와야 할 옷을 입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입고 왔다가 주인에게 들켜 종들에게 강제로 끌려나와 바깥으로 내 던짐을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이 입혀주시는 의(義)의 옷을 입지 않고 자기 의(義)의 옷을 입고 버티는 사람을 향한 주님의 심판적 선언을 의미합니다. 좋은 옷을 입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자신에게 걸 맞는 옷을 입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옷은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자연도 계절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하는데 세상에 인간만큼 멋을 아는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다니면 자기 가족이 욕을 먹습니다.

신앙과 교회생활도 옷을 갈아입어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땐 과감해야 합니다. 갈아입지 않고 케케묵은 옷을 고집할라치면 사람들도 비웃지만 하나님도 안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의 옷까지 갈아입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새 옷을 입는 것은 자유입니다. 새 옷을 입는 것은 멋입니다. 새 옷을 입는 것은 큰 변화입니다. 교회도 때가 되면 품위 있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더기 같은 옷을 벗고 품위와 멋,
나다움의 새 옷으로 갈아입기 원하는 목사 박종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