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랍비가 와서 어찌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예수께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에 랍비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누가 이웃입니까?” 라고 다시 물었다. 이에 예수께서 그 유명한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당대 가장 거룩한 일을 보고 있다는 제사장, 레위인이 그냥 지나쳤지만, 가장 멸시 천대 받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치료해주고 보살펴주었다. “누가 네 이웃이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랍비는 볼멘소리로 사마리아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 예수께서는 너도 이같이 하라며 랍비를 돌려보냈다. 여기까지 우리가 잘 아는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 가정1 -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그 후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본다. 사마리아인은 장사치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매일 다니는 사람이다. 예수님께 칭찬도 받고 기분 좋은 마음에 다음날 길을 나섰는데 또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다. 사마리아인은 흔쾌히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을 한 달에 5~6번 만난다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이 갑부도 아니고 갑부라도 다 도울 수 없는 상황이다. 사마리아인은 고민에 빠졌다. 돕자니 한계가 있고, 그냥 지나치자니 예수님께 칭찬받은 것도 맘에 걸리고, 뒷길을 찾아보니 돌아갈 길도 없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지역에 왜 강도 만난 사람이 많을까? 강도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강도는 왜 많은가? 다른 지역보다 특별하게 나쁜 사람이 많아 강도가 많다면 치안을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현상이라면 치안만으로는 안된다.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가 어렵다고 모두 강도가 되지도, 또 강도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다.

# 가정2 - 공무원 부정부패가 경제를 망친다

필자가 조금 관련을 맺고 있는 서울역 근처의 ‘나사로의집’이라는 쪽방․노숙자 사역단체의 말에 의하면 98년 IMF가 터지자 서울역 근처 노숙자가 평소 3백~4백 명 선에서 10배나 많은 3천~4천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네 부모님들이고 삼촌, 고모들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서민 어려움은 가중되고, 실직자가 늘어나고, 실직하면 사회안정망이 취약한 현실에서 노숙자들이 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배고픔에 거리에 나서는 강도들도 증가한다. 실제로 사회안정망이 취약한 국가가 범죄율이 현저하게 높다.

경제의 어려움은 정치 부패와도 연결되어 있다. 정치권의 부패는 우리 사회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 사회를 복지부동(안동) 하도록 한다. 고위 공직자의 줄서기는 하위직 공무원들을 부정부패에 연루되게 하는데, 이런 과정에 현장 치안과 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현장공무원 들의 근무태만과 촌지, 뇌물 등에 의한 비리 사슬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 고위 공직자, 현장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경제를 어렵게 하고 다시 이런 악순환은 반복된다. 어디선가 이 고리는 끊어야 하나 현장에 있는 개인이 이런 부패 구조를 이해한다고 해도 이를 해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 가정3 - 사마리아인 투서로 부패 공무원 추방된다

사마리아인은 주변에 장사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빌라도와 로마 헤롯왕에게 투서를 보낸다. 로마왕은 그렇잖아도 빌라도가 맘에 안 들었는데, 속국 이스라엘에 민란이 날까 두려워하여 특별감사를 지시해 빌라도를 해임하고 후임으로 아르그립바왕 2세를 보낸다. 후임 총독은 취임하면서 3진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부정부패에 3번 연루되면 퇴진 시키겠다는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설마 했지만 아그립바왕 2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고위공직자들부터 기강이 서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장 공무원들도 원칙과 규정에 따라 공무를 처리해 나갔다.

자 어떻게 되었겠는가? 강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강도가 없어졌겠는가? 그렇지 않다.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사회주의자들은 인간 스스로가 이성적 진보로 이 땅에 완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착각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 땅에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선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최선을 다해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달에 5~6번 강도만난 사람을 만나 고민하던 사마리아인은 이제 2~3달에 한번 정도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난다. 혼자 돕기도 쉬워졌고, 주위에 이 일에 참여했던 동료들이 조금씩 도와 개인적으로 큰 부담없이 여전히 선한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강도 만나 자 돕는 일과 줄이는 일 함께 해야

위의 이야기는 물론 지어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있을 수 있고, 현재도 진행되는 사건이다. 강도만난 사람을 돕는 일과 강도를 줄이는 일은 함께 가야한다. 무엇이 우선이라고 해서 어느 일방을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달란트에 따라 그리고 부르심에 따라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둘을 복음전파와 사회참여라 해도 좋고, 사회복지적 참여와 정치사회적 참여라고 해도 좋다. 이 둘은 로쟌언약에서 이미 고백한 바와 같이 선택은 할 수 있으나 한쪽만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무이다.

흔히 기독교인이 제도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개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며, 선을 행해야 하는 믿음의 의무가 부가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도는 누가 만드는가? 어디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악한 사람이 악한 제도를 만들고, 선한 사람이 선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과부, 고아, 나그네 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선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도란 그렇게 크고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한 제도, 성숙한 시민의식 모두 필요

예를 들어 예전에 우리는 은행에서 줄을 서서 업무를 보았다. 줄은 운이다. 그러기에 줄을 서다 새치기도 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문제 때문에 자주 험담이 오가기도 하였다. 그때는 기초질서 지키기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은행에 번호표가 등장한 이후 3류 시민으로 영원히 지켜지지 않을 것 같은 기초질서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시민들은 1등 시민이 되었다.

제도는 이렇게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양태를 바꾸어 놓는다.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을 더욱 좋게, 나쁜 사람을 바꾸어 가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기에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고, 날마다 회개하며 돌아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