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의 ‘주기도문-사도신경연구특별위원회’가 새롭게 번역해서 내놓은 새번역안에 대해 일부 기독여성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국여성신학회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등 여성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의 번역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오히려 개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8월 30일에 개최된 주기도문 관련 공청회 모습

여성신학자들은 지난 8월 30일 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한 공청회에서 100인 서명을 통해 “주기도문 원문 ‘σου’에 따른 바른 번역인 ‘당신’을 ‘아버지’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가부장적 정서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며 “새번역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위해 시작한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고 또한 양성평등의 원칙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신학자들의 반발은 번역을 하는 위원 59명 모두가 남성 신학자들이나 남성 목회자들만으로 구성되어 이미 형평성이 어긋난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아버지’라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가부장적 아버지상’으로 하나님을 고착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양성평등에 적합한 언어를 선택해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측은 ‘하나님 아버지’는 이미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단 추천에 따른 번역위원 선정이라는 차원에서 여성 참여를 인위적으로 막은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여성신학자들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호칭을 ‘가부장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한다. 그동안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억압과 차별을 받아온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악습은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하는 것과 가부장적 권위주의 청산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주기도문이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인간의 성 구별 차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일부 여성신학자들이 양성평등 차원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의 ‘성’이라는 틀 속으로 집어넣으려는 편협한 잣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성적 구별이 아니라 ‘신적 호칭’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 가운데 이루어진 자녀로서의 호칭이다. 요한복음 20:17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자들에 대한 호칭을 “내 형제”라고 하신다. 또한 처음으로 “너희 아버지”라고 언급하신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후 형성된 믿는 자들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자녀의 관계로 우리를 부르셨다. 물론 이 때의 자녀의 관계는 예수님의 ‘내 아버지’와 차원이 분명히 구별된다.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하신 적이 없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휘오스’라는 성부와의 독특한 관계를 통한 신적 속성으로서의 제2의 위격이신 하나님의 위치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양자된 ‘테크나’로서의 자녀관계일 뿐이다. 이 자녀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가 묶어주신 하나님의 자녀됨이다. 바울 역시 우리의 자녀됨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과 함께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갈 4:4~7)고 밝히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호칭은 가부장적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발제자 최영실 교수

이날 공청회에서 최영실 교수(성공회대)는 성경을 두고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 언어와 표상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전제한다. 최 교수는 “페미니스트적 성서해석은 성서 안에 들어있는 가부장적이며 성차별적인 문화유산과 표상들, 남성 중심의 성서 번역의 문제를 크게 문제 삼는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성서는 분명히 가부장적 시대의 산물이며 남성 저자에 의해 쓰인 것으로 성서 안에는 2000년 전의 팔레스틴의 가부장적 문화유산들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의 말은 매우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만약 예수님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태어난 메시아였다면 어떠했을까? 성차별을 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남성들로 구성된 저자들만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이런 질문 속에서 일부 여성 신학자들이 제기하는 양성평등의 성경해석에 대한 전제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여성신학자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성경을 초월적인 하나님에 의해 저작된 계시로 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즉 성경은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오류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기독여성이 직접적인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분히 자유주의신학이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발상으로 접근하려는 인상이 짙다. 다시 말해 성경의 영감성이나 무오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인본주의적인 성경관을 가진 이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기독여성들이 제기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의 번역문제는 결국 그 전제 자체가 과녁을 벗어난 논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독여성들이 주장하는 ‘당신’이란 말 대신 ‘아버지’를 삽입한 것은 원문 번역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정서상 ‘당신’이라는 단어는 3인칭 극존칭으로써 사용됐을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직접으로 상대방에게 호소하기 때문에 존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당신’이라고 쓰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서상 ‘당신’이라는 말은 직접적인 대화 가운데 높은 분을 향해 사용되면 결례가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공청회 현장에서 발제자들이 “기득권을 둘러싼 대립이고 갈등”이라고 표현한 것은 마치 투쟁을 통해 유혈 투쟁을 하려는 결전항전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둘러싼 갈등의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됨의 의식 가운데 양측이 열린 대화를 통해 풀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