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 코미디언

▲ 자원봉사에도 열심인 이용식 집사

딸 수민이는 작년에 중학생이 되었다. 수민이는 내가 하나님께 다가 갈 수 있도록 인도한 천사다. 솔직히 수민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다. 물론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부모님이 오래전부터 신앙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래서 내 신상 기록부의 종교란에는 항상 기독교라고 적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물어올까 봐 걱정을 할 만큼 성경에 대해 무지했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무지한 말썽꾸러기

하지만 어렸을 때 나는 교회에서 무지하게 말썽을 피우던 아이였다. 목사님이 설교하시던 강대상의 꽃병을 깨뜨린다거나 피아노 페달을 부러뜨리는 등 말썽을 도맡아 저지를 정도로 교회의 문제아였다.언젠가는 전도사님이 설교 시간에 내게 느닷없이 질문을 하셨다.
“이용식, 여리고성은 누가 무너뜨렸지?”

난 그 말에 화가 났다.

“전도사님은 왜 맨날 나만 갖고 그러세요. 여리고성은 제가 안 무너뜨렸단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교회는 부모님 따라 열심히 다녔지만 진실한 믿음과는 거리가 먼 성전 뜰만 밟는 신앙을 소유한 것이 나였다.

코미디언 되면서 신앙생활 게을리

더구나 1974년 MBC 코미디언탤런트 1기로 방송에 출연하면서는 방송을 핑계 삼아 주일 예배를 빼먹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돈벌이가 재미나고 메뚜기도 한철인데 싶어 하루 저녁에도 밤업소를 여러 군데 뛰어다녔다. 곰 잡는 것처럼 담배 연기 자욱하고 온통 먼지가 뿌연 밤업소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타락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노래와 음담패설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에 나는 결혼을 했다. 아내 역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내 신앙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며느리가 될 사람의 종교에 관심을 가지셨다.

“며늘아기 될 사람은 종교가 뭐냐”
“교인은 아닙니다.”
“그래 그거 아주 잘 됐구나”
“아니 잘 됐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는 며느리 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좋아하셨다.
“아 결혼하면 우리 기독교로 올 것 아니냐? 그러니 잘 됐지.”

어머니는 나보다 더 한 수 위였다. 어머니 말대로 아내는 결혼 후에 교회에 출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불쌍해 보였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시어머니 따라 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풍경을 생각해 보라.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더구나 맨 앞자리에서 졸다가 시어머니가 쿡 찌르면 고개를 드는 예배당 풍경은 아내에게는 고역 중에 고역이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 주위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된 부부였지만 결혼을 한 뒤로 우리에게는 그늘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이다. 아이 없이 보낸 시간이 8년이었다. 처음에는 견딜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바심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원인을 의학상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조사를 해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아이가 없다는 소문 때문에 우리 집은 하루가 멀다고 라면박스 정도 크기의 소포가 배달되었다. 배달되는 내용물은 십중팔구는 한약이었다.

“이용식 씨, 아직까지 아기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한약을 보냅니다. 돈 걱정 마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만약 아이가 생기면 부산에 있는 00한의원에서 약을 먹었다고 방송에서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한의원에서 약을 보내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한약 먹고 아이가 들어설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몇 개월은 한약을 달여서 아내에게 먹게 했다.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하기야 그렇게 해서 아이가 생길 요량이라면 하나님은 폼으로 계시겠는가?

아내가 임신 위해 40일 새벽기도

아기가 생기지 않자 집안의 분위기는 점점 썰렁해졌다. 그러다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집안 분위기는 으시시해 지고 살얼음판 같아졌다.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닌 가운데 내가 당시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은 ‘뽀뽀뽀’였다. 유치원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방송이었기 때문에 집에 와서 방송을 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아내가 방송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속상해 할까봐서 그랬다.

남의 집 돌잔치나 백일잔치에 아기 옷 많이 사다주면 아이가 생긴다는 말을 믿고 동료 코미디언 집의 잔치 때마다 미련스럽게 많은 옷을 사다주었다. 아내도 전에는 목욕탕에서 배가 불록해진 여자를 보면 ‘저게 무슨 창피야 집에서 대충 씻지’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목욕탕에서 배부른 여자만 봐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방송국 코미디언실에서도 동료 코미디언들이 서로 자신들의 아기 자랑을 늘어놓고 떠들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말을 멈추거나 재빨리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리곤 했다. 부자연스런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속상했다.

아이가 없는 것으로 인해 녹화를 마치고 밤늦게 들어가려면 나는 언제가 현관문 앞에서 집안 분위기를 파악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가끔은 거실에서 아내와 장모님이 함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이유는 뻔했다. 기도소리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대문 밖을 나와 동네를 배회했다. 그러다가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난데 지금 집으로 들어 갈거니까 밥 좀 차려놔. 배고파 죽겠어.”
그럴 때면 아내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우리 집에는 아이가 없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새벽녘 집사람의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내는 벌써 옆에 없었다. '화장실 가는구나' 그러나 기다려도 아내는 방으로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대신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락동 시장에 가는 건가?’ 잠들려고 하는데 침대 머리맡에 성경과 찬송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아내가 새벽기도를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는 나 몰래 새벽제단을 쌓으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마치 한나처럼 말이다. 아내는 교회 여러 분들과 함께 교회에서 40일 새벽예배를 드리기로 약속하고 날마다 새벽에 함께 기도해왔던 것이다. 나는 40일 새벽기도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40일은 무슨 40일이야. 며칠 하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기도하는 이들의 기도 열기는 그렇게 쉽게 사그라질 기세가 아니었다. 새벽이면 아내가 부스럭거리며 성경찬송가를 챙겨드는 소리를 마냥 모른 척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도 아내와 함께 새벽길을 나섰다. 전날 밤늦게까지 녹화를 마치서 파김치가 되었다 하더라도 일어나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인적이 드문 서울 평창동의 새벽공기는 언제나 맑았다. 새벽길에 들을 수 있는 차 속의 찬송가 소리는 아내와 함께 가는 새벽길의 행복함을 더해주었다.

딸 수민이는 하나님의 축복

▲ 이용식 집사는 자신의 신앙이 결혼 후 딸 수민이가 생기면서 깊어졌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녹화를 마치고 피곤에 지쳐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가 무지하게 폼 잡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식사해야죠?”라고 하면서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그렇게 앉아있는 것이 별스럽게 보였다.

“뭐해? 밥 주지 않고, 나 배고파”
그런데 아내는 여전히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거리며 “배고픈 사람이 차려 먹지”라고 대답했다. 무지 배고픈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대꾸 소리에 무지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냈다.

“뭐해 장난치지 마”
“큰소리치지 마! 몸 울려.”
“그 작은 몸 울려 봤자지…”

펑퍼짐한 내 몸처럼 신경이 둔한 나는 아무 생각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침대 옆에 작은 아기 옷이 곱게 접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서야 낌새를 챘다. 거실로 뛰어나왔다. 아내는 벌써 굶은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아내의 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물론 아내의 배가 놀라지 않게 살짝 안겼다.

‘아!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셨구나.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 계셨구나. 나는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라고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엄청난 축복을 주셨구나.’
참으로 애타게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딸 수민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