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사모(비전사모센터 상담실장 / 천안대학교 기독교상담학 강사)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에 ‘불구경과 싸움구경은 해야 맛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절대 나오지 않던 사람들도 한 길 건너편에서 불이 났다면 먹던 밥상도 내 팽개치고 달려가 구경할 것이다.
 집에 불이 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 내 집에 불이 나서 가재도구와 모든 귀중품, 심지어는 가족까지 그 안에 갇혀 있는데 이웃 사람들은 수군수군대며 구경만 하고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걱정 마 다시 시작하면 돼지” 이런 말 따위는 정말 그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큰 상처를 입은 그에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몇 년 전 KAL기 괌 추락사건에서 의사인 사위를 제외하고 일가족(아내, 자식, 장인, 장모)이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모두 죽었던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의사가 졸지에 온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에 관심을 보이는 대신 이 사람이 얼마의 보상금을 받게 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보였다.

타인의 당한 고난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 상담자라 하면서 크리스천이라 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모습이다.
상담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들어주기(경청)과 함께 느끼기(공감)다. 사실 상대방의 문제를 함께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들어주기에 실패하게 된다. 그의 입장에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귀는 자동적으로 닫히게 된다. 지겨운 이야기로, 쓸데없는 이야기로, 한심한 이야기로, 답이 없는 이야기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정 엄마와 한 집에서 살던 친구가 친정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결별을 하고 친정 식구들이 자신과 남편에게 준 모욕과 상처들로 인해 몸서리치고 있었다.
오래 사귄 친구라 그 가족의 형편과 사정을 알고 있던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 일평생 의존중독으로 살아온 그 친구를 대할 때마다 “왜 저렇게 살까?”라는 문제의 시각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수시로 전화하고 한 번 전화하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마냥 얘기하던 친구, 그때 나는 그 친구가 누군가에게 SOS를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도리어 아무리 조언해도 자신의 행동을 고치거나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보지 않으려고 했던 그 친구가 못내 못마땅하고 귀찮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주변사람만을 비난하던 그녀에게 나는 “잘못은 너에게 있다.

네가 먼저 달라져야한다”라고 요구했고 그럴수록 그 친구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냈고 그 이후로 그 친구를 만나면 우리는 서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의 상처를 회피하고 있다.
그냥 들어주는 일,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는 아주 쉬운 일을 왜 하지 못했을까? 때로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꺼리게 된다. 자신의 실패나 문제에 대해 비난받거나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때 그 친구는 자신을 판단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터질 것 같아 바늘만한 구멍이라도 있으면 덜 아프고 덜 괴로워 나에게 그 바늘구멍의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지 못했었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들어주자, 아무런 판단과 비난 없이 그냥 들어주는 것이 그에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과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드린다.
“주 예수님 당신의 팔에 어린아이를 안아 주셨던 것처럼 매우 심하게 상처받고 있는 당신의 자녀를 당신의 무릎에 앉히시고 안아 주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시며 그의 큰 상처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를 받아주시고 당신이 그와 함께함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려 주십시오.”(D. A. 씨맨즈, <상한 감정과 억압된 감정의 치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