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식 목사 / 수원교회 (1)

6·25 한국전쟁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일곱 학급이 있는 전학년에서 일등을 하면서 우리 반에서는 반장이기도 했다. 28일 아침 인민군에게 점령된 서울거리에 자기의 키보다 더 큰 장총을 끌듯이 메고 들어온 인민군들을 우리는 보았다. 그날의 충격은 컸다. 그토록 큰소리치던 대한민국은 초라하게 무너져 내려갔다.

참전했던 중공군이 물러가고 다시 수복된 서울거리에 들어오니 골목엔 깡패들이 들끓고 빌딩들은 다 무너진 폐허뿐이었다. 모태신자이고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의 모범생이며 성탄절에 많은 상품 타는 것을 자랑으로 알던 나는 어느 사이에 사춘기 고1 학생이 되어 있었다.
어느 주일 학생예배를 마치고 친구 H군의 제안으로 신수동의 한 작은 교회에 놀러갔다. 아직 장년예배가 끝나지 않아 맨 뒷자리에 앉았다.

좀 무섭게 생기신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다같이 통성기도를 하는데 내 옆자리에 있는 나보다 어린 소년 소녀들이 소리를 내어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엘 다녔으나 기도를 할 줄 몰랐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 교회는 내가 다니던 교회와 다른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산까지 피난 가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서울에 와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는 인생이 공허하고 무의미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어린 소년소녀들을 강력하게 기도하도록 하는 힘이 있어 보였다. 나는 당장 그 교회로 옮기고 새벽기도회에 출석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 교회가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신수동 성결교회였고 담임 목사님은 고 윤상현 목사님이시다.
윤상현 목사님은 중생(重生)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분의 설교 중에 든 예화로서 어떤 목사님이 설교 때마다 중생을 강조하니 성도들이 듣기 싫다고 배척하여 송별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송별예배 설교시간에도 ‘중생’ 설교를 하여 전 성도가 회개하고 목사님을 다시 모셨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으로 나는 삼각산의 임마누엘 수도원, 철원 수도원 등 기도원에 자주 가서 밤새 기도하곤 하였다. 자연히 전도의 불이 붙어 학생들을 이끌고 축호전도를 하다가 심방 중이던 동막장로교회 김동수 목사님과 권사님을 세워 놓고 열심히 전도하던 에피소드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어린 나이에 목사님의 신앙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어린이들을 열심히 지도하는데 목사님은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에 어린이들이 무용이나 연극 같은 것을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고 아이들이 연습을 위해 소란케 하면 교회를 속화시키는 것이라고 책망하셨다. 나는 이 문제 즉 어린이 교육에 대하여 목사님께 이견을 말하기도 했다.

마침 이때 기성과 예성의 분열이 진행되었고 서울신대에 진학한 나는 기성측으로, 목사님은 예성측으로 갈라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나는 목회 40여 년의 목사가 되고 윤상현 목사님은 소천하신지 여러 해가 되었다. 목회 현장에서 온갖 경험을 겪는 동안 나의 신학은 점점 보수적 경향을 띄게 되었다. 내가 속한 교단과 교단 신학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우리의 복음주의적 전통을 무시하거나 후배들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보이면 자주 제동을 거는 보수 골통 역할을 자임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 윤상현 목사님은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교단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만 관심을 보이셨다. 후에 안 일이지만 목사님은 젊은 시절에 직장을 대표하는 테니스 선수셨고, 단소를 불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재동이셨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의학기술로 치유 불가능한 백혈병을 선고 받고 오직 기도로 투병하여 신유의 은총으로 치유를 받았다. 이 놀라운 체험이 그로 하여금 ‘잡다한 것들’을 거부하시게 된 이유인 것이다.

나는 그분 밑에서 중생을 체험하고 기도의 신비와 능력을 배웠다. 그 후 나는 그분의 신앙노선을 따라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기능을 구비한 목회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들에 부닥칠 때마다 그 어른이 보여주신 기도의 자세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는 신학을 좀 배웠다고 공부를 좀 했다고 그 어른의 단순하고 보수적인 신앙을 비판하고 그분 밑을 떠났던 배은망덕한 자이고 목사님을 아프게 했던 자이다.

강단에서 여인들의 파마(?)머리와 입술 화장을 거침없이 공격하시던 그분, 지옥과 천국을 전하시고, 요한계시록을 통해 종말시대의 국제정세를 담대하게 설파하시던 그분이 그리워진다. 그분에 비하면 너무 문화적 때가 많이 묻은 나이지만 여전히 성결교회 목사의 긍지를 지니게 하신 분이 바로 고 윤상현 목사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