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사모 / 청성교회

아버지 하나님!
오늘 큰일이 생겼어요. 4년의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날이거든요. 그런데 그 동안 사귀어오던 남자가 졸업 전에 약혼식을 올리자는 거예요. 이 큰 숙제를 안고, 시골집에 내려갑니다. 호남선 무궁화호 입석에서 흔들거리며 8~9시간을 덜컹거리며 내려가야 김제역에 해 저물녘에나 도착하게 됩니다.

딸이 여섯인 중에서 넷째인 나에게 서울에서 등록금이 제일 비싼 연세대학에 보내주셔서 4년을 공부시키셨고 시골 농사꾼인 부모님께서 하늘만큼 자랑하고 싶은 딸이 4년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간다고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허탈감이 쌓일 텐데요. 어떡하죠? 물론 제가 갖은 노력을 해서 객지 서울에서 버텼지만요.

방학이 되면 다음 학기 등록금은 어떡하지? 그 방학이 즐겁지 않았죠. 또 새학기가 되면 서울역에서 어디로 머리 두르고 가야 할지 정처 없었죠. 배고픔, 숙소, 등록금 3중고를 모르고 대학생활을 해보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거든요.

물론 여중고 시절도 마찬가지였지만요. 읍도 아니고 리 단위인 시골 마을! 초등학교로 만족했던 다른 친구들을 뒤로 하고, 저는 전주시라는 교육도시에서 6년을 거쳐 서울 대학생활 4년, 10년째. 이 고달픈 생활을 해왔습니다.

이젠 저도 지쳤어요. 취직해서 봉급 받고, 아늑한 거처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싶은데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내 인생이 방향 전환이라니요? 물론 그 남자가 싫지 않고 좋아요. 오히려 나로선 혼자보다 그분과 함께라면 더 행복하겠지요? 이런 나와 늙으신 부모님과는 틀리잖아요.

해가 뉘엿거리는 저녁 때 김제 호남평야 들녘에 자리 잡은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땐, 많은 음식을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년의 유학생활의 고달픔과 배고픔을 보상해 주려는 듯했고, 이젠 4년이 끝났으니, 곧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의 심정 같았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떡하면 좋아요? 어머니 소망이 다 무너질 텐데요.

밤! 촛불 밑에서 자초지종의 설명을 드린 순간, “대학졸업식이고 뭐고, 모두 그만둬! 이 정도면 목사부인으로선 넘쳐….” 촛불이 꺼지는 볼멘소리였고, 나의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큰소리로 화를 내셨어요. 당연하죠. 내가 부모라면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거예요. 형제들 눈초리는 실망과 좌절, 비웃음과 배신감으로 더 심했어요. 7남매 중 유독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대학까지 나온 나의 앞날에 드리운 그늘을 보면서 고소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었어요.

나 스스로도 내 맘을 어떻게 추스려야 될지 막막했습니다. 모든 꿈을 접고 아주 평범한 길, 결혼의 방향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 하느냐, 취직을 하느냐, 갈등과 고민으로 머리가 벌집을 쑤셔 놓은 듯했습니다. 3가지 길을 다 놓치고 싶지 않았지요. 이미 대학원 시험은 치러놓았지요. 장학금 문제가 걸려있긴 하지만 취직은 더 막연했었습니다. 60년대는 여대생의 80%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들 했고, 더 심한 여대생들은 대학 1, 2학년 때 좋은 신랑감 만나는 일을 생각했지요. 내 앞에 놓여 있는 3마리 토끼를 어떻게 하면 다 잡을 수 있을까요?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죠.

“아버지 하나님! 나에게 등불이 되어 인도 하옵소서”라는 깊은 기도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