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식 목사 / 수원교회 (3)

사실 교역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일정한 교과과정에 따라 교육을 받지만, 막상 목회현장에 나가면 무얼 배웠는지 적용할 만한 것들이 없어서 앞이 캄캄하다. 내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현장에 나갔을 때 내게 잊을 수 없는 지침이 되고 교훈을 주었던 분이 있다. 그분이 바로 박명원 목사님이다.

박 목사님과의 관계는 나의 목회 초년시절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 총각전도사로 강원도 횡성군의 어느 산골교회에 부임하였을 때 목사님은 우리 교회의 치리목사로 일 년에 한두 차례씩 오셨다. 세례문답과 세례예식, 성찬예식, 그리고 사무총회(공동의회)를 진행해 주셨고 나는 옆에서 준비하고 거들면서 하나하나를 배웠다.

그 후에 박 목사님은 나를 담임목회하는 원주제일교회의 교육담당 전도사로 일하게 하시고 그분의 자녀들과 함께 지내도록 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서울로 훌쩍 떠나시면서 어린 나에게 원주제일교회 설교와 목회를 맡기심으로 6개월간 전도사로서는 분에 넘치는 규모의 교회를 목양도 했다. 내가 좀 더 공부하려고 서울에 왔을 때 그분은 나에게 지금의 아내를 중매해서 평생의 반려로 성공적 가정을 이루도록 해 주신 분이니 내 인생에 있어 어찌 소중하지 않은 분이랴.

박명원 목사님은 함경북도 영흥(永興)이 고향이신데 정든 고향 버리고 남으로 피난 와서 구두수선 등으로 아르바이트 하며 서울신학교를 졸업하시고 목사가 되신 분이다. 한 번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신 적이 없어도 그의 성격 탓인지 몸이 뚱뚱하고 호탕하며 마음이 여유가 있고 생각이 넓으신 분이다.

나는 그분에게서 마음과 가슴이 넓은 지도자 상을 보았다. 항상 그의 가정에는 젊은 목사들과 전도사들이 모여 들었다. 그는 젊은 교역자들과의 대화를 기뻐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미래가 있어 보이는 젊은 교역자를 끔찍이 사랑했다. 사모님은 시도 때도 없이 모여 드는 젊은 교역자들에게 싫은 기색 한 번 없이 언제나 국수를 삶어서 대접했다. 우린 철없이 사모님의 솜씨가 좋다고 국수를 즐기곤 하였다.

이러한 박 목사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목사들이 중견이 되었을 때 그들이 박 목사님을 교단장으로 추대하고 각기 후원금을 모아서 스스로 운동원이 되고 목사님을 총회장으로 교단을 섬기도록 했던 일화는 두고두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원주제일교회에 시무하실 때 여름이면 여름성경학교 지도자 강습회를 그 교회에서 하고, 겨울이면 겨울성경대학을 열어 평신도 교육을 실시하되 그 모든 진행을 젊은이들에게 맡기시고 그들의 후원만 해 주셨다. 내가 그 교회의 전도사로 교회학교 유초등부를 맡아 사역할 때도 모든 일을 내게 일임하시고 일체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항상 내게는 미소로 격려하시고 다른 이들에게 나를 칭찬해 주시는 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그때 한참 재기 발랄한 청년시절 25, 26세 되던 때인데 처녀들이 따르기도 하고 나의 현명치 못한 처신으로 말도 있었을 터이지만 목사님은 못들은 척 하시고 덮어 버리셨다. 다만 내가 1.4후퇴 때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마산항구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크게 동정하셨고, 모든 슬픔이나 외로움을 개의치 않고 교회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귀하게 여겨 주셨다. 박 목사님은 정말 가슴이 넓고 따뜻한 분이셨다.

그분의 신앙과 목회관은 성결교회 교역자로서는 드물게 진보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분은 항상 성결교단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하는 지도자셨다. 박 목사님은 신학적인 문제보다는 교단지도자들의 마음이 너무 좁다는 의미에서 그분들의 보수적 고집을 뛰어 넘어 함께 협력하는 정신을 주장했다.

그분의 이러한 영향으로 후에 나도 넓은 마음으로 후배들을 대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며 내 힘이 닿는 한에서는 교단의 연합사업에도 힘을 모으는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다. 박 목사님은 기회와 힘이 닿는 대로 교회를 새로 설립하려고 힘쓰셨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너무도 아무것도 챙기시지 않는 청렴한 분이므로 6남매를 기르시는 사모님과 어떤 때 말다툼을 하시는 것을 내가 발견하게 된다.

목사님은 조금 듣다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신다. 두세 시간이 지난 후 목사님이 집에 들어오신다. 그때는 이미 사모님의 화가 풀린 상태이므로 싸움은 끝난다. 내가 목사님께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사모님과 다투실 때는 자리를 피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때에 목사님은 껄껄 웃으시면서 “목사가 여자와 싸우다니?” 하신다.

나는 그날 이후 그분의 말씀에 늘 자기의 삶을 대입한다. 목사가 책을 안 읽다니? 목사갉 하다니? 하는 식으로 목사의 직분은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영광스러운 직책임을 자각하고 그 긍지를 지켜가도록 힘쓰고 있다. 박 목사님은 총회석상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원리원칙의 공의를 주장하고, 교회와 후배들 앞에서는 다정하고 따뜻한 아버지처럼 사랑의 원리에 충실하였던 분이시다. 내가 몹시 아프던 날, 당신도 편치 않으신 노구를 이끌고 내게 오셔서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