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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核위기 어디로 가나
NPT탈퇴 선언 배경과 전망
2003년 01월 15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을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이 하루가 다르게 극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한반도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핵동결 해제’ 선언 이후 북한은 핵카드를 내세운 벼랑 끝 외교를 강화하며 북한에 대한 불가침조약 체결을 약속하라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관련국에 대해서도 중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 9년만에 되풀이 된 탈퇴선언= 북한은 1월 10일 ‘정부 성명’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내비친 시점에서 터져나온 이번 조치로 북·미간 대화 재개는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지난 1993년과 94년의 한반도 위기상황이 재연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관영 중앙통신을 통한 성명에서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을 비난하면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핵확산금지조약·NPT)으로부터의 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핵안전조치협정)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선포한다”며 “탈퇴의 효력은 즉시 발생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NPT를 탈퇴한 뒤 90일간의 유예기간이 끝나기 하루전인 그해 6월 11일 북·미 고위급 회담 이후 조약 잔류를 결정한 바 있다.

북한은 성명에서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전력 생산을 비롯한 평화목적에 국한될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 북핵 관망대 되버린 서울= 북한의 NPT탈퇴 발표 당일인 10일 한국증시의 종합 주가지수가 하락하는 등 경제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주가가 하락했다”며 “북핵문제는 당장 큰 타격을 주지는 않겠지만 장기간 진행되면 커다란 악재로 발전할 수 있는 등 잠재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사회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해외 언론사 취재진이 속속 입국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서울 상주특파원을 제외한 외국 언론사 기자 30여 명이 입국해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스포츠 분야를 제외하면 역대 가장 많은 인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입국 러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식(2.25)과 맞물려 당분간 지속될 추세다.

◈ 칼날 세운 북·미, 긴박한 국제사회=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월 10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과 면담한 뒤 기자들에게 “북한은 국제사회를 조롱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북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결정한다면 이는 “선전포고”가 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박길연(朴吉淵)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같은 날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유엔 안보리의 어떠한 경제제재도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도 일제히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NPT탈퇴선언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10일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북한의 NPT 탈퇴선언이 극도로 유감스런 결정이며 즉시 철회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유럽연합(EU) 스웨덴, 캐나다, 필리핀, 베트남 등도 각각 외무장관들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NPT 탈퇴선언 철회를 요구했다.

◈ 북한 왜 극단적 모험 감행하나= 북한이 NPT 탈퇴라는 초강경 선택을 하게된 것은 무엇보다 국제적인 핵통제 체제란 틀을 벗어 던지겠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 추방에 이어 국제기구나 협약이 무용지물로 되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란 얘기다. 이를 통해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양자간에 협상을 통해 담판지어야 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 성명의 행간에 북·미 대화를 바란다는 메시지가 곳곳에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격앙된 성명의 말미에 정작 북한의 진의가 실려있다는 것.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대화 가능성’ 시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대북 불가침 보장 용의 표명을 미국의 시간끌기 의도로 판단한 듯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이려는 시각도 제기한다. 그러나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을 놓고 오히려 ‘경우에 따라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 대응책 부심하는 정부= 당혹스런 입장에 처한 정부는 묘수찾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표방하며 북·미간 설득에 나섰지만 평양에서 잇달아 터져나오는 강경입장으로 해결구상에 차질이 빚어진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NPT탈퇴선언이 북·미간의 핵 대치 국면을 더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탈퇴발표 5시간만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긴급회의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또 1월 21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9차 남북장관급 회담도 차질없이 진행키로 했다. 핵문제 해결과 남북대화 병행 전략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 93∼94년 핵위기 때= 북한의 이번 NPT 탈퇴 선언과 1993년 탈퇴하겠다고 했던 당시의 상황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와는 성향이 다른 부시 정권이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 한국도 93년 당시 문민정부는 북한의 NPT 탈퇴에 대해 강공책을 폈다. 이에 비해 노무현(盧武鉉)대통령 당선자가 이끄는 새정부는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93년만 하더라도 노회했던 김일성(金日成) 북한 주석이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지난해부터 독자적으로 추진중인 경제개혁을 마무리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다.

NPT는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과 옛 소련이 주도해 만든 국제 조약으로 유엔총회의 의결을 거쳐 1970년 3월 5일 발효했다. NPT의 주된 목적은 미국과 러시아 등 5대 핵 강국이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을 핵 비보유국에 넘겨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있다.
NPT가 핵무기 보유국인 이른바 핵클럽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현재 북한처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위협전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력생산을 위해 핵동결을 해제하려는 것이라는 북한의 논리를 인정한다 해도 NPT체제 내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에 뜻이 없다면 굳이 곡예를 벌이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할 필요가 있는냐는 것이다.

◈ 북핵위기 해법없나=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국제사회가 그어놓은 한계선(Red Line)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록 정부 성명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다”고 했지만 비핵국의 핵확산금지와 핵물질의 군사적 전용 방지를 위한 NPT 체제에서 뛰쳐나감으로써 핵 개발을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로 접점을 찾아가던 북미 대화는 일단 주춤거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미 양측이 빅딜의 장정(長征)에 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이 서둘러 NPT를 탈퇴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개전 전에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측면이 있는 데다 미국도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분간 국제 연대를 통한 외교적 압박의 기조 위에서 유엔 총회나 안보리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다뤄나가는 방안을 저울질할 전망이다. 유엔의 이름으로 대북 조치가 취해지면 미국의 부담은 줄어든다. 유엔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면 ‘당사자로서 적극중재’입장을 밝혀온 우리 정부의 입지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북핵 위기라는 암초를 만난 노무현 당선자 진영의 외교역량이 시험대에 올라섰다는 지적도 이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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