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 명동 지하상가 신우회의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초행길이라 미리 출발하여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 미안하여 예배 장소만 확인하고 조용한 곳에서 기다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배 장소엔 먼저 오셔서 기다리는 분이 계셨다. 서덕진 장로님이셨다. 그는 명동 지하상가에서 금은방을 운영하시고 계셨는데 사업보다 주님을 섬기는 일을 우선하시는 분이시다.

오늘도 신우회 예배 때문에 미리 나오셔서 예배 처소를 정리하며 청소를 하고 계셨다. 50이 훨씬 넘으셨는데 친히 팔을 걷어부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다. 그때 30대밖에 안 된 젊은 전도사였는데 황송할 정도로 극진히 환영해 주었고 덕분에 힘있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시며 장애인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셨다.

그 이후 장로님과 사모님은 아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헌옷이며 가구, 가전제품 등을 모으셨다. 한 달에 한두 번씩 트럭을 빌려 직접 헌옷이나 가구 등을 수거하셨다. 땀으로 목욕을 하시며 먼지로 얼굴이 새까맣게 되셔도 지칠 줄 모르고 체면도 불구하고 웃음으로 기쁘게 일을 하셨다. 심지어는 어느 이삿집의 쓰레기를 다 정리해 주는 조건으로 장롱을 얻어 오기도 하셨다. 같이 따라다녀 보면 오히려 우리가 낯이 뜨거울 정도로 애원하시며 장애인들을 위해 모두가 생활 속에서 동참할 수 있다고 설득을 하신다.

요즘은 푸드뱅크 사업이 보편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음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권하는 사람의 강권에 의해 마지못해 동참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된장, 고추장, 밑반찬 등 정말 고루고루 얻어 오셨다. 계단으로 냉장고나 장롱을 내려야 하는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는 기사를 가끔 부르기도 하신다. 같이 일을 했던 기사가 돌아와서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망애가 국민 의식이 부족하던 80년대 초 자리를 잡고 장애인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들의 숨은 공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너무 미안하여 “장로님 이젠 제발 좀 쉬시고 그만 하세요”했더니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유일하게 상급 받을 일을 찾았는데 무슨 소리냐 하시며 10년 이상을 이렇게 봉사하셨다. 소외된 영혼을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으시더니 점차 봉사의 폭을 넓혀 재소자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독방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복음을 급히 전해야 한다며 온 힘을 쏟으셨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며 오히려 욕설을 하다가도 나중에 장로님과 권사님의 끈질긴 사랑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하곤 했다. 정말 감동적인 일을 소개하면 세기에 찾아보기 힘든 살인극을 펼치고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다 잡혀 사형 언도를 받은 MG파 두목을 변화시킨 일이다.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사랑을 베풀었고 양아들 생겼다고 퍽이나 좋아하셨다.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자 우리에게도 금식하며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 사형수는 죽기 전 장기를 기증하고 시신까지 실험용으로 기증한 후 예수님 품에 안겼다.

장로님과 권사님 때문에 구원받은 사형수만 10여 명이나 된 걸로 기억한다. 70세 중반을 넘길 때까지 이토록 약한 자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시더니 2003년 초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병원을 찾아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약 3개월 후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병석에 누워서도 괴로운 기색없이 늘 웃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천국과 내세를 직접 본 듯이 확신에 찬 모습으로 가르치셨다. 저의 손을 잡더니 “목사님 하늘 나라의 상이 제일 클 것입니다. 힘드셔도 끝까지 장애인들을 위해 일해 주십시오. 하늘 나라에서 기다리겠습니다”하시며 오히려 저희를 위로해 주셨다.

지금은 권사님 혼자서 예전과 다름없이 이집저집 다니시며 후원물품을 모집하신다. 참 대단하신 분들이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분들만 같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