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 있는 다양한 언어 중 수화(手話)만큼 신비롭고 오묘한 언어도 없다. 특히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손짓과 갖가지 표정을 담아 언어로 전달하기에 수화의 매력은 한층 더할 수밖에 없다. 서울 불광동에서 주사랑농아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현호 목사(43)는 수화의 이런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수화 예찬론’자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수화를 접했다. 신학대학에 입학해 농아인 친구를 만났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수화를 배운 것이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제가 가장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약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 당연히 그들에게 힘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아인 친구에게 수화를 배웠고, 단 3개월만에 모두 익혔습니다.”

손에서 언어가 나온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는 김 목사. 하지만 단순히 친구들을 돕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앞으로 자신이 펼칠 사역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진로를 놓고 기도할 때에도 수화를 통한 목회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 제가 수화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고 지금까지 농아인들을 위한 목회에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농아인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했던 1993년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우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교회의 벽은 그가 넘기 힘든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전 농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오히려 교회에서 고마워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차갑게 외면하더군요. 교회 문을 나서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어렵사리 예배당을 마련한 김 목사는 손수 지역의 농아인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소문을 듣고 한 명 두 명 찾아오더니 그곳에서 사역하는 7년 동안 인근의 농아인들이 전부 교회에 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농아인들은 뭔가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농아인들이 많다는 것이 김 목사의 생각이다. 그는 농아인들의 이러한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1997년 ‘주사랑농아예술단’을 만들고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수화로 찬양을 전했다. 관객들은 말을 할 수 없는 이들의 간절한 몸짓을 보고 더욱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김 목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화찬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뮤지컬에 과감히 도전을 시도했다. 춤, 노래,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뮤지컬이야말로 수화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위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온 힘을 기울인 끝에 1998년 3월 ‘지저스 지저스’를 무대에 올렸다. 기획, 연출, 각색, 안무, 수화지도 등을 홀로 감당해야 했지만 배우와 관객 모두가 공연을 통해 은혜를 받는 모습에 엄청난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국내 수화 예술가 1호’라 불리길 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찬양만 들으면 자연스럽게 수화가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맞는 춤까지 생각난다고 한다. 특히 그의 춤 솜씨는 수준급이다. 발레는 기본이고 재즈댄스, 탭댄스, 스포츠댄스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하고 있을 정도다.

“문화만큼 좋은 선교도구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문화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수화를 통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4월 17일부터 펼쳐지는 2004 정기공연 ‘수화뮤지컬 페스티벌’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기도 파주시를 시작으로 5월까지 총 6회에 걸쳐 각지를 돌며 공연을 펼칠 이번 행사는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등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뮤지컬을 공연해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마리아 마리아>, <꿈의 사람 요셉> 등 확실한 복음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뮤지컬도 소개할 예정이다.

“저희는 섣불리 무대에 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원들과 항상 하나님 앞에 최선의 것을 드리자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 뮤지컬의 경우 원어대로 공연하기 위해 단원들이 영어수화를 합니다. 적어도 공연을 보는 많은 관객들에게 프로답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목표와 비전이 농아인들에게 맞춰져 있는 김현호 목사. 그는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무대와 연습실, 모두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을 갖춘 농아선교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 

“과거에 비해 농아인들을 보는 교회의 인식이 향상됐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무감 때문에 그들을 도우면 안 됩니다. 섬김의 자세가 없으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약간의 불편만 있을 뿐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