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사모/ 천성교회

나의 남편은 1967년 4월 15일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큰 딸 녹양이를 3월 3일에 선물로 주셨고, 4월 15일은 남편에게 목사라는 큰 멍에를 씌워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나와 남편은 햇병아리 부모가 된 셈이지요. 녹양이를 시어른들에게 맡기고 2시간 남짓 걸리는 목사 안수식에 함께 참석했지요. 우유병 눈금을 못 읽으시는 어머님께 고무밴드로 표시를 해 드리며 우유를 먹이라고 부탁하면서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뭇 생명을 먹어야 되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두려웠으며, 오른손을 들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서하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먹여야 할 젖이 불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끌어안고, 감사의 눈물, 두려움의 눈물, 콧물이 모두모두 흘러 내렸습니다.

남편은 월드비전(구 선명회)에서 근무하며 더 배워야 하는 목사의 길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결혼 때 받았던 금 목걸이와 반지는 등록금 마련에 희생되었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은 고되었고, 힘이 들고, 경제적인 핍절은 목회생활 고생의 전초전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기관 목회 2년은 석사과정의 기간으로 끝내고 목회일선에 들어섰습니다. 성수동의 동서울교회가 담임목회 첫 임지였습니다. 2년의 첫 목회는 그야말로 우리 생의 처음 겪는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소위 3김씨 가족들끼리 뭉쳐진 교회 성격상 타 성이 합류하기에 큰 바위산이어서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그대로 설교와 교회정치를 하려는 남편 목회는 3김씨를 굉장히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일이 호락호락하지 못했습니다. 담임 첫 목회 2년은 실습과정으로 무난하였습니다.

다음의 한 발자국도 모르고 내 딛는 안개 속의 운전처럼 우리의 다음 임지는 부목사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숭실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지명관 장로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장인교회에 초빙되어 후임 약속을 받고 임지를 옮겼습니다. 매주일 노방전도와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는 방문전도로 앞뒤 살필 줄 모르고 달렸습니다. 69~70년은 한국에 부흥의 불길이 지펴지고 있었을 때니까 우리들의 전도 열매는 매주일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부목사가 와서 교회집회가 매주일 늘어나고 교회가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또 꿈에도 예측 못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곧 후임에게 물려주실 것을 사위 장로님과 사전약속을 했었지만 정작 부목사의 이런 모습을 보는 담임목사와 목사님 주변의 몇 분들은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3월 첫 주일에 부임한 부목사 생활 겨우 7개월, 교인들 얼굴도 채 섭렵하지 못한 10월이었습니다. 1970년 10월 17일 경서중학교 수학여행팀의 열차사고로 46명이 타 죽는 당시로서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었지요. 부목사가 학생회 지도를 겸하고 있었는데 교회 학생회장 김주용 군이 그 희생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경서중학교 강당에 타다 남은 강아지처럼 된 시체들을 보고 온 직후 남편은 토요 학생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젊은 부목사의 감정이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예배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설교하면서 “우리는 한발의 죽음을, 한발은 삶을 디디고 행진하다가 죽음 쪽으로 떨어진 주용이와 같이 어느 때에 가서는 다 죽는다”는 설교를 하면서 삶을 흰색으로, 죽음을 검정색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흰색은 주보로, 검정색은 두리번거려 찾아도 없으니깐 성경으로 양쪽 발을 딛고 가는 시청각 설교를 했답니다. 이 설교가 담임목사와 주변 분들에게 다음날 주일에 보고되고 남편은 성경을 밟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성경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고, 안 밟으면 죽이고, 성경에 침을 뱉으면 살려주고, 안 뱉으면 죽임을 당했던 상황으로 몰아부쳤습니다. 이럴 때 “너를 정죄하던 자가 다 어디로 갔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을테니…” 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없었던 들 어떻게 위로를 받았을까요? 아버지 하나님! 지금도 저희를 정죄하지 않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