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수 / 목사, 변호사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증인이 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라함은 지위가 높건 낮건, 남녀노소, 가진자건 못가진자건, 어떤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가진자건 이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만약 그가 실질적 진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사실을 친히 경험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증인이 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법원의 증인소환에 거듭 거부하면서 그 거부이유를 대통령의 재임 중 행위에 대해 해명한다면 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하였다. 분명히 그 이유에는 일리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국가 최고의 직에 있다보면 많은 고급비밀들을 알고 있을 텐데 이러한 점들을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한다면 역사의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모든 국민에게 책임지워진 증언의 의무가 더 중요한 초소송법적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까지 이른다면 이것 또한 정의가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법은 이러한 초소송법적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증언할 의무를 면제해 주도록 친절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알게된 사실에 관하여 본인 또는 당해 공무소가 직무상 비밀에 관한 사항임을 신고한 때, 그 사람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해당되지 아니한 사람은 모두가 증언할 의무가 있다. 전직 대통령이 증언을 하게될 내용이 이에 해당된다면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이번 증언 거부가 증언의 의무가 있는 사람도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과태료 10만원으로 떼울수 있다는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증인이 구인이 되더라도 증인석에 앉아서 입만 굳게 다물면 증언도 안해도 되고 과태료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을 비롯하여 지미 카터 대통령 등이 현직에 있을 때에 증언을 한 바 있다. 이들의 증언은 대통령이라도 법에 정해진 증언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는 좋은 선례를 미국역사와 미국국민들에게 남겼는데 우리나라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신명기 1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함에 있어서 지켜야 될 원칙을 알려준다. 즉,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한 사람의 증인만으로 그 사람을 유죄 판결할 수 없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만 그 사람을 유죄로 판결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유·무죄를 정함에 있어서 증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증인이 증언을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증인이 허위의 증언을 함으로 말미암아 죄없는 자가 유죄로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할 수 있고 유죄한 자가 무죄로 되어 죄없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분명 아닐 것이다.

증인이 증언할 의무는 개인적인 의무라기보다는 진리와 정의를 세우는 데 자신이 사용되어 진다는 신성한 의무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의무로 말미암아 증언할 의무를 기피하는 것은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정의가 왜곡되어도 관계치 않겠다는 편협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우리에게 증언할 기회가 주어질 때 공적인 신성한 의무를 이행한다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부끄럼없이 진실을 말하도록 하여야겠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