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목사 / 능암교회 담임

시간의 흐름이 물과 같다더니 필자가 능암교회에 부임한 지도 만 4년이 되었다.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은 그렇게 훌쩍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얼마전 부터 교회내에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교인들이 무엇인가 불안해하며 자꾸만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확인하고 하는 것이었다. 눈치가 없는 필자는 한 동안 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무의식중에 혹시나 담임목사가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있는 불안감

교회의 역사를 조금만 들춰보면 이러한 이들의 불안감은 쉽게 이해가 된다. 1950년 5월 20일에 창립된 능암교회는 약 48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약 10년 동안은 교역자가 없는 상태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필자가 19대 담임자인 것이다. 이런저런 형태로 정거장처럼 머물다 떠나는 목회자들의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는가 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능암교회의 현실만은 아니다. 현재 농촌교회의 대부분이 겪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언젠가 교우들과 함께 모여 앉은 자리에서 간절한 어조로 부탁을 하더군요.
“목사님! 우리 평생을 함께 지내요. 자녀들은 우리가 대학까지 공부시켜 드릴께요.”
필자는 웃고만 말았다. 이것은 압력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그들은 왜 이렇듯 예민하게 반응하며 행동하고 있을까?

기쁨 뒤에 오는 불안감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땅문제다. 바로 현재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터가 국가소유의 땅이었다. 약 48년의 역사 가운데 자기 땅을 가지지 못한 불안감은 매우 큰 것이다.

이 문제는 1958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 땅이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예배를 드리던 능암교회는 쌀 3가마를 주고 현재의 터를 사서 1959년 경에 이 곳에 교회와 주택을 짓고 그 동안 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매매증명서와 같은 서류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고, 등기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국가 땅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교회 상황으로는 법에 호소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해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의 땅에 살고 있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남의 땅에 사는 설움, 그것도 교회가 남의 땅을 디디고 사는 설움이야 오죽 했을까?

필자가 부임을 해서 보니 교회 토지는 이러한 형편이었고, 어떠한 권리행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약 1년 6개월간 자료를 수집하고 법에 호소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냈다. 약 2년 6개월간 진행된 소송 결과 지난 12월 대법원에서 승소를 하여 교회땅을 되찾게 된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어려움도 컸다. 주위의 방해와 협박, 공갈 그리고 거짓 소문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일치 단결하여 열심을 다해 기도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40여 년 간을 잃어버렸던 교회터를 되찾게 된 것이다. 필자는 물론이고 교우들의 기쁨과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던 주(週)에는 동네잔치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 뒤에  교우들에게 불안감이 싹터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담임목사가 어려운 일을 하나 해결하였으니 이제 교회를 떠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다. 사실 이러한 불안감은 오랜 경험의 결과이기도 한 것 같았다.

담임목사의 자리

지난 번에 약 사흘간 기도원에 갔었다. 기도를 하면서 목회 구상도 하기 위해서였다. 방학 중인 아이들과 아내를 다 데리고 떠난 길이기에 주택은 텅빈 상태였다.
그런데 그 동안에 안권사님 남편이 많이 아프셨던가 보다. 기도원에서 돌아오던 날 전화를 통해 우리 가족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안권사님의 목소리는 반가움에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안권사님은 사실상 우리 교회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는 일꾼이시다. 이 곳 능고을로 시집을 온 이래로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견뎌 이겨낸 분이시다.

그분의 삶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바로 교회에 담임교역자를 모시지 못했을 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담임 교역자가 없으면 텅빈 교회 목사관으로 살림을 옮겨 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교회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심방을 가보니 남편되시는 장집사님의 얼굴이 홀쭉해져 있을 정도로 많이 앓으셨던가 보다. 그러면서 안권사님은 목사관이 비어 있던 사흘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는 고백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평상시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일이 있어서 교회를 비우게 되면 괜히 발걸음이 한 번이라도 더 교회를 향하게 되고, 왠지 교회의 설렁한 분위기가 서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저희는 다시 깨달았어요. 아무 일을 하지 않으시더라도 교회에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지요.”

사실은 올해에도 4∼5차례  새로운 도시교회를 소개받았었다. 막연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언젠가 때가 되면 이 곳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본다. 그러나 언제나 준비는 필요하다. 그것은 ‘순종의 준비’이다. 자기를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순종의 준비’갉.

물론 오늘날 농촌교회를  평생 지켜내는 목회자의 자리도 필요하지만, 축복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이별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상처로 남지 않는….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2월호)